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디아스포라]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의 고려인(5부) ⑧·(끝) 사진으로 보는 못다한 이야기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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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10   |  발행일 2018-10-10 제6면   |  수정 2022-05-18 17:15
중앙아시아 모범시민으로 거듭나기까지…17만 동포‘역경의 발자취’
[대구·경북 디아스포라]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의 고려인(5부) ⑧·(끝) 사진으로 보는 못다한 이야기
카자흐스탄 우슈토베역. 강제이주된 고려인들이 처음 짐짝처럼 내던져진 작은 역이다. 철로에는 칸마다 석탄을 가득 실은 화물열차가 정차해 있다. 81년 전 고려인들도 화물신세나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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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알마티 고려인회관에서 고려인 어린이들이 한국의 전통무용과 춤을 배우고 있다.
[대구·경북 디아스포라]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의 고려인(5부) ⑧·(끝) 사진으로 보는 못다한 이야기
‘머리 언덕’이란 뜻을 가진 카자흐스탄 우슈토베 인근 바슈토베. 자그마한 언덕으로 사방이 평원이다.
[대구·경북 디아스포라]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의 고려인(5부) ⑧·(끝) 사진으로 보는 못다한 이야기
키르기스스탄 수도 비슈케크에 있는 고려인노인회관에서 강 다지아나(95·본명 강옥순) 할머니가 음악에 맞춰 흥겹게 춤을 추고 있다.
[대구·경북 디아스포라]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의 고려인(5부) ⑧·(끝) 사진으로 보는 못다한 이야기
바슈토베의 고려인 공동묘지. 토굴이 있던 자리에는 무덤이 들어섰다.

일제강점기 나라 잃은 민족은 일본의 압제를 피해 만주로, 연해주로, 미국 등지로 흩어졌다. 이 가운데 옛 소련 극동지역 연해주에 살던 동포 17만여 명은 1937년 9월 일본 정보원의 침투를 차단한다는 명목으로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 황무지로 강제이주됐다. 이름하여 ‘카레이츠(고려인)’다. 열차 이동과 정착 과정에서 배고픔과 질병, 추위로 수만 명이 목숨을 잃은 가운데 40여 일간 1만여㎞를 달려 처음 도착한 곳이 지금의 카자흐스탄 우슈토베역(驛)이다.

고려인 1세들은 이곳에서 약 7㎞ 떨어진 바슈토베(Bastobe)란 작은 언덕 아래에서 겨울을 나며 이듬해 4월까지 살았다. 영하 40℃의 혹한을 견디기 위해 언덕 경사면을 바람막이로 삼아 토굴을 파고 주변의 갈대로 지붕을 엮었다. 고려인들은 우슈토베를 중심으로 집거하면서 황무지를 개간해 농사를 지으며 터전을 일궜다. 이들은 강제이주의 아픔을 딛고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각 국에서 모범시민으로 거듭났다.

기자는 지난 5월20일~6월9일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의 고려인1·2·3세를 만나 초기 정착 과정과 삶, 정체성에 관한 인터뷰 기사를 7회에 걸쳐 소개했다. 이번 8회의 주제는 ‘사진으로 보는 못다 한 이야기’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공동기획: 인문사회연구소 Fride GyeongBuk

※이 기사는 경북도 해외동포네트워크사업인 ‘세계시민으로 사는 대구·경북인 2018-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의 고려인’ 일환으로 기획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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