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 안경’으로 들여다 본 ‘대구 안경’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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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26   |  발행일 2019-07-26 제33면   |  수정 2019-07-26
■ 대구 안경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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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대구IC 입구에 설치된‘안경도시 대구’를 상징하는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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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안경’을 전국적으로 알린 계기가 된 일명 ‘영미 안경’. 영미 안경은 지난해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여자 컬링 국가대표 맏언니 김은정 선수가 후배 김영미 선수를 애타게 부르며 유명해진 것으로, 대구 동성로에서 구매한 토종 대구 브랜드 안경이다.

“영미~~ 영미야~~”

대구산(産) 안경을 전국적으로 홍보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컬링 국가대표팀 ‘팀 킴’의 맏언니 김은정 선수가 경기 중 후배 김영미 선수를 부르는 소리다. 지난 5월 첫 아이를 출산한 김은정 선수가 우연히 대구 동성로에서 구입한 안경이 대구 북구 대현동 팬텀옵티칼에서 제조한 브랜드 ‘플럼’으로 알려지면서, 당시 ‘대구 안경’이 잠깐이긴 하지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지난 15일 만난 김원구 <재>한국안광학산업진흥원장은 “올림픽 당시 김은정 선수의 안경이 화제가 됐는데, 운 좋게 동성로에서 산 안경이 대구산(産)이어서 천만다행이었다”며 “대구에서도 대구산 안경테를 구매하는 확률은 채 1%도 안 된다. 김 선수가 착용한 안경테가 국내산, 그것도 대구산이라는 보도에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영미 안경’으로 대구가 안경생산 도시란 점은 부각됐지만, ‘대구 안경’의 인지도는 여전히 낮다. 인터넷 검색창에 ‘대구 안경’을 치면 ‘대구 안경 잘하는 집 ○○○○’ ‘대구안경 싼 곳 맞네요’ ‘○○안경 대구○○점’ 등이 고작이다. 포스트에 ‘대구안경전시회’가 뜨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반면, ‘영미 안경’을 치면 ‘쿠팡 영미안경’ ‘위메프 영미안경’ 등 유명 인터넷 쇼핑몰 사이트와 바로 연결된다.


컬링 김은정 선수가 착용 유명해진 ‘영미안경’
대구 팬텀옵티칼서 제조 ‘플럼’으로 알려져
지역서 대구産 안경 구매확률 채 1%도 안돼
中産 안경테 수입은 작년 한해 1040만개 달해
세계 최고 디자인 바탕, 글로벌 브랜드 박차



전국 안경테 생산의 80%, 수출액의 90%를 담당하고 있는 대구 안경산업. 섬유와 함께 대구의 특화산업인 안경이 대구에서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영미 안경’으로 이름을 얻은 팬텀옵티칼을 비롯해 몇 개 업체만이 별도의 AS센터를 운영하는 등 자체 브랜드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정도다. 대구에만 600개의 안경제조업체가 있지만 종업원이 4인 이하인 경우가 60곳이며, 90% 정도는 9인 이하 사업장이다. 이탈리아 안경테 기업들이 수천명씩 고용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지난 한 해 국내에 수입된 개당 3천원 전후의 중국산 안경테가 무려 1천40만개에 달한다. 국내 안경 인구를 2천만명 정도로 잡고 안경테를 2~3년에 한 번 정도 교체한다고 가정할 경우, 한국인 대부분이 중국산 안경테를 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대구 안경테 제조업체들의 기술력이나 디자인이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품질과 디자인은 중국 제품보다 퀄리티가 훨씬 높지만 이탈리아 제품에 비해 다소 떨어지다보니 가격경쟁력에서 뒤지는 중국과 고급 브랜드를 앞세운 이탈리아 제품 사이에 끼인 샌드위치 신세가 이어지면서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형국이다.

대구 안경산업은 디자인 면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라서고 있다. 문제는 브랜드. 대구 안경테 생산 업체들이 과거 일본 기업들의 OEM(Original Equipment Manufacturer,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에서 이탈리아 등 유럽 기업들의 ODM(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 또는 Original Design Manufacturing, 제조업자 개발 생산) 방식으로 바뀌는 것은 대구 안경 업체들의 디자인 수준을 단적으로 증명해 준다.

유럽 유명 브랜드 기업들이 디자인에서 제조까지 모두 대구 업체에 ODM으로 맡기면서도 고작 개당 20달러에 계약을 맺은 뒤 소비자에게는 개당 1천달러에 판매하고 있는 실정이다. 브랜드 하나로 가만히 앉아서 50배의 차익을 챙기는 셈이다. 이에 대구 안경업계에서는 올해부터 브랜드 육성에 본격 나서고 있다. 한국안광학산업진흥원은 국비사업으로 올해 30억원을 비롯, 총 100억원을 투입해 대구 8개 업체를 선별, 글로벌 브랜드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구 안경 브랜드의 해외 시장 개척도 본격화된다. 일본의 대표적인 안경 체인점인 ‘긴자매가네’와 협약을 맺고 도쿄 심장부인 긴자거리에 대구 안경 브랜드 숍을 연다. 현재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이다. 대만 대형 안경테 수입업체와도 협약을 통해 현지에서 별도 대구 안경 매장 운영이 계획 중이다. 태국 고급백화점인 방콕의 ‘센트럴월드’에도 1층에 한국 안경 브랜드 10개만으로 별도 매장이 추진된다.

김원구 원장은 “대구 안경이 디자인은 유럽산에 떨어지고 가격은 중국보다 비싸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지만, 생각을 바꿔보면 품질과 디자인은 중국보다 훨씬 좋고 가격은 유럽산보다 낮기 때문에 가능성은 충분하다”며 “국내 소비자들이 국내산 안경테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선입견만 버린다면 대구 안경의 부활이 분명 다시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사진=임성수기자 s018@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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