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주민 절반이 우물물 먹고 토지분쟁에 언제 철거될지 몰라”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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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2-04   |  발행일 2015-12-04 제5면   |  수정 2015-12-04 07:29
■ 고향이 대구인 황순예씨
“지금도 주민 절반이 우물물 먹고 토지분쟁에 언제 철거될지 몰라”

대구 월배가 고향인 황순예 할머니(83)는 아버지를 찾아 우토로까지 흘러들어왔다. 일본으로 끌려간 아버지를 찾아 처음 도착한 곳은 교토였다. 그 뒤 조선인들이 많이 끌려와서 일하고 있다는 소문을 따라 우토로로 왔다. 황 할머니가 12세 되던 해였다. 아버지는 찾을 길 없고, 16세이던 오빠마저 태평양전쟁이 일어나면서 군대에 끌려갔다. 먹고살기 위해 고철을 주워팔고, 산에서 나물을 캐고, 들판의 낟가리를 주웠다. 굶어죽지 않은 것이 오히려 기적 같던 시절을 견디고 광복을 맞았다.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잔치를 벌였다. 이제 곧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그때는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고향으로 돌아갈 돈도, 뱃길도 없었다. 항구에서 바다만 바라본 날들이 하루이틀 쌓여 갔다. 속절없는 세월이 흘렀고 할머니는 이곳에서 결혼을 하고 3명의 자식을 낳아 길렀다. 그래도 언젠가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아이들에게 땅바닥을 공책 삼아, 막대기를 연필 삼아 말과 글을 가르쳤다.

“묵고살 게 어디 있나. 촌에 나락도 베고, 풀도 매고. 나물 캐와 팔고 그래 살았다. 밥이 다 뭐꼬. 나물죽이라도 끓이 묵으마 다행이었제.”

우토로에는 상수도는 물론 하수도도 없었다. 상수도가 마을에 설치된 건 1988년의 일이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세대는 상수도에서 물을 끌어다 쓸 수 있는 관을 설치했지만, 절반 이상의 세대에서는 지금도 우물물을 길어다 쓰고 있다.

황 할머니의 집 옆으로는 함바집이 무너질 듯 서있다. 1980년대까지도 사람이 살던 곳이다. 낡아서 비가 새고 벽이 허물어져도 우토로 사람들은 어쩌지 못했다. 마을 전체가 토지분쟁에 휩싸이며 언제 집이 철거될지 몰랐기 때문이다. 앞으로 계속 여기서 살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황이 수십년간 이어지면서 마을의 모습은 1980년대 말에서 그대로 멈췄다.

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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