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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서울서 어린이 뮤지컬로 대박
극단서‘돈만 밝힌다’ 지적 받고 떠나
유학 앞두고 지인 보러 대구 왔다 정착
수익 많았지만 집시처럼 동가식서가숙
룸펜형 유목민 배우. 차림새는 뉴요커 같다. 일상에서의 그의 대화는 거의 연극 대사 수준이다. 한 마디 할 때마다 폭소를 자아낸다. 걸어다니는 ‘스마일 메이커’랄까.
누군가는 그를 두고 ‘대구에 꼭 필요한 천재’란다. 56세의 총각. 평생 가게에서 사 신은 양말을 팔면 빌딩 하나는 세울 정도란다. 아르마니 슈트에 명품 남방 윗 단추 두 개를 열고 페라가모 구두를 신고 컨버터블 벤츠를 타고 지중해 해안도로를 5월의 장미처럼 달려가는 CEO 같은 연극배우를 꿈꾼다. 연극배우라고 하면 다들 우중충, 꾀죄죄, 추레해야 되는지에 딴죽을 건다. 물론 때 빼고 광낸 물찬 제비 같은 맵씨를 밉상스럽게 보는 연극인도 있다.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딤프) 집행위원장 권한대행과 대구연극협회 회장을 역임한 그는 대구 말 중에 가장 싫어하는 게 있다. ‘우리가 남이가’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 남이 아닌가. 우리가 남인데 자꾸 남이 아니라고 하니 대화문화가 저급해질 수밖에.”
학창 시절엔 엄청 똘똘했다. 우등생인 그는 장차 판사 1순위로 촉망받는다. 그런데 중3 때 전철 타고 가다 안양예고 간판의 스튜디오 무대란 단어에 필이 꽂힌다. 찾아가니 교정에선 신상옥 감독의 영화 ‘여수407호’가 촬영 중이었다. ‘못 먹어도 안양예고 GO’였다. 연극 장학생이 되고, 이어 극단 ‘배우극장’의 말석이 된다. 매일 김치통에 김치 대신 풀을 담고 포스터를 붙이러 다녔다. 동대문에서 출발, 경기도 시흥까지 3천장을 붙이러 다녔다. 야수의 눈빛이었다. 그의 열정을 본 극단 춘추, 신협, 산하, 뮤지컬 극단 미리내 등이 러브콜한다.
그는 ‘연극 DNA’가 출중했다. 책을 보면 그걸 연극적 시간과 공간으로 그림 그릴 줄 알았다.
80년대 중반 서울 연극판은 심각한 불경기를 겪는다. 24세의 그는 불황을 타지 않는 어린이 뮤지컬에 손을 댄다. 신촌 그랜드 백화점에 진을 치고 혼자 북 치고 장구 쳤다. 공연은 대박이었다. 하루 공연 수익금이 700여만원. 서울 변두리 집값이 2천여만원일 때였다. 40분짜리 공연을 매 시간 올리다 보니 코피가 진동했다. 배고픈 후배를 위해 쾌척하려고 했다. 하지만 극단 대표로부터 엄청나게 깨진다. 돈만 밝힌다는 지적이었다. 극단을 나왔다.
더 단단해지기 위해 유학을 결심한다. 하지만 대구에 발목이 잡힌다. 27세에 대구에 ‘돌아온 장고’처럼 들이닥쳤다. 일본 유학을 가기 전 지인을 만나기 위해 대구로 왔다. 당시 열악한 대구 연극판을 목격했다. 자신의 경험이 도움이 될 것 같아 잠시 대구에 눌러앉은 것이 오늘까지 오게 된다. 몇 년간 모아둔 유학자금을 다 털어넣어 어린이 뮤지컬 제작에 나선다. 지역의 첫 뮤지컬 격인 미국 브로드웨이의 가스펠은 물론 서울발 인기 어린이 뮤지컬도 올렸다. 지역 첫 뮤지컬 전문 극단 ‘HMC’도 창단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관객으로부터 얻은 수익을 다시 관객에게 돌려주고 유학 자금만 회수하면 된다고 구상했는데 객석은 텅텅 비었다. 100만원 적자였다. ‘빚쟁이 박현순’이 되었다. 어떤 연극인은 그를 ‘서울서 굴러 들어온 돌’로 배척했다. 본전이 아니라 ‘오기’ 때문에 대구를 뜰 수 없었다.
그런데 그의 대구연극에 대한 배려를 인정해주는 사람이 생겨 다른 라운드를 저지르게 된다.
당시 대구의 관객은 서울에 비하면 풋풋하고 청순하고 촌스러움이 있었다. 그런 기운이 그에겐 ‘설렘’이었다. 연애하는 맘으로 무대에 올랐다. 그동안 연극 및 뮤지컬 ‘햄릿’ ‘고도를 기다리며’ ‘로미오와 줄리엣’ 등 100여편이 넘는 연극에 출연했다. ‘살짜기옵서예’ ‘판타스틱’ ‘가스펠’ ‘캣츠’ ‘사운드 오브 뮤직’ 등을 기획·제작·연출했다. 그동안 벌어들인 수익금만 줄잡아 100억여원. 대다수 투자자와 배우에게 돌아갔다. 정작 본인은 자신의 집을 후배 연기자들의 숙소로 제공하고 있다. 그는 철없는 집시처럼 동가식서가숙하며 ‘제2 연극 부흥기’를 설계 중이다. 그는 무대에 대한 설렘이 사라지면 연극을 버리겠단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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