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구 시인(65·전 대구문인협회장)은 스승인 송영목 전 계명문화대 학장(79·문학평론가)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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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하던 커피숍 옆에 있는 공원에서 포즈를 취한 송영목 전 계명문화대 학장(왼쪽)과 공영구 시인. 이들은 1966년 사제지간으로 만난 뒤 50년 넘게 좋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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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봄 팔공산 가산산성으로 등산을 가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공 시인(왼쪽)과 송 전 학장. |
“여든이 다 된 나이에도 아직 사리분별력이 아주 뛰어납니다. 철두철미하고 세심한 성격은 제가 선생님을 처음 뵈었을 때인 1966년이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기자가 봐도 송 전 학장에 대한 공 시인의 평가는 적확한 듯했다. 멋진 은발에 약간 마른 듯한 체구, 흰 머리와 대조를 이루는 검은빛이 도는 짙은 색 양복은 송 전 학장을 약간은 차갑게 느껴지도록 했다.
그렇다면 송 전 학장이 바라보는 공 시인의 모습은 어떠할까. 늘 베풀고 사람들과의 친화력도 대단한 사람이란 평가다. 송 전 학장의 말을 들어보면 그것도 딱 맞는 말이다. 공 시인은 얼굴에서 풍기는 이미지부터 푸근한 옆집 아저씨 느낌을 준다. 그리고 늘 웃는 얼굴이 보는 이에게 넉넉함과 편안함을 준다.
◇ 시인 등단 후 본격적 만남
“직장생활하면서 틈틈이 썼던
詩내밀며 작품평가 부탁하자
어깨 두드려주며 용기를 줘
그때 기분 결코 잊을 수 없어”
◇ 문인협회 일하며 친분 과시
공 시인이 협회장을 맡으면서
문학 조언 구하려 자주 만나
사비 쓰며 협회일 하는 제자가
송 학장 눈엔 늘 자랑스러워
이들 각자의 평가를 들어보면 두 사람의 이미지나 성격은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두 사람은 궁합이 너무나 잘 맞는 듯하다. 서로에게 이런 스승, 이런 제자를 둔 것이 자랑스럽다는 말을 인터뷰 도중에 수시로 했다.
이렇게 서로에 대해 자랑스러움을 느끼고 아직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볼 정도로 끈끈한 정을 이어오고 있는 이들은 1966년 공 시인이 영남고 2학년일 때 스승과 제자로 만났다.
“제가 처음부터 문학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국어 고문 수업을 하셨던 송 선생님을 비롯해 김종태·김규련·윤태혁 선생님 등 후일 대학교수나 시인이 된 쟁쟁한 국어선생님이 많았습니다. 이 분들의 수업을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문학에 대한 꿈이 돋아난 것이지요.”
이 말 끝에 공 시인은 자신이 시인의 길을 걷게 된 과정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했다.
“이런 뛰어난 국어 선생님 아래에서 공부를 한 뒤 대학과 군대를 거치고 대구 경신고에서 국어교사를 했습니다. 경신고에 부임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로 기억합니다. 우연히 버스에서 시인으로도 활동하셨던 윤태혁 선생님을 만나고 나서 본격적인 시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시의 깊이나 경향 등에 대해서 좀 더 전문적인 조언을 듣고 싶으면 송영목 교수를 찾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송 전 학장은 영남고에서 4년간 근무한 뒤 계명문화대로 직장을 옮겼다). 그래서 송 교수님을 찾아뵈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학교에서 송 전 학장에게 수업을 들었지만 송 전 학장에게는 워낙 제자들이 많았던터라 공 시인과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1988년 졸업 20주년 행사장에서 졸업한 뒤 처음 송 전 학장을 뵈었는데 이때부터 송 전 학장은 공 시인을 확실히 기억했다. 하지만 이들의 끈끈한 인연이 시작된 것은 1996년 자신의 시를 가지고 작품평을 해달라고 공 시인이 송 전 학장을 찾아갔을 때부터였다.
그 당시를 공 시인은 이렇게 회상했다.
“갓 등단한 새내기 시인이 문단의 대선배이자 스승님이던 분을 찾아가니 그저 오금이 저리고 입이 붙어 말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제 기억 속의 선생님은 늘 철두철미하고 성격이 무척 깔끔한 분이었으니까 더욱 안절부절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저의 마음을 아셨는지 선생님은 저의 어깨를 서너 차례 두드려주며 용기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점심까지 사주셨지요. 그때의 좋은 기분은 아직도 잊어지지 않습니다.”
“제자가 시를 써 찾아와서는 봐달라고 하니 기특하기도 하고 스승인 제가 뭐라도 좀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시도 좋았을 뿐만 아니라 직장 다니며 시를 쓰는 것이 쉽지 않은데 이렇게 열심히 쓰는 제자를 보니 제가 저절로 뿌듯했습니다.”
이후로 공 시인은 수시로 스승을 찾아갔으며 문학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2009년 공 시인이 대구문인협회 사무국장을 맡게 됐는데 이 일을 맡고 난 뒤 오랫동안 대구문인협회에서 활동을 했던 송 전 학장을 더욱 자주 찾아뵙고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2011년까지 사무국장을 맡은 공 시인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대구문인협회 회장으로도 일했다.
송 전 학장은 공 시인에 대해 좋은 제자이자 시인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본 최고의 대구문인협회장이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1960년대부터 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유치환 선생 등 많은 문인협회장을 곁에서 모시고 일을 도왔지만 공 시인처럼 회장 일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 일하고, 좋은 성과를 낸 회장은 보기 힘들었습니다.”
송 전 학장은 이 말을 하면서 공 시인이 회장으로 활동한 3년 임기 동안의 성과를 이야기했다. 2013년 ‘대구문협대표작 선집’을 펴낸 것을 비롯해 2014년 ‘원로문인작품집’ 발간, 대구지역 문인 42명의 핸드프린팅 제작, 작고문인들의 시비 10개 설립 등을 대표적 성과로 꼽았다.
“흔히 회장이라는 자리에 오르면 회원들이 회장을 섬기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은데 공 시인은 달랐습니다. 늘 섬김의 자세를 가졌고 회원들에게 하나라도 더 베풀려고 노력했습니다. 사실 이렇게 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 말을 하면서 송 전 학장은 공 시인이 교직을 떠난 뒤 받고 있는 연금까지 써가며 협회장 활동을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공 시인의 부인이 아직 현직 교사이다보니 공 시인은 자신이 받는 연금을 거의 협회장 활동에 썼습니다. 아내의 돈으로 생활하면 되니 협회를 위해 자신의 연금을 아낌없이 쓴 것이지요.”
그래서 3년간의 재임 시절은 그야말로 생명력이 있는 협회였다는 말도 송 전 학장은 덧붙였다. 그래서일까. 그가 회장자리에서 물러난 뒤 그를 따르던 문인들이 중심이 돼 지난해 2월 ‘일일문학회’도 창립됐다. 송 전 학장은 고문을, 공 시인은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현재 회원이 60여명이나 되고 지난해 12월에는 일일문학회 창간호도 냈습니다. 박신헌 평론가가 일일문학회 회장을 맡고 있지만 이 모임의 기둥역할을 공 시인이 하고 있지요. 공 시인은 성격과 인심이 좋다보니 한번 관계를 맺은 사람과는 그 관계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문학활동은 물론 모든 사회활동에 있어 어떤 모임의 우두머리가 되면 섬기는 자세로 일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공 시인은 변함없이 이런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그래서 이런 모임도 만들어진 것이고요.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니 곁에 있는 사람들이 저절로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든 것이겠지요.”
인터뷰 초에만 해도 말이 별로 없던 송 전 학장은 제자의 칭찬에서는 넘칠 정도로 많은 말을 했다. 그만큼 제자가 믿음직하고 자랑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스승의 이런 칭찬에 공 시인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문인협회 사무국장을 할 때부터 회장직을 그만둘 때까지 늘 스승님이 도와주었기에 일을 잘 할 수 있었다”고 했다.
특히 사무국장을 하다가 회장에 입후보하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는데 그때 큰 힘과 용기를 준 분이 바로 송 전 학장이었다는 말도 했다. 협회 회장을 할 동안 공 시인의 대부처럼 뒤에서 지켜봐주면서 격려와 용기를 주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 따끔하게 지적해 개선하도록 해주었다.
송 전 학장은 영남고에서 일한 것이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이런 훌륭한 제자가 있다는 것이 그 학교에서 일한 큰 보람이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송 전 학장은 인터뷰 말미에 좋은 시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시는 결국 글쓰는 사람의 성격, 인품을 반영하기 마련인데 공 시인의 작품을 보면 이것이 특히 잘 드러난다고 했다.
“공 시인은 시도 상당히 잘 씁니다. 이런 좋은 시는 결국 좋은 인품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인품이란 말이 나오자 공 시인은 “좋은 스승을 두어서 그나마 사람 노릇하고 산다”며 “스승님의 좋은 가르침이 부족한 저를 많이 성장시킨다. 지금도 그 성장은 이어지고 있다”는 말을 했다.
끊임없이 서로를 발전시키는 두 사람의 관계를 보면서 이것이 진짜 좋은 인연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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