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이정미 대표(가운데)와 심상정 의원(오른쪽) 등이 23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에서 조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연합뉴스 |
23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정의당 원내대표 노회찬 의원은 한국 진보정치권의 간판스타였다. 비례대표로 국회에 진출했지만 이후 지역구에서 두 번이나 당선돼 대중성을 인정받은 진보 정치인이다. 재치있고 논리적이며 대중 친화적인 화법으로 정치권의 비주류인 진보정당의 존재감을 끌어올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부산에서 초·중학교를 나온 노 의원은 경기고 1학년에 재학 중이던 1973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독재에 반대하는 유인물을 제작·배포하면서 민주화운동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전기용접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해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인천지역 민주노동자연맹사건으로 1989년 구속된 노 의원은 만기 출소 후 대선에서 백기완 후보 선거대책본부에서 활동했으며, 매일노동뉴스 발행인과 민주노동당 부대표를 거쳤다.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노 의원은 2004년 17대 총선 당시 한 방송사 토론에서 “50년 동안 한 판에서 계속 삼겹살을 구워 먹어 판이 새까맣게 됐으니 삼겹살 판을 갈아야 한다”라는 촌철살인의 말솜씨로 정치권의 주목을 받았다.
2004년 17대 총선을 통해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하고서 이듬해 8월 국가정보원 불법도청 테이프에서 삼성그룹 ‘떡값’을 받은 것으로 언급된 전·현직 검사 7명의 실명을 공개했다가 재판에 넘겨졌다. 이어 2008년 18대 총선에선 ‘서울 노원구병’에 출마했다가 한나라당 홍정욱 후보에게 근소한 차로 패배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노원구병에 다시 출마해 재선에 성공했으나 곧이어 대법원에서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 확정판결을 받고 국회의원직을 상실하는 수난을 겪었다.
20대 총선에서 노원구병이 아닌 ‘경남 창원성산’으로 지역구를 옮겨 새누리당 후보를 꺾고 당선됨으로써 진보진영의 대표주자로 복귀했다. 정의당 1~3기 원내대표를 내리 지내며 창당 초반 1%에 머물렀던 지지율을 10%까지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올해 4월에는 민주평화당과 공동으로 원내교섭단체인 ‘평화와 정의를 위한 의원모임’을 출범시킨 뒤 첫 원내대표를 맡았다.
최근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의 하나로 특수활동비 폐지를 주장하고, 교섭단체 대표로서 받은 특활비를 일괄 반납하기로 하면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진보정당의 지지기반 확대에 힘 입어 ‘진보의 아이콘’으로서 국민적 인기를 누릴 것처럼 보였던 노 의원은 불법정치자금의 덫에 걸려 자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인 방법으로 생을 마감했다.
권혁식기자 kwonh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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