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寺미학 .6] 사찰 꽃살문...모란·국화·연꽃·매화…법당 문살에 장엄한 꽃비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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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30 08:03  |  수정 2021-07-06 10:32  |  발행일 2019-05-30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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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에 가면 한국적 미의식이 배어난 아름답고 정겨운 꽃살문들을 만날 수 있다. 이 꽃살문에 관심을 가지면 산사에서 또 하나의 큰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 꽃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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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에서 누릴 수 있는 아름다움은 다양하다. 그중 시각적으로 쉽게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으로 법당의 문을 꼽을 수 있다. 아름다운 문살이 많기 때문이다. 다양한 꽃살문이 특히 눈길을 끈다.

오래된 산사의 대웅전이나 극락전 등 그 사찰의 중심 법당 문을 보면 대부분 멋진 꽃살문으로 되어 있다. 세 칸 또는 다섯 칸의 문 모두가 꽃살문으로 된 경우도 있고, 가운데의 어간(御間)만 꽃살문으로 장식하고 있는 곳도 있다. 어간의 네 짝 문 중 두 개만 꽃살문으로 만들기도 한다. 꽃살문의 문양은 보통 모란, 국화, 연(蓮), 해바라기, 매화 등이 소재로 활용된다. 꽃과 잎을 함께 표현하거나 꽃만 새기기도 한다. 대나무와 소나무, 물고기나 새 등을 새긴 경우도 있다.

불교에서 꽃을 깨달음으로 상징
대웅전·극락전 문 화려하게 장식
당대 최고 솜씨 동원한 예술작품
한국의 탁월한 미의식 잘 드러나
지역에선 동화사·송림사 등 유명


산사에 가면 이처럼 아름답고 정겨운 꽃살문들을 만날 수 있다. 불상이 봉안된 법당의 문을 꽃살문으로 장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연꽃을 비롯한 꽃은 불교에서 깨달음을 상징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었을 때나 설법을 마친 후 삼매에 들었을 때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는 이야기가 경전에 전한다. 불상이 봉안된 법당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법을 설한 자리인 영산회상(靈山會上)에 비유되고, 법당의 꽃살문은 영산회상에 내린 꽃비를 상징한다고 한다.

그래서 법당의 문은 일반 한옥의 문과는 달리 단순히 문의 기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 장식성이 두드러진 꽃살문을 다양하게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이런 꽃살문인 만큼 최고의 솜씨가 동원된 예술작품으로 승화된 경우가 적지 않다. 화려하고 정교하며 창의적인 조각 솜씨가 드러나는 사찰 꽃살문은 다른 나라의 건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 특유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평가되고 있다.

◆내소사 대웅보전, 쌍계사(논산) 대웅전 등의 꽃살문 유명

사찰 꽃살문 중 특히 유명한 것은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 꽃살문이다. 정면 3칸 건물의 앞쪽 8개 문짝 모두가 꽃살문이다. 1633년에 중건된 이 대웅보전의 꽃살문은 시기적으로 가장 오래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조각 솜씨와 감각이 뛰어나고 정교해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세월이 흐르면서 단청은 다 사라지고 나뭇결이 그대로 보이는 상태다. 오히려 화려한 색이 없는 그 모습이 주는 아름다움이 더 감동적이다. 모란, 국화, 연꽃, 해바라기 등이 한 가지 또는 그 이상으로 장식된 문짝들이다. 꽃송이는 잎으로 연결되어 있고, 꽃의 형태는 만개한 것과 봉오리가 조화롭게 섞여 있는 것도 있다.

논산 쌍계사 대웅전은 정면이 5칸인데, 10개 문짝 모두 꽃살문이다. 대웅전이 잘 생긴 건물인 데다 문짝 모두가 아름다운 꽃살문으로 되어 있어 법당 전체가 멋진 작품으로 다가온다. 연꽃, 모란, 국화, 작약, 무궁화 등이 새겨져 있다. 단청은 좀 바랜 상태다. 대웅전 옆쪽에 있는 협문 중 하나는 외 문짝인데 위칸에 활짝 핀 꽃송이와 꽃봉오리, 그리고 줄기와 잎이 대칭으로 된 꽃송이가 아름답게 새겨져 있다. 모란인 것 같다.

이와 함께 양산 통도사 적멸보궁, 부안 개암사 대웅전, 해남 대흥사 천불전, 부산 범어사 팔상전, 영광 불갑사 대웅전 등의 꽃살문도 아름답다.

꽃살문의 소재는 비슷하지만 같은 꽃을 조각해도 사찰마다 조각한 사람이 다르다 보니 조금씩 다르다. 대구경북에도 꽃살문이 아름다운 사찰이 많다. 대구 동화사 대웅전, 칠곡 송림사 대웅전, 상주 남장사 극락보전, 경주 기림사 대적광전 등의 꽃살문이 유명하다.

꽃살문은 살대를 기본으로 하여 만든 문이 대부분이나 꽃이 핀 식물 모양을 통째로 투조(透彫)하여 문살 위에 붙인 형식도 있다. 이런 문은 꽃문이라고도 부른다. 이 경우 문살은 문양판을 지탱하는 역할만 한다. 이런 꽃살문으로는 강화 정수사 대웅보전, 공주 동학사 대웅전, 영주 성혈사 나한전 등의 꽃살문이 대표적인 꽃살문으로 꼽힌다.

정수사 대웅보전 어간 4개의 꽃살문은 지탱하는 문살이 따로 없는 통판투조 꽃살문인데, 화병에 모란, 연꽃 등의 꽃을 꽂아 놓은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불단에 올리는 공양화를 연상시키는 형태다. 동학사 대웅전 꽃살문 역시 투조기법으로 장식한 문이다. 대웅전 전면 10개 문짝 모두 화초 투조 장식의 문이다. 어간의 두 문짝에 매화, 그 양쪽에 난초, 그리고 그 왼쪽과 오른쪽에 있는 세 짝 문에 각각 송학, 대나무, 국화가 투조되어 있다.

성혈사 나한전은 전면 3칸의 6개 문짝 모두가 꽃살문인데,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멋지다. 통판투조 문짝은 이 중 어간의 두 문짝과 동쪽 칸의 두 문짝 중 하나다. 어간 문은 연꽃, 동자승, 새, 개구리, 물고기 등이 투각된 장식판이 빗살 위에 부착되어 있고, 오른쪽 문짝은 10송이 꽃이 달린 모란 한 포기 전체를 묘사하고 있다.

구례 천은사 약사전 통판투조 꽃살문, 순천 선암사 원통각 통판투조 모란꽃살문 등도 눈길을 끈다.

꽃살문의 제작 기법은 문살 자체를 꽃모양으로 조각하여 짜 맞춘 것, 따로 조각한 꽃모양을 빗살이나 솟을빗살의 교차점마다 붙인 것, 그리고 꽃문양을 판자에 투조해 문살 위에 붙인 것 등이 있다. 살대를 45도와 135도로 빗대어 교차시켜 짠 문을 빗살문이라 하는데, 여기에 각종 꽃 모양을 조각하여 장식성을 높인 것이 ‘빗꽃살문’이고, 빗꽃살문에 수직 살대인 장살을 첨가한 것이 ‘솟을빗꽃살문’이라 한다. 사찰 꽃살문은 빗꽃살문보다 솟을빗꽃살문이 많은 편이다.

정교하게 조각한 꽃살문의 아름다움은 한국적인 미감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꽃살문의 정교함과 화려함은 그 시대 장인들의 탁월한 미의식과 정신세계를 가늠하게 한다. 편안한 가운데 미적 쾌감을 주는 사찰 꽃살문은 부처님을 향한 종교적 열정, 한국적 미의식이 만들어낸 차원 높은 건축 장식 미술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글·사진=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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