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배우는 재미에 날 새는 줄 몰라요”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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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03 08:21  |  수정 2023-11-30 14:02  |  발행일 2017-11-03 제34면
■ 인생 백세시대, 배움엔 때가 없다
대구내일학교 초·중등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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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에 열린 대구내일학교의 2017년 졸업식. <영남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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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내일학교에서 매년 펴내고 있는 학습자들의 졸업시화집들.

대구시교육청 운영 만학도 교육 요람
2011년 개설 후 현재 졸업생 900여명
평균 연령 초등 68세·중학과정 66세
81%가 60대 이상…4년째 졸업시화전

지난 8월30일부터 9월8일까지 대구 반월당역 메트로센터에서는 이색전시회가 열렸다. 시교육청이 운영하는 대구내일학교 졸업생 271명의 시화전 ‘나도 시인이다’가 열린 것이다.

이번 시화작품은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한 만학도들이 평소 수업시간에 직접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린 것들이다. 이들 학생의 평균 연령은 67세다. 이들은 늦은 학교생활에서 느낀 감회, 가족에 대한 애틋한 마음, 지난 삶의 애환과 마음속 생각 등 다양한 이야기를 시로 담아냈다.

초등과정 김태술씨(63)는 ‘배우는 재미’란 시에서 늦게 배우는 공부의 즐거움을 이렇게 말했다. “돈 버는 재미만 좋을까?/ 손자 재롱 보는 재미만 좋을까?/ 지금에야 말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공부하는 재미가 제일이더라.”

다른 시들도 눈길을 끈다.

“계집애가 글 배워서 뭐 하냐며/ 등짝을 후려치시던 내 어머니가 미워/ 꺼이 꺼이 소리 죽여 울던 소녀는/ 이제 백발의 할머니/ 지금 가방 메고 학교 간다/ 우리 어머니 하늘에서/ 우리 딸 장하다 하고 계시겠지.” -조정희씨(76)의 ‘우리 어머니’

“누가 알까 두려웠던 내 마음/ 나한테 뭘 적으라고 할까봐/ 두려웠던 내 마음/ 공부해서 마음껏 쓸 수 있는 그날/ 저 멀리 있는 우리 엄마에게/ 마음의 글 전하고 싶습니다.” -조영자씨(63)의 ‘마음의 글’

“딸내미가 퇴근하면서 가지고 온 것/ 내가 보낸 편지/ 내가 초등학교 때/ 부모님께 편지쓰기 했는데/ 엄마도 편지쓰기 했네요…말썽부려 딸내미 데리고 오세요 하면/ 안되는 것 아시죠.” -조영숙씨(63)의 ‘딸내미’

“육십이 넘어 공부를 하니/ 머리도 늙고 손도 늙어/ 모든 것이 서툴고 부족하네/ 배움은 느려지고/ 하나씩 알아가고/ 배움에 눈을 뜨며/ 하루하루 쌓아가네.” -정외숙씨(63)의 ‘배움의 기쁨’

글을 배우지 못하게 한 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 배우지 못한 것을 들킬까봐 두려워했던 마음과 이제라도 배우는 것에 대한 자랑스러움 등 늦은 나이에 공부할 수밖에 없었던 다양한 이야기, 부모와 자식에 대한 사랑 등 다양한 사연들이 담겨 있다. 이 시화전의 작품들은 어르신들이 그동안 수업을 통해 배운 글솜씨를 잘 보여주기 위해 직접 쓴 시를 그대로 담고 있어 더욱 정감이 가고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대구시교육청에서 학령기에 배움의 기회를 놓친 성인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대구내일학교’는 대구를 대표하는 만학도들의 교육장소라고 할 수 있다. 초·중학 학력인정 문해교육기관이 현재 6곳(명덕초등, 달성초등, 성서초등, 금포초등, 중앙도서관, 제일중)에 설치되어 있다. 2011년 명덕초등학교에 초등관이 가장 먼저 설치됐으며, 중등관은 2013년 제일중학교에 설치됐다. 학습자는 초등과정 123명, 중학과정 279명이며 평균연령은 초등과정은 68세, 중학과정은 66세로 60대 이상이 81%를 차지한다. 현재까지 대구내일학교 졸업생은 총 900여명이다. 내일학교는 매년 7월에 신입생을 모집하고 9월에 입학식과 졸업식을 가진다.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은 “학령기에 배움의 기회를 놓친 늦깎이 학생들에게 초·중학 학력 취득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내일학교를 운영해 오고 있다”며 “내일학교 학습자는 평균 60대여서 늦은 나이에 공부하기가 결코 쉽지는 않지만, 배우겠다는 열의만은 어린 학생보다 훨씬 강하다. 늦게나마 공부를 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펼쳐 나갈 학습자들에게 진심으로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대구내일학교는 2014년부터 졸업시화집을 발간하고 시화전도 열고 있다. 시화집의 경우 종전에는 비매품으로 발간됐으나 올해는 어르신들의 다양한 사연이 묻어나는 시와 그림에 매료된 한 출판사 대표의 제안으로 판매용으로 출판됐다. 시화전은 ‘세계문해의 날’(9월8일이며 1965년 유네스코에서 문맹 퇴치와 성인교육의 의미를 상기시키고자 정했다)을 전후로 문해교육의 의미와 가치를 재조명하고자 마련됐으며 올해까지 4회 개최됐다. ☞ W3면에 계속

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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