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밥상 사라진 우리의 가정

  • 입력 2007-07-27   |  발행일 2007-07-27 제37면   |  수정 2007-07-27
'家和萬事成' 그 시작은 제철담은 엄마 밥상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밥상 사라진 우리의 가정
갈수록 어머니의 정성이 담긴 밥상이 그립기만 하다. 하지만 날로 전업주부가 줄어 식당이 밥상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먹어야 살죠.

먹지 않으면 사람은 죽습니다.

이것만큼 명쾌한 명제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음식은 '살림'입니다. 식당은 '삶의 출발점'인지도 모르죠.

식당은 '성소(聖所)'이고, 식약동원(食藥同原)적 차원에서 보면 '병원'과도 같은 곳입니다. 그럼 식당 주인은 '의사'이고 손님은 '환자'인지도 모릅니다. 종업원은 간호사로 볼 수도 있습니다. 허기도 하나의'질병'인지도 모르죠. 많이 굶으면 의식불명, 더 굶으면 아사합니다. 삶은 식당과 식당 사이에 빨랫줄처럼 걸려 있는 지도 모릅니다. 식당에서 음식을 먹으면 포만감을 느낍니다. 피가 됩니다. 다음 식사를 할 때까지 견딜 수 있습니다. 감동이죠. 대통령도 거지도 굶곤 살 수 없습니다. 때가 돼 고개 숙이고 수저로 뭘 떠 먹는다는 행위, 그것만은 만인이 평등합니다. 단지 내용물이 뭔가에 따라 삶의 수준이 구별되겠지만은.

# 식당이 밥상 자리 대신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지금 우리 주위엔 생명을 해코지 하려는 '죽임의 먹거리'가 난무합니다.

불길한 징후는 우리네 집에서부터 포착됩니다. 예전에는 아버지가 돈벌이를 전담했습니다. 어머니는 전업주부였습니다. 자연 '장인급 조리사'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24절기마다 어떤 식재료가 나오는 걸 잘 압니다. 제철·즉석요리가 대세였습니다. 친정부모와 시부모의 요리술을 습득했습니다. 교통망도 지금같지 않아 지역마다 전통음식이 원형대로 전승될 수 있었습니다.

그땐 화학조미료도 인스턴트 식품도 없었습니다. 사먹는 김치와 된장, 그건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손수 마련해야 했습니다. 우리 먹거리의 절창기였습니다. 그런 배경을 안고 17세기 중엽 거유 갈암 이현일의 모친 안동 장씨가 지은 최초의 한글 조리서인 '음식디미방(필사원본은 경북대 고문서실 소장)' 이 발간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가족에서 핵가족 사회로 진입하면서 가정식단이 붕괴합니다.'전업주부의 시대'가 종언을 고하면서 밥상 자리를 식당이 대신하게 된 겁니다.

남자만 벌어선 가족이 다 먹고 살기 힘들어졌습니다. 농경사회에선 출세가 대세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까막눈만 면하면 공부 다한 것이고 대처로 나갈 필요도 없이 농사 짓다가 선산에 묻히면 끝입니다. 농사가 마지막 보루였습니다. 하지만 이젠 아닙니다. 농사 짓는 삶은 '망가진 삶'으로 치부됩니다. 이젠 자기 먹기 위해 농사짓지 않고 팔기 위해 짓습니다. 마구 농약을 뿌려댈 수밖에 없죠. 시장 때문이죠. 지금 부모는 자식을 최고로 키우려고 합니다. 엄청난 사교육비, 결혼 비용까지 다 챙겨줘야 하니…. 자연 엄마도 돈을 벌어야만 합니다. '맞벌이 부부'가 시대적 요청인 듯 합니다.


# 불량식품에 매달린 아이들


아이 혼자 밥을 먹고 있습니다.

사실 이건 부모가 아이한테 음식 갖고 테러를 가하는 겁니다. 하지만 어찌합니까? 먹고 살아야 하니, 참 답이 안나오는 대목입니다. 국가가 아이를 위해 밥상을 대신 챙겨줘야 합니까?

아이들은 몸에 좋은 걸 잘 챙길 줄 모릅니다. 단지 입에 맞는 것만 먹습니다. 엄마 없이 어찌 혼자 전기밥통의 밥을 퍼먹을 수 있겠습니까? 어찌 국을 끓이고, 김치를 썰어 먹을 수 있겠습니까? 일찍 출근해야 되는 엄마는 가능한 빨리 먹을 수 있는 먹거리만 식탁에 올려두고 부리나케 나갑니다. 엄마 없는 식탁에 올려진 먹거리, 아이들은 무시합니다.

엄마는 아이들이 맛있게 음식을 먹도록 돕는 촉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엄마가 없으면 아이들은 심리적으로 위축돼 정상적인 식사를 못합니다. 아이들은 금세 불량식품의 노예가 될 가능성이 무척 높습니다.

파김치 돼 귀가한 엄마. 이때 가장 편한 건 인스턴트와 패스트푸드 음식입니다. 아이들의 입이 인스턴트화 된 걸 교정하려고 해도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 "우리 뭐 시켜먹자"

딱하지만 이게 맞벌이 부부들이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점수 받는 첩경입니다. 지금처럼 배달형 패스트푸드가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전업주부의 실종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신토불이 식단에 별다른 매력을 못느낍니다. 아이가 엄마에게 전화를 겁니다.

"엄마, 배고파."

순간 엄마 맘이 쿵 무너집니다. 옆 직원 눈치보며 모기만한 소리로 아이에게 몇 마디 합니다.

"냉장고 문 열고 계란으로 프라이해서 먹어, 아니면 식빵에 잼 발라 먹든지, 그것도 맛없으면 전자레인지에 햇반 넣고 땡하고 먹어. 수프든 봉지 있지 냄비에 물 붓고 끓여 먹어봐, 다 싫다고……. 그럼 치킨·피자·중국집에 전화걸어 시켜 먹든가. 엄마 곧 갈게."

집에 도착하니 남편은 아직 안들어 오고 아이는 문방구에서 사온 불량 비스킷과 질 낮은 얼음과자 먹다가 TV켜놓은 채 소파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습니다.

이 비련스러운 광경을 보는 엄마의 속이 또 뒤집어 지고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전업주부가 될 수 없는 지금 대한민국 30~40대 엄마들의 까맣게 타는 속을 누가 달래주죠.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