[이춘호기자의 푸드블로그] 대구 양식문화 '솔직 토크'

  • 입력 2007-04-20   |  발행일 2007-04-20 제40면   |  수정 2007-04-20
대구선 3만원도 비싸다면서 서울선 10만원도 '선뜻'
지역 양식당 죽이는 '경상도 기질'부터 먼저 고쳐야
[이춘호기자의 푸드블로그] 대구 양식문화
대구지역 양식문화 발전을 위한 '푸드토크'에 참석한 레스토랑 르네상스 김영수 사장, 김현묵 경북과학대 호텔조리계열 교수, 최영준 조리 기능장, 디종의 황혜영 사장.(왼쪽부터)

지난 주 '서울 양식당 현주소 진단'에 대한 대구지역 양식 부문 관계자들의 반응이 궁금했습니다. 대구 양식당계의 좌장격으로서 앞산순환도로 변에 있는 르네상스의 김영수 사장. 지역에선 처음으로 양식 부문 조리기능장이 된 최영준씨, 소시지 요리 권위자인 경북과학대 호텔조리계열 김현묵 교수, 서울 힐튼호텔 조리사로 있다가 1991년 대구로 내려와 중구 삼덕동에 인투와 디종을 연 황혜영씨를 불렀습니다.이들은 지난 15일 오후 8시 르네상스에서 '대구 양식문화 긴급진단'이란 주제로 '솔직담백 푸드토크'를 가졌습니다. 네분의 의견들을 개괄적으로 정리해 봤습니다.

◆김영수= 결국 주인의 마인드가 모든 걸 말해준다. 좋은 요리사를 데리고 오려면 수입이 따라줘야 한다. 그걸 위해 제대로 된 음식에 제대로 된 가격을 붙이면 고객들은 그걸 인정해야 된다. 그래야 고객들도 더 나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린 그렇지 않다. 대접만 받으려고 하고 돈을 제대로 지불할 의사는 없다. 이게 대구 양식문화의 현주소다. 수입이 없으니 좋은 요리사를 불러올 수 없다. 서울에 있는 명 조리사들도 지역 양식 수준이 정체 상태라서 잘 내려오려고 하지 않는다.

대구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게 또 있다. 서울은 모든 음식별로 별도 가격이 매겨져 있다. 일품 요리가 선호된다. 그런데 대구는 양식당에 오면 무조건 풀코스만 찾는다. 그렇다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 각오가 돼 있어야 하는데 실제는 그렇지 않다. 이런 식으로 가면 양식당들 다 문을 닫는다. 요즘 대다수 고객들이 신용카드만 사용한다. 마진율도 30% 채 안된다. 공짜 메뉴가 많아지면 결국 저질 양식밖에 못먹게 된다.

서비스 정신도 중요하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정부 예산으로 종업원 교육을 철저하게 시켰다. 요즘은 시들해졌다. 돈 벌어주는 건 주인이 아니다. 직원들이 벌어준다. 매너좋고 서비스 정신이 좋은 직원이 고객을 많이 부른다. 그런 사람을 양성시켜야 한다. 주인 혼자만 북을 쳐도 안 된다. 관에서 도와줘야 한다. 아쉬운 건 요즘 창업자들이 식당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최영준= 현재 대구의 스테이크 가격은 동일 재료 대비 서울의 50%가 채 안된다. 서울에는 양식당 마니아가 풍부하다. 하지만 대구는 아직 전체 고객의 1% 정도만 양식이 뭔가를 안다. 조리사들이 더 좋은 요리를 만들어야겠다는 자극을 못받는다. 그래서 쉽게 매너리즘에 빠진다. 고객들은 안심 스테이크 1인분에 4만원이 넘으면 무척 비싸다고 여긴다. 서울은 일품 요리가 유행이다. 다른 메뉴를 먹으려면 따로 계산을 해야 된다. 대구는 풀코스로 움직이니 장사 하기가 너무 힘들다. 대구서는 3만원이 비싸다고 하면서 서울만 가면 10만원도 선뜻 지불한다. 대구 고객의 이중성이 양식문화를 후퇴시킨다.

주인은 친구가 서울 간다고 서울 따라가선 안 된다. 자기 중심을 잡아야 한다. 결국 정통적 메뉴라인을 가진 한결같은 주인이 최후의 승자가 된다고 믿는다. 손님이 움직인다고 주인까지 움직이면 결국 음식문화는 제로베이스로 추락한다. 상당수 주인들은 저질 재료로 고급 요리를 만드는 조리사가 최고인줄 착각한다. 그런 생각은 죄악이다. 요즘 구청 단위로 각종 음식박람회 행사 개최는 물론 음식특구를 만들고 있다. 이게 대구 전체의 음식문화 발전으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대구시가 우후죽순격으로 돋아나고 있는 각종 먹거리 타운과 음식 관련 행사가 시너지 효과를 이루도록 중재해야 된다.

◆김현묵= 고객들이 형편없다고 하는데 꼭 그런 것 만은 아니다. 요즘 대구에도 미식가 층이 많이 형성되고 있다. 신세대들은 자기 메뉴관이 있다. 와인 동호회도 날이 갈수록 활성화되고 있다. 조리사들이 제대로 하면 알아주는 고객이 나타난다. 요즘 유명 외국 브랜드 양식당들이 향토 양식당을 밀어내고 있다. 불합리한 점은 외국계 식당에는 별도로 10% 부가세가 붙는데 로컬 식당에는 그렇지 않다. 대구도 국제도시로 변모했다. 지역 양식당들이 살기 위해선 외국계 식당처럼 별도 부가세를 붙여야 한다. 갈수록 맛 못지 않게 종업원의 홀서빙이 중시되고 있다.

외국계 식당의 경우 오픈 몇 개월전부터 구체적 매뉴얼을 갖고 직원들을 교육한다. 그들의 현란한 언변과 컬러풀하고 자유로운 유니폼, 생일축하 이벤트, 심지어 꿇어앉아 주문받는 것들이 모두 고객감동 요인으로 작용한다. 종업원들이 그렇게 될수록 각종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하고 관계기관에서도 종업원들을 위탁교육시킬 필요가 있다.

음식장사 밑져도 본전이란 말이 있었는데 옛말이다. 무한 경쟁 시대다. 대구 인구 100명 당 식당이 한 개 꼴이다. 식당 개업을 너무 쉽게 생각하지마라. 유행을 좇아 식당을 열면 불과 몇 개월도 안돼 문을 닫고만다. 모두 좋은 시설에 돈을 너무 퍼붓는다. 품질관리와 메뉴개발, 서비스 개선 등에는 거의 돈을 안쓴다. 자기만족으로 영업하는 자는 망할 수밖에 없다. 현재 대구시에 상당한 식품관련 기금이 있는 줄로 안다. 세계 최고의 식당을 접하고, 그곳의 서비스 정신을 배울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사업을 전개했으면 좋겠다.

◆황혜영= 조리사는 웬만 한 건 다 만들 수 있다. 손님들이 더 새로운 자극을 줘야 조리사도 발전한다. 대구는 조리사를 너무 못 부린다. 오너 마인드가 중요하다. 소고기 종류도 천차만별이다. 조금 덜 남으면서도 좋은 고기를 고르기도 하지만 더 남기기 위해 더 나쁜 고기를 내기도 한다. 좋은 조리사를 얻으면 결국 음식 가격도 증가한다. 손님들이 덜 내고 더 많이 가져가려고 하면 결국 양식당은 망할 수밖에 없다. 대구는 아직 레스토랑 특화가 덜 이뤄졌다. 지배인들도 전반적으로 나태하다. 메이저급 양식당 지배인이라면 국내외 주요 와인 정보를 꿰뚫고 있어야 하고 영어회화에도 능통해야 된다. 상황별 서빙에 대한 매뉴얼도 숙지하고 있어야 하는데 지배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자극도 여건도 갖춰져 있지 않고 있다.

앞으로는 조리사가 주인이 되는 시대로 가야한다. 조리사와 주인이 다르면 여러가지 갈등 요인이 발생한다. 선진국은 주인이 거의 명조리사 출신이다. 그래야만 음식에만 올인할 수 있다. 정말 덜 남더라도 요리하는 게 즐거운 사람만 식당을 했으면 좋겠다.

대구는 어떤가? 열심히 하려고 해도 고객들이 줏대가 없다보니 매머드 식당이 출현하면 일제히 그곳으로 몰려간다. 시장 규모가 빤하기 때문에 여타 식당의 매출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요즘 요리 추세는 간단하고 담백한 것. 우리는 일본화된 양식 탓에 소스가 너무 진하다. 그럼 아무리 좋은 재료를 사용해도 제 맛을 못 본다.

대학 졸업생과 일을 해본다. 그런데 2~3년후 이들은 거의 그만둔다. 요리를 위해 대학은 가지만 현장 상황은 너무나 열악하다. 봉급도 적고 비전도 별로다. 그래서 그만둔다. 대구 조리사들 간 경쟁의식도 별로 없다. 요리 기술이 쉬 바닥을 드러낸다. 서울은 늘 경쟁 상황이라서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면 자칫 도태될 수 있다. 대구는 몇년만 고생하면 기본 기술은 다 익힌다. 자기가 대가인줄 착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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