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生劇場 .5] 북극성에서 온 사나이 - 한명준 편

  • 이춘호
  • |
  • 입력 2013-09-06   |  발행일 2013-09-06 제34면   |  수정 2013-09-06
“나무를 부러뜨리고 귀신과 대화할수록 ‘지구 사람들’과 멀어져갔다”
[人生劇場 .5] 북극성에서 온 사나이 - 한명준 편
‘북극성 사나이’ 한명준씨가 안중근 휘호를 등지고 기를 모으고 있다. 합장은 허트러진 내면의 기운을 가지런하게 다져준다.


[人生劇場 .5] 북극성에서 온 사나이 - 한명준 편
◇첫 사부 김춘식, 病에 대한 가르침을 주다
‘맛’으로 병을 다스리는 법 궁리…자기 속의 초능력 발견

◇원광스님으로부터 전수받은 고조선 무술
 태공유수·반태신공·봉술위투명·권법·검술까지 수련해


◇팔공산 송래선에게서 ‘천부경’을 배우다
“81字의 비밀 풀기 위해 양자물리학까지 이해해야만 했죠”

[人生劇場 .5] 북극성에서 온 사나이 - 한명준 편

[人生劇場 .5] 북극성에서 온 사나이 - 한명준 편
[人生劇場 .5] 북극성에서 온 사나이 - 한명준 편

세 명의 사부로부터 病·武·經을 터득하다


그의 고향은 ‘북극성’.

몸집이 투박했고 악수했을 때 손결은 곰 발바닥 같았다. 강조할 대목에선 자주 파안대소를 터트렸는데 거기에 적잖은 습기가 묻어 있다. 그 ‘습함’이 어쩌면 그의 운명인지 모른다. 처음엔 난 북극성을 ‘사기성’(詐欺星)으로 봤다. 일상을 초월한다고 하지만 상당수는 도피 중이었다. 때론 북극성보다 가족이 더 먼 행성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그가 북극성에서 온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믿음이 들었다.

그는 결혼했다. 아이도 양육해야만 하는 가장이다. 당연히 돈벌이도 해야 된다. 그럼에도 ‘미스터 북극성’으로 살아간다. ‘도시형 도사(道士)’랄까. 여느 도사와는 차림새가 다르다. 말총머리도 아니고 개량한복도 안 입는다. 턱수염도 기르지 않는다. 곧잘 청바지를 즐긴다.

북극성족답게 인생의 중요 고비마다 강호의 고수를 만났다. 그때마다 일상에서는 터득하기 힘든 초월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다. 동양철학과 동양의학, 침술, 그리고 마지막엔 천부경의 이치와 한민족의 숨결이 가득 담겨 있는 고조선 무술에 대해서도 천착할 수 있었다. 54년간 여러 사부를 섭렵했다.

세상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가 아무리 한 경지 운운해도 세상은 그걸 무시하고 세상 법칙대로 굴러간다. 그래서 숱한 사람한테 배신을 당했다. 자기 얘기를 들어주는 이도 거의 사라졌다.

3년 전이었다. 그는 삶의 반전을 위해 대구 팔공산 자락에 터를 마련했다. 천부경과 한판 싸움을 벌이기 위해서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몸과 마음의 상관관계에 대해 물었다. 그의 대답은 다른 도사와 조금 색깔이 달랐다. 꽤나 논리적이었다.

“생각이 기체라면 마음은 액체, 몸은 고체에 가깝습니다. 기체는 가볍고 자유로우나 붙잡아 모아두기 어려워요. 액체는 부드러워서 변형되기 쉬운 까닭에 견고하지 못합니다. 고체는 유동성은 약하지만 그래서 가장 견고하죠. 그렇기 때문에 생각으로 깨닫는 일은 가장 쉬우나 아는 바는 흩어지기 쉽고, 마음으로 깨닫는 일은 생각 다음으로 쉬우나 변형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깨달음을 얻으려면 몸으로 체화해야 합니다. 몸을 완전하게 만들어야 완성이 되죠. 몸을 얻으면 마음과 생각도 얻을 수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몸에 깃들어 있는 신을 ‘본신’(本神)이라 해요. 본신이 아닌 다른 신에 의해 몸과 정신이 움직여지는 상태가 ‘빙의(憑依)’죠. 본신 이외의 신은 관념의 신이어서 나는 그 신들을 믿지 않아요.”



◆ 큰불 없어 사직서 낸 소방공무원

그는 인천 촌놈이다. 아버지는 개성에서 월남했고 가난했다. 가진 돈은 없지만 가난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은 자기는 북극성에서 온 사람이란 자부심 때문이다.

젊은 시절 소방관이 되었다. 근무지를 배정받았지만 3년간 ‘멋진 불’을 못 만난다. 기다려서는 뜻을 이룰 수 없을 것 같았다. ‘할 일은 내가 찾자’면서 사직서를 냈다. 한 동료는 ‘그냥 시간만 보내면 매달 꼬박꼬박 나라에서 월급을 주는데 하필이면…’이라면서 만류했다.

퇴직금도 모두 형에게 준다. 가진 돈이 없으니 마음은 더 홀가분했다. 한동안 산을 오르고 산에서 내려와서는 일없이 거리를 돌아다녔다. 뭔가를 해야 할 때가 도래했다. 큰 공부를 하고 싶었다. 서울 신림동 고시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W2면에 계속


◆1교시 사부 … 현성 김춘식 사부를 만나다

‘인간의 생사와 만병의 근원은 육장육부에 있다.’

관악산 등산로 입구 주차장을 지나다가 그 글귀를 봤다. 오장육부가 아니고 ‘육장육부’라니? 또 하나의 장은 뭐지? 그 글을 내다붙인 사람이 누군지 더 알고 싶어졌다. 이내 글귀를 써붙인 건물 앞에 멈춰섰다. 실내로 들어가니 낡은 책상 안쪽에 머리가 벗겨진 중년의 사내가 앉아 있었다. 작달막한 중년의 사내가 그의 생애 첫 사부가 된 현성(賢聖) 김춘식이다.

1980년대 국내에 오행생식원 붐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현성은 인간의 생사와 만병의 근원이 육장육부에 있다는 걸 가르쳐주었다.

“병은 병원에서 치료하지 않습니까?”

“병원에서는 병을 치료하기도 하지만 병을 만들기도 한다네.”

“선생님은 병을 어떻게 고치는데요?”

“음식으로도 가능한 일이지. 맥(脈)을 알고 맛을 알면 병을 고칠 수 있다네.”

흥미로운 말이었다. 그곳은 생식원이었고 현성은 동양의학을 강의하고 있었다. ‘육미섭생법’은 현성이 동양의학을 발판으로 만든 이론이다.

‘본래는 신과 인간이 한 몸이었다. 사람이 맛을 알면서 신의 성품을 잃었다. 먹을 수 있는 것과 소유하고 싶은 것이 서로 같으니 다툼이 일어났고, 이 다툼은 계속되어 변란을 일으켰다. 이것이 ‘오미(五味)의 변’이다.’

사부의 가르침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람의 몸과 마음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맛을 알아야 했다. 맛으로 병을 다스리는 법을 궁리했다. 사부는 그에게 마지막 가르침을 준다.

“네가 내경(황제내경)은 나를 통해 얻었으니 외경은 네 스스로가 찾아서 완성해라.”

침술은 물론 자석을 몸에 걸어서 기경팔맥을 틔워주는 도법까지 터득한다. 하지만 너무 욕심을 내서 화를 불러들인다. 몸에 냉기가 들어오는 바람에 중풍을 맞는다. 기도를 하면서 체계화되지 않은 운신법(運身法)을 탐구한다. 우연히 찾은 경북도내 한 절에서 자신만의 초능력을 발견한다. 지름 7~8㎝ 소나무 가지를 부러트렸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무덤에 있는 귀신과도 대화가 가능했다. 그럴수록 그는 지구 사람들과 멀어졌다.

그가 32세가 되던 무렵, 오행생식원이 전국에 200여개 생겨난다. 그는 ‘사업하는 도사’로 변신한다. 신림동에 있었던 오행생식 중앙연수원장이 된다. 그때 제자 가운데 한의대 학장·교수·신문기자·자칭 도사 등도 있었다. 오행생식 때문에 ‘제3의학 신드롬’도 일어난다.

스페인으로 가서 스페인 한인회 김의열 회장의 도움으로 음식으로 병을 고치는 방법과 맥을 짚는 방법, 황제내경 침법, 단전호흡 등을 가르친다. 중풍에 걸린 30대 스페인 여자를 걷도록 해주자 단번에 초능력자로 주목을 받는다.

귀국해선 예전 고시공부를 할 때 머물렀던 경기도 청평으로 간다. 거기서 재야 무림의 고수를 만난다. 궁중무술 전문가 박태선씨였다. 그 밑에서 3년을 배운다. 오행생식 대리점을 꾸려가던 중 새로운 기를 받기 위해 2000년 8월 인맥도 없는 캐나다로 건너갔다. 토론토 온타리오 주 정부의 인가를 받아 동양의학을 가르치는 ‘캐나다 동양의학 칼리지(Canada College of Oriental Medicine and Nutrition)’를 세운다. 강의를 개설해 첫 해에 10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두번째 사부…원광스님이 전해준 고조선 무술

지치면 서울 인사동으로 달려갔다. 그에겐 만병통치약 같은 동네다. 거기에는 없는 것이 없다. ‘용의 수염’도 있다. 고구려 동검(銅劍)·동경(銅鏡,)·명도전(明刀錢) 등도 구할 수 있다. 인사동에서는 만나지 못할 사람이 없다. 세계의 다양한 인종은 물론 백두·계룡·계룡산에서 살다 내려왔다는 신선과 조우하거나 선녀까지 만난다.

한 수 배울까 해서 각종 종교의 법전을 들췄다. 선도와 기공을 살펴봤다. 중국의 파룬궁에 뭔가 있을까 해서 ‘전법륜(轉法輪)’을 유심히 탐독하며 창시자 이홍지의 뜻을 훔쳤다.

그런 어느 날 그는 두 번째 삶의 은인이자 고조선 무술 전수자인 원광 스님을 인사동 거리에서 만난다. 원광은 ‘인사동’이라는 찻집 앞에서 그를 만나기 오래 전부터 원효, 아니 걸레스님 중광처럼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엄지와 검지 두 개의 손가락을 펴고 양 팔을 ‘니은 자’로 꺾어 드는 ‘이지회공(二指回空)’ 자세를 취했다. 해와 달이 뜨는 자세다. 붉은악마들이 ‘대한민국’을 외칠 때 취하던 그 수인(手印)이다.

‘백련상인(白蓮上人)’으로 불리는 원광은 누구에겐 땡초로 또는 무술인, 거지악사 등으로 불렸다. 그는 운명적으로 원광을 만난다. 만난지 얼마 안돼 고조선 무술의 기본이 되는 동작을 전수한다.

“발을 모아서 바로 서 봐라.”

“이렇게요?”

“그렇지. 바른 발을 한 보폭 내밀어서 30도 정도 안쪽으로 꺾어 보아라. 몸의 무게 중심을 앞발로 3분의 2 정도 옮기면 뒷발의 뒤꿈치가 조금 들린다. 무릎도 조금 꺾인다. 그 자세에서 두 팔을 쭉 펴서 눈높이까지 들어 올려 주먹을 살짝 쥐어라. 두 주먹의 간격은 주먹 하나 들어갈 만치 띄우고, 시선은 두 주먹 사이를 보면 된다. 그 자세가 바로 ‘태공유수(太空有數)’다. 우리나라에는 고래로 ‘금강팔인(金岡八人)’이라 불리는 여덟 분의 신선이 계시다. 태공유수는 이 여덟 분의 신선 중에서도 으뜸이신 분이지.”

“신선이라고요? 신선이 아직도 살아 있나요?”

“본신은 네 몸의 주인이지. 몸은 그 껍데기야. 가인(假我)인 몸에 휘둘리지 않고 진아(眞我)인 본신으로 사는 사람이 진인(眞人)이다. 진인은 사람에게도 신에게도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거나 미혹되지 않는다.”

“팔 모양이 이렇게 계속 변해가나요?”

“팔뿐 아니라 몸도 계속 틀어지게 된다.”

“언제까지요?”

“원래의 몸을 되찾을 때까지.”

“원래의 몸이 어떤 건데요?”

“모든 감각과 예지가 깨어있는 최상의 몸이라는 정도로만 알아 둬라. 자세를 잡아서 몸에 내공을 쌓고 무술의 수와 형으로 단련하면 몸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게 된다. 몸의 상태와 형태까지도 내 의지대로 바꿀 수 있다. 허약하던 몸을 강건하게 만들고 일그러지고 못나게 된 얼굴도 균형을 잡아 잘생긴 얼굴로 만든다. 지금 네가 하고 있는 태공유수는 고조선 무술의 시작이면서 끝이고, 하나의 자세이면서 모든 자세다.”

원광은 이어 ‘반태신공(半太神工)’ 자세도 일러줬다.

“발을 옆으로 어깨 넓이의 한 배 반 정도로 벌려라. 두 무릎을 살짝 굽혀서 편안한 기분이 드는 자세를 취해라. 허리와 머리는 반듯하게 세워라. 두 팔을 들어 올려서 아름드리나무를 감싸 안듯이 해라. 두 손은 편안하게 벌리는데 좌우 손의 간격은 주먹 하나 들어갈 만큼 띄우면 된다. 시선은 편안하게 멀리 봐라. 이건 태공유수 자세를 보완하는 자세다. 태공유수가 양의 기운을 얻는 자세라면, 반태신공은 음의 기운을 얻는 자세다. 양이 차면 음으로 기울고 음이 차면 양으로 변하는 것이 음양의 이치이니, 이 두 자세를 번갈아가며 잡아봐라.”

“자세를 잡을 때 생각은 어떻게 합니까?”

“나와 내 몸이 태양 속에 있다. 이렇게 생각해라.”

다음엔 봉술의 비법을 닦는다.

“처음에는 봉을 손으로 돌린다. 팔을 쓰게 되고 허리를 쓰게 되고 목과 등도 쓰게 된다. 그 정도 되면 몸으로 봉을 돌린다고 할 수 있겠지. 그 다음에는 마음으로 돌리게 된다. 봉이 몸과 하나가 되면 마음 가는 대로 봉을 쓸 수가 있다. 봉이 내 몸이 되고 내 마음이 된다. 이를 ‘봉술위투명(棒術爲透明)’이라 하는 것이다. 그것을 느꼈느냐?”

권법인 ‘고조장권’과 검술인 ‘천인검(天人劍)’과 ‘환인검(桓人劍)’을 받았다.

“넓은 대륙을 가진 중국에서는 멀리서 찌르는 창술이 발달했다. 일본에서는 근접한 공간에서 예리하게 베는 검술이 발달했다. 한국에서는 베지도 찌르지도 않고 적을 제압하는 원형의 진법인 봉술이 발달했다. 무기를 쓰는 무술의 기본은 봉술이다. 매를 때릴 때 쓰는 몽둥이도 봉이고, 회초리도 가는 봉이다. 부채도 접으면 작은 봉이 되는 것이지. 봉의 원심력을 알고 내 몸의 구심력을 알아 조절하게 되면 봉을 자유자재로 놀릴 수 있다. 그러면 내 팔이 봉의 길이만큼 늘어난 것과 다를 게 없지. 무기술의 기초는 이 봉술이다.”

원광이 천인검 한 자루를 꺼내 보여주었다.

“우와, 이게 그 유명한 천인검인가요?”

“천인검은 주몽이 사용하던 검이다. 금과 은, 동과 철을 합쳐서 만들었다. 천인검의 천(天)자를 변형시켜 ‘삼인검’(三人劍)으로 전해져 내려왔는데, 이는 천인검의 비술을 숨기기 위한 것이었다. 이 검의 이름은 삼인검이 아니고 천인검이다. 중국의 당태종이 침입했을 때, 고조선인의 후예인 고구려 양만춘 장군이 이 검법을 썼다. 당태종은 하도 신기하여 무슨 검법인지를 물으며 배우고 싶어 했으나 끝내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보검을 청운 대사께서 갖고 계셨는데 한 일본인이 몰래 가져갔다. 할 수 없이 청운 대사가 당대 최고의 검을 만드는 장인에게 부탁해 재현해서 만든 게 이 검이다.”

원광은 환인검도 보여준다. 두 손으로 쥐는 검이기 때문에 손잡이가 길었다. 한 쪽으로만 나 있는 칼날은 예리했고 칼등은 두껍고 강했다. 환인검을 배울 때 대용으로 썼던 목검과 비슷한 모양이지만 진검은 더 예리하고 날렵했다.

“환인검은 천인검과 같이 고대로부터 비전되어온 검법이다. 역대의 단군만이 환인검의 비급을 전수했다.”

그는 원광한테 무술을 전수한 뒤 고조선 무술 연구원을 설립한다.

◆세번째 사부…천부경을 찾아서

고조선 무술까지 섭렵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왜 대한민국에 태어났는지가 궁금했다. 궁극적인 경전을 만나고 싶었다. 기독교와 불교의 경전도 있었지만 우연한 기회에 ‘금척천부경’이란 책을 펴낸 해인 송래선씨가 팔공산 자락에 기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내와 11세 된 아들을 데리고 동구 중대동으로 온다.

일시무시(一始無始)로 시작해 종무종일(終無終一)로 끝이 나는 천부경(天符經). 천부경은 모두 81자로 짜여있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경전.

사부의 학력은 국졸이다. 농사를 지으면서 학교를 마치고, 학비가 없어 땔감을 해 주면서 한문을 배웠다. 어지간한 책은 다 보고 복희역 ‘주역’을 보는데 도무지 터지지 않았다. 주역은 복희가 만들었는데, 복희의 아버지는 누구일까. 해인은 팔공산 자락으로 들어가 천부경을 붙들고 꼬박 10년을 두문불출했다. 61세 쯤 천부경 해석에 일가견을 갖게 된다.

해인은 그를 제자로 받아들인다. 천부경의 비밀은 숫자에 있었다. 숫자로 이치를 풀면서 생명과 우주의 생성과 윤회 원리를 알려줬다.

알 듯 모를 듯한 천부경 공부는 지극히 난해했다. 양자물리학까지 이해해야만 했다. 하지만 집중을 하자 조금씩 비밀이 풀리기 시작한다. 세상에 숱한 천부경 해석법 중 한 가닥을 그도 잡는다. 그가 자신이 지금까지 알고 있는 천부경의 교훈에 대해 설명했다.

“상당수 지식인한테 엄청난 영향을 주고 있는 천부경은 한민족 최초의 경전임과 동시에 전 인류가 나갈 바를 밝힌 영적 지침서이죠. 천부경은 우주와 지구, 심지어 DNA 나선형 입자에도 중심축이 있다는 걸 알려줍니다. 소립자에서부터 인간의 몸까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하나의 망으로 유기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걸 천부경이 전해줬습니다. ‘내가 곧 너이고, 모든 인류가 영원불멸의 영적 존재’라는 것도 알려주지요. 하지만 문명은 이분법으로 판단하며 정의 내리고 속박하며 갈등을 조장해 왔습니다.”

그가 한류의 시발점을 경주 포석정으로 꼽았다. “신라 천도정치의 시발지였으며 고조선무술의 뿌리를 간직한 화랑도 정신이 스며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일상이 최강적이라고 믿는다. 몸이 있는 이상 절대 일상은 못 벗어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상으로 멋지게 돌아오기 위한 초월을 열망한다. 초월 또한 일상의 다른 표정이기 때문이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