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 .10] 중국에서 태어난 조선민들의 꿈

  • 노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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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0-30   |  발행일 2015-10-30 제6면   |  수정 2022-05-19 09:58
“한국서 남은 生 마무리하고파” “국적 달라 차별당할 때 가슴 아파”

중국 내 경상도 마을인 홍신촌의 청년 상당수는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꿈을 위해 한국으로 떠났다. 그렇게 비어버린 홍신촌은 70대 이상의 어르신들이 지키고 있다. 한국으로 가고 싶은 마음은 이곳에 남아 있는 어르신들도 마찬가지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신의 뿌리가 어디인지 알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하다.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부모가 살았던 곳, 그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시간이 많지 않다. 몸은 늙어가고 기억은 가물거린다.

◆ 70년을 살았어도 고향은 한국

[디아스포라 .10] 중국에서 태어난 조선민들의 꿈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한 애국지사의 손녀라고 밝힌 이경숙 할머니가 홍신촌 양로원에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의 눈은 촉촉히 젖어 있었다.

애국지사 후손인데 안 믿어줘
한국정부 사실 확인만이라도…

중국서 태어났어도 난 조선민족
가고 싶은 이유 더 필요합니까

최두영 할아버지(75)는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고향을 물어보면 ‘봉화군 춘양면’이라고 말한다. 그의 아버지는 봉화에서 태어나 7세이던 1913년 중국으로 건너왔다. 그는 아버지의 고향을 춘양면 어향리로 기억하고 있지만, 그런 동네는 없었다. 취재진이 “‘의양리’라는 곳이 있는데 이것을 잘못 기억하시는 것 아니냐”고 묻자 그는 “어향리가 맞는데”라고 하면서 메모지를 꺼내 ‘의양리’를 한글로 적었다. 그리고는 힘 없는 소리로 “찾을 수 있겠지”를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홍신촌 양로원에서 만난 이경숙 할머니(70)는 자신이 독립운동 애국지사의 후손이고, 고향은 안동이라고 했다. 1993년부터 7년간 한국에 들어와 일했고, 그때 국립대전현충원에 있는 할아버지 묘소도 찾았다. 그는 중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 국적을 얻기 위해 잠시 귀국을 했다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그 이후 15년 동안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만 가진 채 양로원에서 머물고 있다. 한국에 있는 친척들이 독립유공자의 후손이 맞다고 설명해도 한국 정부는 믿어주지 않았다고 그녀는 말했다.

이 할머니는 “이런 걸 어떻게 거짓말을 하겠느냐. 믿어주지도 않고, 사실확인도 안 한다”며 답답해했다. 애국지사인 할아버지의 이름은 ‘이극호’, 작은 할아버지는 ‘이용호’, 아버지 이름은 ‘이소구’, 작은 아버지는 ‘이철구’라고 했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독립유공자의 경우 손자까지 등록된다. 하지만 두 사람의 기록에 그녀의 이름은 없었다. 다만 할아버지 두 분이 안동에서 활동했고, 같은 날 유공자가 됐다. 이용호 어르신 밑에 철구·소구라는 아들이 있고, 59년생인 ‘미숙’이라는 손녀가 등록돼 있었다. 이 할머니의 아버지 이름에도 ‘구’가 들어가고, 손녀의 이름는 ‘숙’이 들어가는 공통점이 있어 확인해 볼 가치는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은 생은 한국에서 마무리하고 싶소. 여기서 태어나 70년 살았지만, 아직도 쉽게 나오는 말은 조선말이오. 한국에서 안 태어났어도 조선민족이잖소. 가고 싶은 이유가 그거면 충분하지, 뭐가 더 필요합니까” 이 할머니는 불편한 손을 들어 눈물을 훔쳤다.

◆ 같은 민족으로 끌어 안아야

[디아스포라 .10] 중국에서 태어난 조선민들의 꿈
조선족 3세인 김호씨는 한국에서 재외동포들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제대로 설명해주면 재외동포에 대한 편견은 크게 사라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중국과 한국 모두 차별 대우
한국인은 우릴 중국인으로 봐

조선족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제대로 알려야 편견 사라질것

중국으로 옮겨진 1세대와 고국에 대한 기억이 남은 1.5세대는 대부분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남아있는 1.5세대와 중국에서 태어나 더 오랜 시간을 산 2세대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다만 자신들의 뿌리를 찾고 싶어한다. 이들에게는 평생을 살아 온 중국이 오히려 더 편하다. 그렇게 그들은 고국으로 돌아갈 시간을 놓쳐버렸다. 우리가 너무 늦은 탓이다.

하지만 중국 국적을 가진 우리 민족인 조선족 3세대에까지 늦어서는 안 된다. 같은 민족임에도 ‘조선족’이라는 편견으로 그들을 가두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들을 우리 민족으로 끌어안으려는 노력마저 늦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김호씨(30)는 조선족 3세대다. 아버지의 고향은 안동, 어머니는 상주 출신이다. 그는 조선족 학교를 졸업했고, 중국말과 조선말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한국에도 10개월 정도 다녀왔다. 아직 한국 사람에 대한 기억이 긍정적인 그는 “살고 있는 나라는 달라도 한민족이라는 생각이 좀 더 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중국과 한국 모두에서 조선족이라고 차별받는다. 중국이 차별하는 것보다 같은 민족인데 국적이 다르다고 차별당하면 그게 더 가슴아프다. 한국 사람은 우리를 같은 민족으로 보는 게 아니라 그냥 중국 사람으로 보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이러한 편견의 벽을 허물기 위해서는 한국 내에서 조선족에 대한 역사교육을 좀 더 많이 시켜줬으면 좋겠다고 그는 전했다.

그는 “중국에 있는 조선족이 왜 여기에 오게 됐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학생들이 제대로 알게 되면 편견은 사라질 것 같다”면서 “예전에 TV와 신문 등에서 이산가족찾기 등을 했던 것처럼 한국에서 이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해 같은 민족인데 떨어져 살 수밖에 없는 사정을 제대로 알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사진=중국 하얼빈시에서 노인호기자 su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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