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황금연휴 볼 만한 영화 뭐 있나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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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5-02   |  발행일 2014-05-02 제42면   |  수정 2014-05-02
女心 흔드는 현빈이냐, 男心 돋우는 류승룡이냐·

5월의 황금연휴가 시작됐다. 1일부터 시작된 이번 연휴에는 최장 6일간 쉴 수 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인해 들떴던 마음은 이내 차분히 가라 앉는다. 여행이나 야외활동을 계획했던 사람들도 취소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렇다고 모처럼 찾아온 달콤한 연휴를 마냥 집에서만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 대중에게 영화 관람은 좋은 차선책이 될 듯하다. 대략 20편의 크고 작은 영화가 이 기간에 맞붙는다. 한국영화 ‘역린’과 ‘표적’이 눈에 띄는 가운데, 세대별 다양한 장르의 영화가 관객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 할리우드, 게 섰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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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빈의 복귀작으로 일찌감치 화제를 모은 ‘역린’은 정조 즉위 1년에 벌어진 정유역변을 모티브로 삼았다. 왕의 침전까지 자객이 침입했던 긴박했던 그날 하루를 고증과 상상력을 동원해 밀도있게 담아냈다. 알다시피 정조는 뒤주에 갇혀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영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지만, 지지기반이 약했던 탓에 기득권 세력인 노론으로부터 끊임없는 암살 위협에 시달렸다. 실제로 정조는 서고인 존현각을 침전처럼 사용하며 밤이면 책을 읽고 운동으로 몸을 만들며 자신을 단련했다고 한다. 이는 기존에 보아왔던 정조의 모습과도 차별된다. 현빈은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미래를 꿈꿨던 강인한 인물이자, 진정한 군주로 거듭나려는 미래지향적인 왕의 모습을 매력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에 그를 둘러싼 상책(정재영), 살수(조정석), 광백(조재현), 정순왕후(한지민), 홍국영(박성웅) 등 실제와 허구의 인물을 적절히 배치해 이들이 운명적으로 마주하고 충돌하면서 발생되는 자연스러운 긴장감을 유려하게 포착했다. 역린은 TV 드라마 ‘다모’ ‘더킹 투하츠’ 등을 통해 스타일리시한 영상미학을 뽐냈던 이재규 감독의 영화 데뷔작이다. 그는 “기존의 정조와는 다른, 고통 속에 절제하며 자기 뜻을 펼치려 했던 젊은 왕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고증을 통한 미장센은 돋보이고, 다양한 인간 군상이 각자 처한 입장과 운명이 적절히 균형을 이루면서 전개되는 역동적인 이야기는 흥미롭다. 묵직한 드라마에 이재규 감독 특유의 섬세한 감성 연출이 더해진 작품이다.

역린에 현빈이 있다면, ‘표적’은 액션전사로 거듭난 류승룡에 기댄 영화다. 프랑스 영화 ‘포인트 블랭크’(2010)를 원작으로 한 표적에서 그는 의문의 살인 사건에 휘말린 전직 특수부대 출신 여훈을 훌륭히 소화했다. 포인트 블랭크를 연출했던 프레드 카바예 감독 역시 “류승룡은 카리스마 넘치고 육체적이다. 또한 강렬하면서도 감성적인 면이 있다”고 극찬했을 정도다. 영화는 그런 여훈과 아내를 구하기 위해 그와 위험한 동행을 하게 된 의사 태준(이진욱), 그리고 이들을 쫓는 두 형사가 펼치는 숨가쁜 추격을 그린다. 원작이 사건 발생과 그 이후 전개되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면, 표적은 얽히고설킨 캐릭터들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움직이는지 그 과정에 주목했다. 에두르지 않고 정공법을 향해가는 다이내믹하고 리얼한 액션은 물론, 긴장감을 자아내는 캐릭터 묘사와 극적인 드라마가 장르적으로 조화를 이뤘다는 느낌이다.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으로 2008년 데뷔작 ‘고死: 피의 중간고사’로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킨 창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뮤직비디오를 보듯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쫓아가는 영화의 호흡은 일정하고, 탄력적인 리듬감에 속도감은 적당하다.


◆ 아직 잔치는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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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메이징 스파이더맨2’는 전편을 능가하는 화려한 액션이 눈길을 끈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의 상승세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전작에 비해 한층 업그레이드된 스케일과 볼거리로 무장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는 무엇보다 젊고 매력적인 뉴페이스로 떠오른 피터 파커의 본격적인 영웅담이 펼쳐진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고교를 졸업한 피터 파커(앤드류 가필드)는 위험에 처한 시민들을 구해주는 틈틈이 사랑하는 연인 그웬 스테이시(엠마 스톤)와의 데이트도 즐긴다. 그러던 어느 날, 작업 중 일어난 우연한 사고로 일렉트로로 변한 오스코프사의 전기 엔지니어 맥스(제이미 폭스)가 뉴욕을 일대 혼란에 빠뜨린다. 여기에 피터의 오랜 친구였던 해리 오스본(데인 드한)까지 가세해 스파이더맨을 위협한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는 이제 어엿한 성인이 된 피터 파커의 성장담에 주목한다. 그 과정에서 슈퍼 히어로로서의 책임감은 커졌고, 연인과 가족 사이에서 그의 자아찾기의 여정은 심도있게 다뤄진다. 특히 전지전능한 거미의 능력을 부여받은 피터 파커의 화려한 액션은 전편을 훨씬 능가한다. 엄청난 스피드로 뉴욕 상공을 활강하고, 좁은 마천루 사이를 자유자재로 횡단하며, 적들과 싸울 때도 유연한 몸놀림을 보여준다. 리드미컬하면서도 스펙터클함이 돋보이는 장면들은 스파이더맨의 시점으로 설정돼 화끈하고 사실적인 볼거리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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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새롭게 적응해 가는 캡틴 아메리카의 활약상을 담은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개봉 6주차에도 인기가 식지 않은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이하 원터 솔져)도 주목할 만하다. 윈터 솔져는 21세기에 새롭게 적응해 살아가는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의 눈부신 활약상을 담는다. 군인 신분이었던 스티브는 이제 어벤져스 히어로를 이끈 비밀조직 쉴드로 소속을 옮겼고, 때를 같이해 어벤져스의 실질적인 수장 닉 퓨리(사무엘 L. 잭슨)가 쉴드 본부로 돌아온다. 하지만 닉과 스티브는 누명을 쓰고 동료들로부터 쫓기는 신세가 된다. 원터 솔져는 복합적으로 얽혀 있던 70년대 정치 스릴러물의 상황과 구조를 다이내믹한 볼거리와 스케일로 녹여냈다. 시퀀스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의 액션을 선보인 스티브는 물론, 블랙 위도우(스칼렛 요한슨)와 팔콘(안소니 마키)의 화려한 개인기도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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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미래의 시카고를 무대로 삼은 ‘다이버전트’.

‘다이버전트’는 가까운 미래의 시카고를 무대로 삼았다. 잦은 전쟁과 자연재해로 폐허가 된 인류는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하나의 사회, 다섯 개의 분파로 나뉜 철저히 통제된 세상에 살게 된다. 그중 어느 분파에도 속하지 않아 금기시 되는 존재 다이버전트로 판정 받은 소녀 트리스(셰일린 우들리)가 나타난다. 그녀는 이 사실을 숨긴 채 돈트리스 전사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기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지도자 제닌(케이트 윈슬럿)이 다섯 분파를 조종하려는 음모를 알게 된다. 베로니카 로스의 3부작 소설 첫 번째 이야기를 영화화한 다이버전트의 주제는 이처럼 단순하고 도식적이지만 충분히 흥미롭고 독특한 가상 세계를 다룬다. 특히 사회 질서와 평화 유지라는 명목으로 특정한 행동 방침을 개인에게 강요하는 극 중 세계는 압제 정치의 전형이자, 오늘날 젊은이들이 처한 경쟁 사회의 구도를 그대로 투영한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 더해진 액션과 로맨스도 제법 맛깔스럽다.


◆ 가족과 함께라면 역시나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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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2’는 환상적인 아마존 모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애니메이션 4편도 눈길을 끈다. 먼저 ‘아이스 에이지’ 시리즈의 블루 스카이 스튜디오와 카를로스 살다나 감독이 ‘리오’ 이후 3년 만에 ‘리오2’로 돌아왔다. 아마존을 무대로 삼은 리오2는 ‘블루와 쥬엘이 마지막으로 남은 파란 마코 앵무새가 아니라면?’이라는 가정하에 출발한다. 아마존에서 파란 마코 앵무새들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 블루는 가족과 함께 아마존으로 떠난다. 하지만 가족들과는 달리 도시생활에 길들여진 블루는 아마존 정글이 불편하기만 하다. 여기에 복수를 꿈꾸는 나이젤과 불법 벌목꾼 등이 블루 가족을 위협한다. 리오2의 방점은 스크린을 형형색색으로 물들이는 화려한 볼거리와 온몸을 들썩이게 만드는 경쾌한 음악이다. 이번 역시 삼바 리듬은 물론, 뮤지컬·팝·라틴·힙합까지 골고루 담아냈다. 한 편의 흥겨운 뮤지컬을 보듯 눈과 귀가 즐거운 이유다. 특히 1편의 갈라 뮤직 시퀀스를 능가하는 환상적인 오프닝 장면은 그중 백미다. 환상적인 아마존 모험에 드라마틱한 이야기까지 담긴 리오2는 한층 더 풍부하고 생명력 넘치는 결과물로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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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속 동물 드래곤과 용맹함의 상징인 기사를 접목시킨 ‘드래곤 기사단’.

‘드래곤 기사단’은 위기에 처한 드래곤 왕국을 구하기 위한 드래곤 기사단의 활약을 다룬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신화 속 동물 드래곤과 용맹함의 상징인 기사라는 소재를 접목시켜 이미 전 세계 60여 개국에 수출돼 그 작품성을 입증한 바 있다. ‘성장모험극’을 표방한 드래곤 기사단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서 기존 애니메이션과 차별된다. 볼거리 위주의 스펙터클보다는 캐릭터들이 나누는 대화에 좀 더 주목했다는 점에서다. 엘피의 아버지 켄이 어떻게 기사의 용맹함을 되찾는지, 악의 화신 이골 칸이 왜 드래곤 왕국을 정복하려 드는지, 이 모든 사연을 보여주기보다 들려준다. 또 덴마크 감독이 연출한 유럽 애니메이션 ‘몬스터 왕국’은 엄마를 찾아 저승에 간 아기 토끼 토토의 모험을 그린다. 온갖 시련을 넘어서 토토의 엄마를 찾아가는 과정, 그리고 마침내 한자리에 모인 토토 가족이 함께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모습 등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게 만든다.

‘천재강아지 미스터 피바디’는 IQ 800에 노벨상을 수상한 최고의 인물이 다름 아닌 강아지라는 독창적 발상이 신선하다. 미스터 피바디는 못하는 게 없는 완벽하고 지적인 면모와 사랑스러운 매력을 지니고 있다. 타임머신 발명은 물론 대체 에너지 연구, 바텐더, 요리, 댄스까지 모든 면에서 완벽한 능력을 보여준다. 여기에 강아지가 인간 아들 셔먼을 입양한다는 설정은 기발하고, 세계 역사 속 한 축을 책임지고 있는 인물들에 대한 허를 찌르는 풍자는 통쾌하다. ‘라이온 킹’의 롭 민코프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 다양성영화의 매력을 느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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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30년차 부부의 2박3일 파리 여행기를 담은 ‘위크엔드 인 파리’.

중년의 감성을 자극하는 영화 두 편을 꼽을 수 있다. ‘위크엔드 인 파리’는 결혼 생활 30년차 부부의 2박3일의 파리 여행기를 그린다. 잃어버린 로맨스를 되찾고자 신혼여행지였던 파리로 두 번째 허니문을 떠난 닉(짐 브로드벤트)과 멕(린제이 덩컨)이 주인공. 매사 꼼꼼하고 현실적인 닉과 달리 충동적인 멕은 너무도 상반된 성격을 지녔다. 그런 멕이 결국 새 인생을 살고 싶다며 폭탄선언을 하게 된다. 하지만 닉은 자신의 옆을 지킨 아내가 이젠 없어서는 안될 자신의 일부가 되어버렸음을 느낀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는 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다. 두 사람은 우연히 마주친 동창 주체의 파티에 참석해 자신들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된다. 전작 ‘노팅 힐’을 통해 사랑의 판타지를 자극했던 로저 미첼 감독은 두 사람이 방문하는 모든 장소 속에 30년차 부부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에피소드를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바로 두 사람만의 긴 역사에서 비롯된 복잡성, 투닥거림, 습관, 사랑 등이다. 파리를 배경으로만 차용한 다른 영화와 달리 러닝타임 내내 함께 여행을 하며 대화를 나누는 듯한 독특한 체험을 전하는 영화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그간 유니크하면서도 낭만적인 연출을 선보였던 웨스 앤더슨 작품 세계의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27년 어느 날, 세계 최고 부호 마담 D.(틸다 스윈튼)가 의문의 살인을 당한다. 그녀는 유언을 통해 가문 대대로 내려오던 명화 ‘사과를 든 소년’을 전설적인 호텔 지배인이자 연인 구스타브(랄프 파인즈) 앞으로 남긴다. 그녀의 유산을 노리고 있던 아들 드미트리(애드리언 브로디)는 구스타브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구스타브는 충실한 호텔 로비보이 제로(토니 레볼로리)와 함께 누명을 벗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웨스 앤더슨은 소품, 의상, 무대미술, 음악, 그리고 시대에 따라 변하는 화면비율까지, 완벽하게 아름다운 미학적 공간을 창조해냈다. 웨스 앤더슨만의 독특하고 환상적인 세계에 할리우드 최고의 배우가 대거 참여한 건 그 점에서 당연해 보인다. 영화가 선사하는 예술적 성취와 만족감이 독특한 감흥으로 전해지는 작품이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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