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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형태의 게국지(오른쪽)와 새우 등이 올라가고 우거지를 말이 형태로 넣은 충남 농가맛집 ‘곰섬나루’에서 만든 퓨전 게국지. |
충남 태안군.
갯벌 품은 해안선을 갖고 먹고 산다. 그 해안선은 이미 명품 관광상품이다. 태안은 가로림만과 천수만과 맞물려 있다. 국내에선 유일하게 ‘해안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 해안선 연장 길이 530㎞. 110여개의 크고 작은 섬을 거느리고 있다.
좋은 소금을 만들 수 있는 기후조건을 갖춘 지방이다. 조선시대에는 충청도 소금(자염) 생산량의 절반 이상이 태안에서 생산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소금문화가 발달해 ‘젓갈 인프라’가 탄탄할 수밖에 없다. 서산을 포함한 태안권은 국내 어리굴젓의 메카. 어리굴젓은 전남의 진석화젓과 함께 굴로 만든 명품 젓갈이다. 전남 강진의 민물새우로 만든 토하젓과 같은 위상을 갖고 있다. 작은 새우인 멸치로 만든 곤쟁이젓도 태안 명품 젓갈인데 이제 품귀현상을 보인다.
대구 식도락가에게 태안은 좀 멀다. 4시간여 걸려서 가기가 주저된다. 그래서 태안의 토속음식이 거의 경상도쪽에 소개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전권도 그걸 잘 모른다.
◆ 염장식품 ‘게국지’
태안의 대표적인 염장식품은 뭘까?
게국지와 우럭젓국이다. 기자도 그 음식을 몰랐다. 그런데 충남농업기술원에서 ‘충남의 맛’이란 책자를 기자에게 보내줘 알게 됐다. 며칠전 서울로 취재갈 때 KTX 안에서 만난 태안에 사는 한 어르신은 ‘충남에서 가장 특색있는 음식이 바로 게국지고, 모르긴 해도 전라도 목포의 홍어, 강진의 토하젓과 비견될 수 있는 향토음식’이라고 치켜세운 기억이 났다.
게국지?
게로 만든 ‘묵은지’같다. 그런데 아니다. 태안식 게장간장문화가 피워낸 전통음식이다. 된장국처럼 너무나 일상화된 음식이라서 태안군민은 그걸 어떻게 식당에서 팔 수 있냐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오랫동안 태안 식당가에서 볼 수 없었는데 최근 농가맛집 ‘곰섬나루’ 등에서 예약제로 선보이고 있다.
충남의 대표적 국이 어떤 게 있는지 알아봤다.
굴냉국, 넙치아욱국, 밀국낙지탕, 박속낙지탕, 뱅우국(실치시금치국), 세모국, 오골계탕, 청포묵국, 굴국, 꽃게알된장국, 꽃게탕, 낙지국, 대하탕, 머위들깨탕, 버섯탕, 비지국, 사슴곰탕, 선짓국, 싱어아욱국, 쑥국, 열무쇠고기국, 옻닭, 오리백숙, 우렁이국, 인삼추어탕, 장어보양탕, 해삼국, 황복국 등이 있다.
태안 향토음식연구가인 정낙추씨가 게국지에 대한 정보를 주었다.
게국지는 태안의 독특한 음식이다.
얼마전 1박2일팀이 태안 게국지를 시식하면서 전국에 널리 알려진다. 하지만 그때 통 꽃게를 넣고 끓여서 일견 ‘꽃게탕’처럼 보여 지역민들에게는 그다지 큰 공감대는 형성하지 못했다. 다들 “게국지는 그렇게 사치스럽지도 풍부하지도 않다”고 귀띔한다.
게장을 담근 두 번째 게국물에 김장 때 나온 허접 우거지(태안에선 꼬갱이 배추라 한다)와 늙은 호박을 넣고 만든다. 담그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전통방식의 게국지를 담그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하는 게국을 만들자면 게장(꽃게장)을 전통적인 방법으로 담가야 한다.
태안지방의 전통 꽃게장은 간장으로 게장을 담그지 않고 소금물로 담갔다. 양조간장으로 담근 꽃게장은 근래에 생긴 조리법이다. 전통 꽃게장은 소금물을 끓여서 식힌 다음 항아리에 넣고 그 소금물에 꽃게를 담가 숙성시키는 방법이다. 소금물에 담근 꽃게장은 간장게장처럼 꽃게의 색깔이 검지 않고 깨끗하며 단맛이 없어 꽃게 고유의 맛을 느낄 수 있다.
꽃게는 10월부터 살이 올라 이듬해 5월이 절정. 전통 게장은 10월부터 꽃게를 담그면서 시작된다. 끓여서 식힌 소금물에 꽃게를 담갔다가 건져먹고 나서 게국에 물과 소금을 추가하여 다시 끓이고, 꽃게를 담그는 일을 이듬해 5월까지 반복하다가 꽃게 철이 지나면 칠게나 농게, 능쟁이(등딱지 지름이 5~7㎝ 정도인 새끼 게) 등을 같은 방법으로 담근다. 이런 과정을 거쳐 생긴 앙금처럼 남은 바닥 국물이 게국이다. 게장을 담그는 과정에 우러난 게의 국물이 배여 있어 구수하고 감칠맛이 난다.
맛은 어떨까?
어릴 때부터 게국지와 동고동락해온 정지수 태안문화원 사무국장은 “목포 홍어를 처음먹으면 코를 쥐고 뒤로 물러서지만 자꾸 먹으면 중독이 되듯이 게국지도 처음에는 젓갈 냄새 때문에 부담스럽지만 먹을수록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게국지와 비슷한 항렬에 있는 우럭젓국이 담백하다면 게국지는 아주 시원하다. 보기에는 걸쭉해보이지만 실제 먹어보면 국물도 맑고 담백해 예전 태안의 대표 해장국으로 사랑을 받았다”고 게국지 자랑을 했다.
경상도에선 성급히 고춧가루를 넣고 싶겠지만 게국지에는 안넣는다. 서울경기권을 닮아서 그런지 그렇게 맵지 않다. 예전에는 게국지 식재료도 간단했다. 들어가는 채소는 우거지, 무, 호박이 전부고 새우젓으로 간을 하고 어패류는 능쟁이를 빻아 넣는다. 이때 주꾸미와 어류를 넣으면 좋을 것 같지만 그곳에선 갑각류를 고집한다. 이유는 뭘까? 시원하기 때문이다. 고춧가루 대신 청·홍고추를 넣는다. 특이한 건 별도로 육수를 빼지 않고 쌀뜨물을 사용한다. 그래야 더 시원하다.
◆ 게국지 전문 ‘곰섬나루’
현재 태안에서는 게국지 전문점은 없다.
예약을 하면 맛보여주는 식당은 있다. 충남 농가맛집인 ‘곰섬나루’(충남 태안군 남면 신온리 505). 2007년 향토음식자원화사업을 통해 식당으로 특화됐다.
곰섬이라 불리는 신온리 마을은 썰물 때는 육지와 연결되고 밀물 때는 섬이 되는 곳이다. 이 작고 아름다운 마을사람들은 반농, 반어업의 형태로 살아간다. 곰섬나루는 종가집 며느리 등 네 농가가 공동으로 운영한다. 곰섬나루의 대표메뉴는 함초간장게장 정식이다. 함초간장게장은 청정해안 폐염전에서 자생하는 함초를 이용한 간장게장이다. 이밖에 장아찌, 비취묵, 샐러드, 전, 잡채 등 개발음식과 제철에 나는 농산물로 만든 부식도 별미.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사진제공·도움말=충남농업기술원·태안문화원
■ 게국지 레시피
① 호박은 껍질을 벗기고 속을 파내어 도톰하게 나박 썰어놓는다.
② 배추와 무청을 씻어 소금에 살짝 절인 후 물에 헹궈 물기를 뺀다.
③ 홍고추와 풋고추를 절구에 거칠게 빻아놓는다.
④ 박하지(민꽃게)와 능쟁이(새끼 게)는 날카로운 부분을 떼어내고 절구에 찧는다.
⑤ 대파, 마늘, 생강은 다지고 양파는 굵게 채 썰어놓는다.
⑥ 준비한 모든 재료를 넣어 버무린 후 젓국간장이나 젓갈로 간을 한다. 이 때, 쌀뜨물로 염도를 조절하여 끓이면 더욱 구수한 맛을 낼 수 있다.
(충남농업기술원 추천)
말린 우럭포 끓인 ‘우럭젓국’도 맛 보세유∼
젓국이란 가장 태안스러운 식품용어이다.
‘젓갈육수’의 준말로 보인다. 백령도 섬사람들로 비교하자면 까나리액젓 같은 것이다.
우럭은 예전 태안 사람에게는 아주 비싼 어류였다. 그래서 아껴 사용했다. 우럭젓국은 ‘말린 우럭포를 끓인 음식’을 뜻한다. 일견 강원도 횡성의 황태국 같은 느낌이 전해온다.
우럭젓국도 유래가 있다.
제사상에 놓았던 우럭포의 살을 대충 발라먹고 남은 뼈와 머리를 쌀뜨물을 넣고 끓여 먹으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요리법은 간단하다. 잘 말린 우럭포를 쌀뜨물로 끓이는데 두부나 무를 넣기도 한다. 간은 소금으로 하며 양념은 약간의 마늘과 파를 넣는다. 잘 끓인 우럭젓국의 맛은 비린내가 나지 않으며 담백하고 구수하다.
우럭젓국의 핵심은 우럭포를 어떻게 말리느냐에 있다. 너무 말리면 쓴맛이 나고 덜 말리면 비린내가 난다. 우럭포를 잘 말리는 방법은 좋은 소금으로 알맞게 간을 하고 우럭포에서 물기가 완전히 제거되어 노란색이 날 때까지 말리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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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개 형태를 보이고 있는 우럭젓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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