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답사객 “동학의 성지인 대구에 기념관·비석 하나 없다니…”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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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0-24   |  발행일 2014-10-24 제34면   |  수정 2014-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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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수운 최제우 선생의 순도지(동아쇼핑센터 서편 지하주차장 입구)를 찾은 일본동학기행단이 박맹수 원광대 원불교학과 교수로부터 수운이 처형당했던 상황을 듣고 있다.


‘한·일 시민이 함께하는 동학농민군 역사를 찾아가는 기행’은 올해로 9회째다. 박맹수 교수는 “특히 올해는 동학농민혁명 120주년, 동학 창도주 수운 최제우 선생 순도 150주기를 맞아 의미가 깊다”고 했다. 일본 전국 각지에서 온 40명의 기행단의 이번 여정은 5박6일간이었다. 기행단은 1회 때부터 지금까지 주로 호남과 충청 등지에 있는 동학관련 현장을 답사해왔다. 대구방문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전날 경주 남산의 불교유적과 구미산 용담정 등을 둘러본 뒤 19일, 최제우가 갇혔던 경상감영의 옛 옥터와 종로초등학교 내 ‘최제우 나무’와 순도지(처형장), 일본군강제위안부역사관 등을 방문했다.

동학연구가 김성순·추연창 선생과 정지창 전 영남대 교수 등이 동행했고, 안내와 통역은 박맹수 원광대 원불교학과 교수가 맡았다. 전주와 고창에서 합류한 시민도 있었다. 이날 저녁에는 ‘역사를 직시하는 한·일시민 대구교류회’의 주최로 국채보상운동기념관에서 대구시민과의 만남이 이어졌다. 이 행사에서 올해 열렸던 ‘보은동학제’ 관련 영상관람도 있었다. 이 행사에 앞서 요시카와 하루코 일본 전 참의원(4선의원)이 포함된 ‘위안부문제와 젠더 평등세미나’ 회원 4명이 이용수 강제위안부 할머니와 안이정선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대표에게 강제위안부역사관 건립에 보태달라며 성금을 전달해 큰 박수를 받았다.

일본 기행단은 호남의 남원과 정읍 고창 등지에 있는 동학농민혁명 전적지와 충청의 공주에 있는 우금치 전투지 등을 답사한 뒤 일본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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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요시카와 하루코 일본 전 참의원(4선)이 국채보상운동기념관에서 이용수 강제위안부 할머니에게 강제위안부역사관 건립에 보태달라며 성금을 전달하고 있다.


●‘한·일 시민 함께하는 동학농민군 역사기행’ 동행 르포

日 방문객 ‘수만명의 조선인 희생’ 진실 알게되자 “日 정부 반성과 사과를”

기행단은 19일 오후 대구시 중구 경상감영공원 내 선화당과 징청각을 둘러보고 기념촬영을 했다. 일본인들은 박 교수의 말을 경청하며 모두 꼼꼼하게 수첩에 설명을 기록했다. 요시카와 전 의원은 “지난해 6월 한 세미나에서 동학혁명 때 일본인에 의해 수만명의 조선인이 학살됐다는 진실을 알게 됐다. 일본 정부가 반성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행단은 대구근대기념관에 들러 리플릿을 받은 후 종로초등학교로 발길을 옮겼다. 학교 교정에는 ‘최제우 나무’라 일컫는 회화나무가 있다. 김성순 선생이 회화나무가 최제우나무로 명명된 사연을 소개했다. 잠시 먹구름이 걷히고 햇살이 나왔다. 일행은 종로초등학교를 빠져나와 교문 맞은편에 개축 중인 강제위안부역사관을 들렀다. 요시카와 하루코 전 의원이 현수막에 방명록을 남겼다. 다시 대구중부경찰서를 지나 종로로 향했다. 40명의 일본인이 지나가자 한 시민이 “대구가 뭐 볼 게 있는데 저렇게 많은 일본사람이 오나”라고 했다.

종로는 수운의 순도길이다. 대구읍성 영남제일관 옛터를 지나 동아쇼핑센터 서편 지하주차장에 다다랐다. 이곳은 대구읍성 옛 남문 장대였다. 현재는 한국우주소년단 대구지부가 있는 문화아파트 일대다. 문화아파트와 백화점을 경계 짓는 나지막한 담벼락에 올라서서 박 교수가 순도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순도기념관은 물론 순도표식도 없다.

이번 기행을 포함해 아홉 차례나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동학기행단에 참가한 유이 스즈에씨는 전직 중학교 사회교사다. 그녀는 “제자 가운데 재일동포출신 학생이 있었는데 그의 아버지가 대구 출신 강제 징용자였다. 그의 선친이 마쓰시로 대본영(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 때 강제 징용된 조선인 노무자 1천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곳)의 벽에 ‘大邱’라고 쓴 것을 봤다”면서 대구와의 인연을 이야기했다.

그녀는 “동학이 갑자기 출현한 게 아니라 과거로부터의 사상 속에서 동학이란 새로운 사상이 생겨났다. 답사를 올 때마다 새록새록 새로운 사실을 알고 간다”고 했다. 그녀는 “현재 일본에서 많은 국민의 존엄이 무시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아베 내각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호남과 충청 등지에 비해 대구는 동학 관련 기념관 하나 없는 게 이상하다”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문화아파트 일대를 가리키며 “이곳이 수운의 순도지”라고 말하는 박 교수의 말에 이곳을 찾은 일본인들이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했다.

전북 정읍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동학기행단에 참가한 최은희씨는 “수운이 남원에서 7개월 정도 머무르며 경전을 썼는데 남원에는 수운과 관련해 여러 표석과 기념비가 있다”면서 “동학의 머리와 뿌리가 되는 대구에 순도 비석 하나 없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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