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핫 토픽] 봉준호 감독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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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31   |  발행일 2019-05-31 제22면   |  수정 2019-05-31
[미디어 핫 토픽] 봉준호 감독
봉준호 감독. 연합뉴스

영화감독 봉준호가 지난 26일(프랑스 칸 현지시각 25일)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으면서 한 주간 미디어를 뜨겁게 달궜다. 이 상은 한국영화 100년 역사상 최초로 받은 최고의 상이라 할 수 있다. 포털사이트 실시간검색어와 뉴스검색어로 ‘봉준호 감독’ ‘봉준호 기생충’ ‘봉준호 황금종려상’ ‘봉준호 송강호’ 등이 상위에 랭크됐다. 페이스북 등 SNS에선 봉준호 감독에 대한 글들로 넘쳐났다.

봉 감독은 1969년생이다. 한 지역언론은 봉 감독이 봉덕초등학교를 3학년까지 다녔다고 보도했지만 확인된 건 아니다. 30일 봉덕초등에 전화를 했더니 “전학생 명부에 봉 감독 이름이 없다”고 답했다. 다만 봉 감독이 2017년 7월 대구 만경관에서 영화 ‘옥자’ 개봉차 대구로 와 관객에게 인사를 하면서 “대구 남구 봉덕동에서 태어났다. 남구 대명동에서 살다가 78년 이사를 갔다. 어릴 적 대구에서의 추억이 많다. 앞산 케이블카도 타고, 수성못에서 스케이트도 탔다. 어릴 때 만경관과 아카데미극장에서 영화를 봤던 기억이 있는데, 세월이 흘러도 아직 두 극장이 건재하고 있으니 (기분이) 좋다”고 말한 적은 있다.

봉 감독이 대구에서 태어난 인연은 선친(봉상균)이 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 미대 교수를 했기 때문이다. 당시 효성여대는 봉덕동에 있었다. 선친은 영남대 교수와 서울과학기술대 미대 교수를 거쳐 초대 서울비주얼아티스트비엔날레협의회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봉 감독의 어머니는 일제강점기 ‘구보씨의 일일’로 유명한 소설가 구보 박태원의 둘째 딸이다. 그러므로 봉 감독은 박태원의 외손자인 셈이다. 박태원은 시인, 문학평론가, 소설가로 활동했다. 광복 후 1946년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을 맡는 등 잠시 남로당 계열의 문예 운동에 몸을 담았다가 6·25전쟁 때 월북해 조선문학건설본부 소설분과위원회 대표위원과 노동당 문화예술정책연구위원 등을 했다. 북한에서 ‘계명산천은 밝아오느냐’ ‘갑오농민전쟁’ 등의 소설을 쓰고 86년 별세했다고 알려진다. 이 가운데 갑오농민전쟁은 북한의 최고 소설로 손꼽힌다.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봉 감독은 보수정권 시절 배제돼야 할 문화계 인사인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2남2녀 중 막내로 형(봉준수)은 서울대 영문과 교수이며 누나(봉지희)는 연성대학 패션스타일리스트과 교수다. 아내는 시나리오 작가이며 아들 또한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고 한다. 집안 내력이 문화예술 DNA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30일 개봉한 ‘기생충’이 얼마만큼의 관객을 동원할지 주목된다.

박진관 뉴미디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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