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여년 된 여관에서 낭만적 하룻밤…당나귀고기 요리도 맛보세요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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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02   |  발행일 2017-06-02 제35면   |  수정 2017-06-02
■ 푸드로드 전북 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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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순창고추장 못지 않게 인기를 끌고 있는 게스트하우스 금산여관. ‘금산헌’이란 당호를 가진 한옥 본채는 밤이면 여행자의 토크쇼 파티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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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적 여행가 겸 히피로 불리는 ‘방랑싸롱’ 장재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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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도둑을 맞아 사라질 뻔했다가 제자리로 돌아온 장군목의 명물 요강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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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도시와 달리 돼지피만으로 만든 순창식 피순대.

순창에 온 관광객은 고추장의 유래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고추의 유입에 대한 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중국으로부터 직접 유입되었다는 것과 임진왜란을 전후로 일본에서 전래되었다는 것이다. 1613년(광해군 5)에 출간된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남만 후추는 큰 독을 가지고 있다. 처음에는 왜국(倭國)에서 들어왔기 때문에 ‘왜개자’라고 하였다. 지금은 이것을 심는 일이 왕왕 있는데 술집에서는 그것의 매운맛을 이용한다.’ 이 대목 때문에 고추가 일본에서 전래됐다는 설이 힘을 받는다. 하지만 정작 일본 학자들은 ‘고추는 한국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강조한다.

순창군 장류사업소 박영수 연구검사계장이 이를 뒷받침하는 몇몇 사료를 내민다.

“고조리서인 식의심감(850년)과 한약집성방(1433년)에도 ‘초장(椒醬)’이란 단어가 나옵니다. 1527년 나온 훈몽자회에서는 초(椒)가 ‘고쵸’임도 밝혀놓았습니다. 따라서 임진왜란 때 고추가 들어왔다는 설은 신빙성이 없다고 봅니다. 유추해보면 고추는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게 확실합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고추장 담그는 법이 소개된 것은 1766년(영조 42)에 간행된 ‘증보산림경제’에서다. ‘메주를 가루로 만들어 체로 친 것 1말에 고춧가루 3홉, 찹쌀가루 1되를 넣고 간장으로 개어서 담근다’라고 적어놓았다. 지금보다 고춧가루가 덜 쓰인, 기존에 있던 장에 고춧가루를 섞은 막장 형태였다. 아무튼 나는 고추장 이야기 때문에 어질해진 심신을 다독이기 위해 청송군 안덕면 지소리 길안천 백석탄 계곡처럼 멋진 포트홀(Pothole) 존을 가진 동계면 어치리 ‘장군목’으로 향했다.

고추장마을 본 뒤 장군목 ‘요강바위’로
2X3m 움푹 팬, 순창 제일의 랜드마크
강천산 가다 메타세쿼이아 길도 볼거리

고추장파스타 개발 ‘봄봄’ 등 숨은 맛집
여행자들 쉼터로 다시 태어난 금산여관
별채엔 여행전문가 장재경의 ‘방랑싸롱’

인근 전국 유일 당나귀고기 식당 눈길
순창식 매운탕 맛보려면 ‘알곡매운탕’
한 잔 했다면 중앙시장 ‘2대째 순대집’


◆옹기와 장군목 요강바위

장군목으로 간 이유가 있다. 150㎏에 육박하는 고추장마을의 옹기를 연상시키는 요상한 바위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순창군 제일의 랜드마크로 유명해진 ‘요강바위’다. 장군목은 섬진강의 최상류에 있다. 섬진강 물줄기 중에서 가장 웅장하고 원시적인 구간이다. 장군목이라는 이름은 서북쪽으로 용골산과 남쪽으로 무량산의 봉우리가 마주 서 있는 풍수의 형상을 ‘장군대좌형(將軍大坐形)’으로 부르는 데에서 연유한다. 마을 사람들은 장구의 목처럼 좁아진다고 하여 ‘장구목’이라 부른다. 6·25전쟁 때는 마을 주민들 중에 이 바위에 몸을 숨겨 목숨을 지킨 사람도 있었다. 아기 낳기를 원하는 여인이 바위 위에 앉으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단다. 높이는 2m, 폭은 3m, 무게 20t. 물에 움푹 패어버린 바위. 요강이 아니라 크기를 본다면 고추장 담는 대형 옹기를 빼닮았다. 순창에서 가장 큰 옹기를 그 안에 집어넣으면 음과 양처럼 궁합이 맞을 것 같았다. 고추장마을 사람들에게 “이 요강바위가 꼭 옹기바위 같다”고 하니 다들 맞다면서 맞장구를 쳐준다.

그렇게 유명한 요강바위가 사라질 뻔했다. 이사 온 외지인이 선심을 쓴다며 주민을 모두 단체관광 보내준 뒤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중장비를 끌고 와서 싣고 간 것이었다. 바위를 정원석으로 팔려고 경기도 광주의 한 야산에다 숨겨두었다가 들통이 났다. 이 바위를 원래 있던 섬진강가로 옮겨오는 데만 500만원이 들었다.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거둬서 마련했다. 참 대단한 바위다.

순창읍에서 강천산으로 뻗은 792번 지방도로. 그 길에서 만나는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 나그네에게 머플러처럼 매달린다. 멋진 포토존이다. 메타세쿼이아 길은 담양이 더 유명하지만 순창 것이 더 그림이 좋은 것 같다. 길가에 심은 맥문동 보랏빛 꽃 때문이다.

◆숨은 별난집

읍내 군립도서관 근처로 가면 관광객에겐 좀처럼 노출이 안 되는 별스러운 공간이 있다. 순창에서 처음 고추장파스타를 개발해 주목을 받은 레스토랑이 있다. ‘봄봄’이다. 외관이 너무 세련돼 순창엔 아직 덜 어울린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온 푸짐한 체격의 최성수 오너셰프. 그에겐 거기가 자기 놀이터 겸 인문학토크 공간이다. 심지어 북콘서트까지 연다. 열광하는 외지인과는 달리 정작 토박이는 무반응이다.

최 셰프가 남도한정식과 대구 음식의 차이를 명쾌하게 설명해준다.

“남도한정식은 반찬 많은 백반이라 보면 됩니다. 대구는 열 집 중 아홉 집은 다 맛없는데 한 집은 죽이잖아요. 그런데 전라도밥상은 다 맛있지만 죽이는 그 한 집이 없어요.”

밤이 깊어지자 최 셰프가 문을 닫는다. 근처에 UFO 같은 유전자를 가진 희한한 여행전문가가 머물고 있으니 내게 소개해주고 싶단다. 마실 가듯 몇 분을 걸었다. 깊은 골목에 홀로 빛나는 간판이 있다. 80여년 역사의 ‘금산여관’, 그 아크릴 간판. 이젠 게스트하우스로 바뀌었다. 지난 1월 방송된 KBS1 ‘사람과 사람들’에 소개되면서 금산여관은 졸지에 전국구가 됐다. 201호부터 210호까지 잘 수 있는 방이 10개다. 여기도 한정식 전문 새집처럼 네모 구조다.

주인장 홍성순씨(51). 성격이 괄괄하다. 여행자에겐 ‘홍대장’으로 통한다. 한때 연봉 2억원을 받던 의류사업가. 하지만 다 접고 12년이나 방치된 폐가 같은 금산여관을 덜컥 리모델링했다. ‘금산헌’이란 현판도 달았다. 정자 같은 여관 같다. 본채는 한옥이다. 거기서 매일 밤 토크쇼 같은 파티가 열린다.

그 여관의 목욕탕 같은 별채에 희한한 인물이 지난가을 들어왔다. 진공관 버전으로 ‘방랑싸롱’을 차린 장재경씨다. 그는 여행전문가. 내가 간 밤에는 여행작가 김물길씨가 여행담을 안주로 젊은 친구와 노닥거리고 있었다. 다음 날 금산여관에선 플리마켓이 종일 열렸다. 빵을 파는 외국인도 있다. 방랑싸롱에서는 커피와 음료, 그리고 수제맥주 정도를 판다. 하지만 방랑싸롱 아저씨의 말투가 최고의 메뉴로 정평이 났다. 레게 스타일의 머리, 거무튀튀한 살결. 그는 이미 ‘여행교주’다. 어떻게 보면 ‘여수밤바다’로 빅히트를 쳤던 뮤지션 장범준처럼 그는 입담 하나로 ‘순창밤골목’을 그려낼 것 같다.

금산여관과 죽이 맞는 빵쟁이가 근처에 산다. 산야채파스타와 유기농빵, 그리고 2층에 옥탑방도서관을 운영하는 ‘농부의 부엌’ 공동 대표인 박문식·이명정씨다. 귀농한 철학자 등 순창에서 한 인문학 한다는 이들이 자주 들락거린다. 바로 지척에 전국에서 유일한 당나귀 고기 전문식당도 있다.

고추장마을 옆 장류체험관은 숙박도 할 수 있는데 재밌는 건 거기에 있는 발효레스토랑인 ‘순창예찬’이다. 거기 가면 된장 바른 돼지불고기 같은 ‘맥적’을 맛볼 수 있다. 순창식 매운탕의 진수를 맛보고 싶으면 적성면 운림리 화탄이란 섬진강 지류에 있는 ‘알곡매운탕’에 가면 된다. 대구식 논메기매운탕과 달리 고추장과 시래기를 많이 넣고 뚝배기에 담아주는 게 특징. 아주 걸쭉하다. 1968년 김성수·심수현 부부가 시작해 김두만·조양희 부부로 명맥이 이어졌다. 처음에는 화탄매운탕이었다가 2011년 농업회사 법인 알곡을 바뀐 상호로 정했다. 주말 이 매운탕집에 가면 주방 입구에 설거지를 위해 대기 중인 둥그런 양은밥상이 진풍경을 연출한다.

간밤에 술을 한잔했다면 순천중앙시장 내 ‘2대째 순대집’으로 가라. 제주식 순대인 수애처럼 내장 안에 피만 넣은 게 밑줄감.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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