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가을의 상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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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1-07   |  발행일 2016-11-07 제30면   |  수정 2016-11-07
[아침을 열며] 가을의 상념들
김형곤 법무법인 중원 구성원변호사

아름다운 풍광의 이 가을에
‘저질 연극’때문 눈 버릴 지경
400여년전도 권력에 독버섯
그러나 왕조시대 아닌 지금
선출직 대통령이 책임 져야

가을은 원래 아름다운 연극이었다. 처음에는 온갖 풍성한 과일과 황금빛 물든 들녘으로 한여름 흘린 땀에 보답하며 인간으로 하여금 감사의 마음을 느끼게 한다. 뒤이어 온 산을 울긋불긋 물들이며 수채화를 연출하여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한다. 막바지에는 낙엽과 함께 앙상한 가지들을 보여주면서 겨울을 준비하는 자연의 지혜와 겸손을 알게 하며 내면을 돌아보는 사색의 시간을 제공한다.

올해는 가을의 아름다운 수채화 공연이 채 끝나기도 전에 눈을 버릴까봐 보는 것조차 꺼려지는 저질스러운 연극이 전국에 방영되고 있다. 권력이라는 나무는 오랜 가뭄이나 추위 속에서도 변함없이 자신에게 자양분을 공급한 토지의 고마움을 곧잘 잊는다. 제 잘난 양 잡풀들과 어울려 춤을 추다가 볼썽사납게 암덩이 같은 뿌리들을 그대로 토지 위로 드러낸다. 음지에 자생하여야 할 독버섯은 권력의 나무그늘 아래에서 기생하다가 너무 몸집이 커져버려서 제 죽을 줄 모르고 양지에 버젓이 몸을 내밀다가 급기야는 숙주인 나무마저 침범하여 말라버리게 할 지경에 이른다는 내용이다.

독버섯은 하나의 개체에 그친 것이 아니라 어느새 무리를 만들어 그 독소가 주변의 초목을 죽여가고 있다. 야경꾼인 올빼미는 이를 알고도 한마디 울음조차 뱉어내지 못하고 침묵만 지키다가 갑작스럽게 불어닥친 한파에 독버섯이 시들려하자, 뒤늦게 듣기 거북한 쉰 목소리로 애를 쓰며 목청을 올리려든다. 늘 그렇게 해왔듯이 한 치의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한 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조선 중종 재위 32년인 1537년 가을을 회상해 본다. 반정을 통하여 왕이 된 중종이 공신들을 견제하기 위하여 조광조를 중용했다. 그러나 조광조의 지지 세력이 점차 커지자 왕권의 약화를 두려워하여 심정, 남곤을 이용하여 조광조를 물리치고 다시 수년 후 김안로를 이용하여 심정 등을 사사하였다. 중종은 1537년 가을 밀지를 내려 결국 김안로도 처단하기에 이른다. 조선의 대표적 간신인 심정, 김안로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다년간 휘두를 수 있었던 것은 중종의 두터운 신임 때문이다. 그것은 결국 왕좌를 유지하기 위한 중종의 흑심에 기인한 것임에도 정사를 그르친 책임은 심정, 김안로에게만 돌려졌고 중종은 무려 39년간 재위를 보전하게 된다.

또한 그 후 명종의 모후인 문정왕후의 남동생 윤원형은 을사사화를 통하여 대윤 일파인 윤임 등을 몰아내고 권세를 장악하여 대사헌을 거쳐 영의정까지 올라가면서 매관매직 등 온갖 부패를 일삼았다. 윤원형의 부인 정난정은 문정왕후의 총애를 바탕으로 무시로 궁궐을 드나들면서 상권을 장악하여 전매, 모리행위로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정경부인의 직첩을 받았다. 그런데 문정왕후가 죽자 사간들의 탄핵에 의하여 윤원형은 유배를 갔고 정난정은 천인으로 강등되었다가 부부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최후를 맞이한다.

지금 400여 년 전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절대 권력에 기생하여 일생의 영달만 꾀하는 무리들의 작태는 큰 변함이 없고, 부패 권력을 견제하여야 하는 조선의 사간원, 사헌부나 현재의 언론, 검찰이 권력 앞에서 제때에 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마음이 더욱 무거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세습왕조 시대가 아니라 민주공화국 시대이며 정치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위임을 받은 것에 불과하다. 국정 운영의 잘못에 대하여 민주공화국 시대에는 참모들에게만 책임을 전가할 수 없고 궁극적으로 선출직인 대통령이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며, 권력실세들의 국정농단에 대해서는 준엄한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

북핵문제를 비롯해 한반도 주변 정세가 불안정하고 성장률 둔화와 청년실업 증가 등 경제상황도 어려워 작금의 사태는 국민을 좌절감에 빠지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반세기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의 경제성장과 민주화는 한 사람의 지도자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국민의 땀과 희생으로 성취한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쉽게 폄훼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우리 국민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고 성실하므로 현재의 위기를 충분히 잘 극복할 수 있다.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다는 믿음만 다시 가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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