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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 서구 암남동 감천항 동편부두. 국내에서 유통될 냉동참치는 거의 여기에 다 모인다. 물론 국내 참치 전문점도 여길 통해 냉동 참치를 가져온다.
세계 최고의 참치 소비국인 일본의 냉동참치는 일본 혼슈 시즈오카현 시미즈(淸水)에서 가장 많이 팔려나간다. 시미즈는 연간 40만여t이 잡히는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섬의 제너럴 산토스시와 함께 최고의 참치항으로 불린다. 2007년 여기서 2.74㎞ 참치초밥말이가 완성된다.
참치(마구로·Tuna). 참 처절하게 독한 놈이다.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고 오직 전진뿐이다. 온 몸이 혈관 덩어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붉은살 생선의 대명사가 될 수 있었다.
참치는 크게 4종류. 최고급 참다랑어는 일본 최대 참치 매매시장인 도쿄 스키치 시장에서 거래된다. 다음 단계는 눈다랑어, 황다랑어, 저급 어종인 새치로 분류된다. 그동안 예식장, 뷔페 등에서 슬쩍 등장했던 대구포 빛깔의 저급 ‘기름치’. 이놈은 참치과에 포함시킬 수 없는 천한 어종.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올해부터 섭취 시 급성 소화기계 장애를 일으키는 기름치에 대해 식품원료로의 사용을 전면 금지시켰다.혼마구로(참다랑어)는 참치 중에서 가장 귀한 대접을 받는다. 한때 자연산밖에 없었다. 이젠 양식도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리 소재 글로벌영어조합법인 같은 데서 나온다.
대구의 참치문화는 어떨까? (사진=대구시 수성구 두산동에 위치한 ‘김실장 참치’의 김덕기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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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로, 주도로, 머리살 등 참치 여덟 부위를 꽃처럼 저며 올려놔 모양도 좋고 식감도 좋아 보인다. |
■ 욕 먹으면서 큰 포항촌놈
지역에서 제대로 된 참치회를 먹으려면 어디로 가야될까? 고수들이 골목마다 숨었겠지만 그래도 수성구 두산동 ‘김실장 참치(오너셰프 김덕기)’를 가장 주목한다. 일단 확인에 들어갔다.
참치 해동 노하우 때문인지 살점이 살아 있다. 모르긴 해도 김 셰프는 냉동참치의 해동비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눈다랑어 턱살, 머리눈살, 가마도로(참다랑어 목살), 오도로, 메카도로(황새치 뱃살), 머리뽈살, 눈다랑어 머리입천장살…. 사각상자에 놓인 무채 위에 꽃처럼 앉아 있는 여덟 부위의 참치. 뭐랄까, ‘8색 무지개’ 같았다. 오도로는 너무 싱싱해 기름이 거문고 소리처럼 흐르고 있었다.
포항시 북구 장성동에서 태어난 그는 16년전 북부해수욕장 근처의 한 횟집에 들어갔다. 회가 뭔지 기본기를 쌓는 시기였다. 그는 요리학원보다 실전을 익혔다. 뒤에 포항의 한 일식당에 들어가서 5년간 튀김, 초밥, 메밀소바 등 일식 전반에 대한 기본을 닦는다. 가끔 참치에 대한 공부도 했다.
“난 역시 이 길이었다. 감이 오더라. 적성에도 맞고 해서 일단 일식 조리사가 돼 보자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했다.”
포항이 점점 좁아보였다. 그래서 경기도 분당으로 올라가서 거기에 있는 참치집 ‘이야코’에 취직한다. 거기서 해동참치에 대한 상당한 노하우를 배운다.
“저는 여느 흰살생선 회 치듯이 하면 참치도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더라. 참치는 보통 사람은 제대로 해동시키지도 못하고 해체는 언감생심. 자칫 크게 다칠 수 있다.”
소금물에서 참치를 너무 녹여, 또 어떨 때는 덜 녹여서 욕을 엄청 얻어먹었다. 가장 어렵다는 대가리살 발라내기. 붙은 살점을 발라낼 때도 제대로 된 크기와 굵기가 나오지 않아 버릴 수밖에 없다. 염분이 적당해야 잘 녹는데 소금을 덜 넣어 혼이 나기도 했다. 옆에서 보는 건 쉽다. 하지만 그게 손에 익으려면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한 지를 절감한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참치를 먼저 알고 회를 알면 너무 힘들고, 일반 회를 거친 다음에 참치로 와야 고수가 될 수 있는 것 같다.”
그는 포항에서 대구로 와서 대구KBS방송총국 맞은편 대마참치의 실장으로 있었다. 작년 1월 자기 이름을 걸고 동원참치를 열었고, 지난 6월 상호를 김실장 참치로 바꾸었다.(053)766-5252
마지막 해동단계 종이로 래핑
뱃살에도 좋은 부위 따로 있어
대가리에서만 네 종류 살 나와
1인분 4만원은 돼야 진미 맛봐
동공 오염…‘눈물주’ 안 권해
■ 김 셰프, 참치비밀을 말하다
-무한리필, 이건 참치를 모독하는 말인 것 같다.
“고급 해동참치는 최소 1인분 4만원 이상이다. 심지어 오도로 같은 고급 뱃살은 한 점 가격이 1만원이다. 일본 혼마구로 267㎏이 8억5천만원에 팔렸다. 어떻게 무한리필이 가능하겠는가. 일종의 호객을 위한 구호라고 봐야 된다. 물론 저가 새치류, 거기다가 먹어서 안되는 기름치를 갖고 장난친 업자들도 많았다. 일반인들은 우리 집도 그런 참치를 파는 줄 안다. 먹어보면 단번에 알지만 억울할 때가 많다.”
-대구가 원래 참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얼큰·화끈한 음식을 즐기는 대구사람들. 참치는 그런 대구에서 정착하는 데 조금 힘들었다. 특유의 기름진 맛 때문에 지역민들한테는 그다지 어필되지 못했다. 다들 광어, 도다리, 가자미 등과 같은 흰살 생선에 더 매료됐다. 하지만 2000년 들어서면서부터 불포화지방산(DHA) 때문에 기능성 생선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한다. 동원, 사조 등 국내 대표적 참치 브랜드가 참치붐을 일으킨다. 이와 더불어 진성참치 등 저가 무한리필 참치 브랜드가 떼지어 밀려온다. 1인분 1만5천~2만원 참치를 주문하면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고 했는데 각론으로 들어가면 그게 발목을 잡았다. 해동이 제대로 안 된 꼭 슬러시 같은 참치 앞에서 많은 실망을 했다. 사람들은 ‘싼게 비지떡’이란 말을 되뇌곤 했다.”
-참치의 맛은 어디서 비롯되는 걸까.
“일단 해동맛이다. 영하 60℃ 이하에서 얼려진 걸 상온에서 녹여야 하는데 이 과정에 맛이 많이 비틀어진다. 다음에는 칼맛이다. 통마리 해체쇼를 할 경우 단칼에 참치의 뼈를 중심으로 한번에 내리꽂아야 하는데 첫 칼을 앞으로 넣을지 뒤로 넣을지를 잘 판별해야 좋은 단면이 나온다. 대가리의 경우 부위별로 살을 발라내면서도 적당한 크기를 유지시키는 게 매우 어렵다. 마지막엔 생고추냉이와 간장이 맛을 좌우한다. 참치 문외한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참기름에 찍어먹거나 김에 싸먹는다. 정석에서 많이 벗어난 것이다. 완성된 맛을 10으로 볼 때 이렇게 먹으면 5정도의 맛밖에 알지 못한다.”
(영하 60℃. 이 온도 이하라야 조직사이 수분이 균일하게 얼어 나중에 해동할 때 물이 흐르지 않는다.)
-참치를 제대로 먹지 못하는 손님도 많은 것 같다.
“참치가 좋다면 생고추냉이와 진품 간장만 있으면 다른 건 별로 필요 없다는 생각이다. 참치에 마늘을 걸치고 된장 바르고 상추에 싸먹으면 이건 참치메뉴에 대한 치욕스런 처사다. 소금 머금은 참기름, 김도 사족이다.”
-셰프 서비스로 자주 등장하는 참치 눈물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굳이 먹겠다고 하면 어쩔 수 없이 주긴하지만, 동공이 세균에 오염돼 있을 가능성이 높아 난 단골에게 내놓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한다.”
-대가리에선 몇 가지 살이 나오나.
“눈·머리볼·입천장·정수리살이다.”
-뱃살도 소 안심처럼 더 좋은 부위가 있다는데.
“난 주로 30~70㎏급을 많이 사용하는데 뱃살은 네 토막 낸다. 그 중에서 대가리 가까운 쪽에서 두번째가 가장 좋다.”
(소의 안심도 보통 다섯 토막을 내는데, 그중 단면적이 가장 넓고 제일 맛있는 부위를 ‘샤토브리앙’이라고 한다.)
-김실장의 해동법이 정말 궁금하다.
“부산에서 한꺼번에 1억원어치 사갖고 와서 가게 근처 내 개인 초냉동고에 보관한다. 통상 조직에 다른 영향이 미치지 않게 영하 60~70℃에서 보관한다. 영하 30~40℃면 조금씩 상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너무 얼려도 문제다. 가령 영하 250℃ 이하면 색깔이 빨리 변색된다. 육즙도 빨리 말라버린다. 한 달 이상 보관해도 좋지않다. 검게 변하고 그럼 비린내가 나서 사용 못한다. 해동시키려면 해동수를 30℃로 유지하고 소금을 적당량 넣어주는데 냉동 참치가 뜰 정도면 된다. 핏기 제거하고 핏물이 스며나오면 40~50% 해동된 것이다. 이때 머리와 몸통을 분리하면서 재단을 한다. 실온에서 20~30분 90% 해동을 시켜준다. 마지막 해동절차는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하는데 식용 해동지(解凍紙)를 래핑해서 서서히 숙성시키듯 녹여야 된다. 그걸로 싸두면 완전하게 녹고 그걸 다시 싸서 냉장고에 보관한다. 하지만 장시간 그대로 두면 검게 변한다. 1시간마다 새것으로 갈아줘야 된다. 수건은 비위생적이라서 사용하지 않는다. 말은 쉽지만 잘 녹이고 칼질을 잘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leekh@yeongnam.com
김 셰프에게…
사이드 메뉴가 없어도 지금 참치회 만으로도 굿이라고 봐요.
실장님 참치회는 환상적인 구석이 있어요. 그래서 다른 반찬은 그렇게 필요치 않다고 봐요. 본 메뉴가 완벽에 가까우면 사실 그걸 보조하는 반찬은 정말 제대로 된 게 안 올라오면 단번에 메인 메뉴가 흔들리죠.
그날 각기 육질이 다른 여덟 토막의 참치를 눈을 감고 음미해 봤습니다. 다 먹고 난 뒤 혀의 감각을 정상 위치로 돌려줄 ‘촉매식(觸媒食)’이 필요합니다.
그럼 혀 위에 어떤 맛이 올라가야 하죠? 참 괴로운 질문입니다. 답은 없죠. 짜고·달고·시고·매운 식재료를 내놓을 수 있지만, 그게 어느 정도 중화력을 가질지는 좀처럼 가늠키 힘듭니다. 셰프는 숱한 시행착오와 특유의 감각에 의해 자기만의 비법의 사이드메뉴를 개발하게 됩니다.
실장님은 숙고 끝에 각종 부침개를 내놓았어요. 이건 분명 실장님의 생각이 아니고, 참치회가 뭔지 모르는 푸짐한 게 최고인 줄 아는 일부 손님 때문이라고 봐요.
절정의 참치 곁에 과연 어떤 포인트 음식으로 화룡점정할 건지 끝없이 성찰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건 도쿄 최고의 스시 달인에게도 역시 힘든 질문이겠지만. 이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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