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김천 개령면 감문산 계림사

  • 류혜숙 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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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7-24   |  발행일 2015-07-24 제36면   |  수정 2015-07-24
쪽문처럼 선 문짝 없는 문…경내로 내딛는 발걸음이 영원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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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시 개령면 감문산 계림사. 신라 눌지왕 때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작은 사진은 계림사 대웅전과 요사채. 대웅전은 1990년에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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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림사 입구. 돌계단 위에 문짝 없는 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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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림사 석조나한좌상. 인근 산에서 발견된 것으로 조성 연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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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서쪽 산기슭에 삼성각이 자리하고 그 아래 노천에 불상이 모셔져 있다.


휘어진 돌계단 위에 좁고 작은 문 하나가 열려 있다. 낮고 긴 담장 사이, 정문도 아닌 쪽문처럼 서 있다. 문은 문인데, 문짝이 없는 문이다. 문 앞엔 커다란 자귀나무 한 그루가 지키고 서 있고, 새의 깃털 같은 꽃들은 돌계단 위에 압화로 놓여 있다. 바람 불고 꽃 한 송이 어깨에 와 앉아, 두근거리는 걸음으로 함께 오른다.

신라 불교공인 한 세기 전
아도화상이 419년에 창건
조선후기 중창했으나
현재 건물은 1990년대의 것
감문산은 범이 엎드린 형상
산의 氣 누르려고 닭기르다
후에 절이름 계림사로 바꿔
대웅전 옆에는
두건 쓴 희귀 마애불상
고려말∼조선초기 조성 추정


◆ 아도화상과 계림사

이 작고 좁은 문을 통과하는 일이 조금 이상하다. 공간의 이동이 순간 같기도 하고 영원 같기도 하다. 문턱을 넘어 경내로 들어오는 것이 아직 누구도 알지 못하는 우주의 일처럼 느껴진다. 들어서면 요사채의 옆모습과 마주하고, 마당은 오른쪽에 넓게 펼쳐져 있다. 새로운 세계처럼 깨끗하고, 단정하다.

마당의 정면에 대웅전, 그 양쪽에 요사채, 대웅전 왼쪽에 용도를 알 수 없는 작은 건물이 한 채 있다. 문이 꼭 정지문으로 보이는데, 옛날 노스님의 거처가 아닐까 싶다. 대웅전의 서쪽 산기슭에 삼성각이 자리하고, 오른쪽 요사채 뒤에 작은 텃밭이 있다. 가지와 호박 따위가 자라고 있는 텃밭을 백구가 지킨다. 어찌나 사람을 반기는지 짠하면서도 마음 따스해진다.

계림사(鷄林寺)는 도리사와 직지사를 창건한 아도화상이 신라 눌지왕 때인 419년에 초창했다고 전해진다. 이는 신라가 불교를 공인하기 근 한 세기 전의 일이다. 아도화상은 고구려 승려 묵호자와 동일 인물로 추정되는데,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고구려에서 신라로 들어왔다고 한다. 그는 지금의 구미 도개면 모례라는 이의 집에 기거하며 낮에는 소와 양을 치고 밤에는 법문을 설파했다 한다.

창건 이후 조선 후기에 중창될 때까지 계림사의 자세한 연혁은 전해지지 않는다. 순조 때 중창이 있었고, 1922년에 중건되었으며, 현재의 건물들은 1990년대의 것이라 한다. 대웅전에는 석가여래 삼존좌상과 후불탱이 봉안되어 있다.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협시하고 있는데, 석가여래상의 복장기에 의하면 영조 4년인 1728년에 봉안했다고 한다. 상당한 연륜의 부처님이시다.

◆ 노천의 마애불

대웅전 옆 노천에 마애불이 한 분 계신다. 작은 절집이지만 꼭꼭 숨겨진 것처럼 자리하고 계신다. 높이가 170㎝, 두께 30㎝가량의 바위 표면에 3㎝ 정도의 깊이로 얇게 부조된 부처님이시다. 10년쯤 전, 인근 산기슭에 묻혀 있던 것이 홍수 때 발견되어 계림사에 모셨다 한다. 머리에 두건을 쓰고 결가부좌한 모습으로 대부분 흐릿한데 손만이 뚜렷하다. 앙상한 두 손을 깍지 끼고 엄지를 맞대고 있는 수인으로 이 마애불을 제외하고는 알려진 바가 없다고 한다. 두건을 쓴 모습도 그 예가 매우 드물어 희귀한 마애불로 여겨진다. 조성 연대는 알 수 없지만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로 추정하고 있다. 두 손을 모은 모습이 너무나 간절하다. 누구의 기원이 깃들었기에 저리도 간절할까. 아주 빼어난 솜씨는 아니지만, 자꾸만 바라보게 되는 모습이다. 석공의 소원 같기도 하다.

◆ 절을 지어 산의 기를 누르다

대웅전 앞에 서면, 낮고 긴 담장 너머 절집을 살짝 감싸 안은 숲과 먼 산의 실루엣이 보인다. 담백하고 시원하고 안온한 느낌이다. 그러나 계림사가 자리한 감문산(甘文山)은 풍수적으로 범이 엎드린 형상이라 한다. 그래서 그 기가 드세 맞은편 마을에는 흉흉한 일이 잦았다고 한다. 계림사의 창건에는 이 산의 기를 누르기 위해 아도화상이 절을 짓고 닭 천 마리를 기르면 나쁜 일이 사라질 것이라 했다는 전설이 있다. 그의 말대로 절을 짓고 닭을 기르자 안 좋은 일들은 모두 사라졌고, 이후 닭 기르기를 대신해 절 이름을 계림사(鷄林寺)로 고쳤다 한다.

또한 감문산은 삼한시대 감문국의 내성으로 나라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였다고 전해진다. 당시 감문국 사람들은 이 산을 성황산이라 부르며 신성시해 명당이 많아도 무덤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산 아래 개령면 마을에는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쌍샘이라는 샘물이 있는데, 이 산에 누군가 몰래 묘를 쓰면 샘물에서 흙탕물이 솟고, 그러면 지금도 마을 사람들은 산을 뒤져 몰래 매장한 묘를 찾아내 없앤다고 한다.

무덤이 없는 신성한 산, 그래서 이리도 청청하고 적적한가. 이 산을 경주의 계림과 같이 신비한 숲이라 계림(鷄林)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흰 닭의 울음소리와 함께 김알지는 경주 계림에서 태어났다. 이곳 계림은 강하고 신비로운 신라를 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경부고속도로 동김천IC로 나가 구미 선산 방면 59번 국도를 타고 간다. 개령면 사무소 안내판이 보이는 곳에서 좌회전하여 마을을 관통해 산 쪽으로 한참 올라가면 계림사다. 길이 매우 좁으니 조심해야 한다. 절집 앞 주차장이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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