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한국문학] 존댓말 과잉과 갑질 사회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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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07   |  발행일 2019-11-07 제30면   |  수정 2020-09-08
접객업소 존댓말 과잉시대
사물에 높임표현 마구 사용
어법 어긋난다 탓하기 전에
과잉친절·갑질문화에 물든
우리 사회 모두가 반성해야
20191107
홍미주 경북대 교양교육센터 강의초빙교수

“할인 적용되셨어요.” “이 메뉴는 주문이 안 되세요.”

이 문장은 ‘할인, 메뉴’가 높임의 대상이 아닌데도 ‘-시-’를 붙여 말하는 것으로,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이다. 특히 음식점, 카페, 백화점 등 접객 업소에서 이런 사물 높임 표현을 흔하게 들을 수 있다. 이런 표현이 처음에는 어색하고 듣기 거북하더니 워낙 자주 들어서 그런지 이제는 별 느낌이 없을 정도이다. 사물까지 높이는, 그야말로 존댓말 과잉의 시대이다.

이 ‘-시-’는 문장의 주어가 되는 사람을 높일 때 동사나 형용사에 붙어 주어를 높여주는 기능을 한다. 그러나 ‘손이 크시다’ ‘걱정이 많으시다’ 등과 같이 사물이더라도 주어의 신체나 심리, 소유물일 경우에는 존대표현이 가능하다. 그래서 사물 주어에도 ‘-시-’를 이용해 높이는 것을 문법 오류로 보고 사용하면 안 된다고 하는 입장이 대부분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시-’의 남용을 문법 오류라기보다는 ‘-시-’의 용법 확장으로 보기도 한다. 존댓말의 사용 범위를 넓혀 손님이 대접받는다는 느낌을 들게 하고, 구매로 이어지게 하려는 전략에 의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즉 사물 존대 표현이 잘못된 표현임을 알고 있지만, ‘-시-’를 사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넓혀 상대방을 대접해 주는 대화상의 전략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몇 년 전 모 백화점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바른 우리말 사용에 대해 강의한 적이 있었다. 그때 사물 높임 표현은 잘못된 것이니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더니, 직원들도 그 표현이 잘못된 것을 알고는 있지만 이런 표현을 쓰지 않으면 고객을 덜 공손하게 대하는 것 같아서 쓸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었다. 오히려 어법에 맞는 표현이 무례한 말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어떤 직원은 손님에게 ‘주문하세요’라고 말했다가 ‘니가 뭔데 나한테 주문하라, 마라야’라는 폭언을 듣기도 했다고 한다. ‘주문하세요’라는 말이 ‘주문 도와드릴게요’ ‘주문하시겠어요?’보다 덜 공손할 수는 있지만 어법에도 맞고 전달하고자 하는 바도 정확하게 전달하는, 대화상 문제가 없는 표현이다. 그런데도 손님은 ‘주문하세요’라는 말을 무례하게 느끼고 언성을 높이는 상황까지 간 것이다.

손님에 의한 갑질에 노출되어 있는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사물 존대표현이 문법에 맞지 않으니 쓰지 말라는 말만 반복한다. 그리고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을 사용하는 책임을 서비스업 종사자들에게 돌린다. 그러나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잘못된 표현인 것을 알고도 쓸 수밖에 없게 하는 우리 사회에는 책임이 없는 것일까? 손님은 왕이라는 인식에서 오는 그릇된 행동, 다른 사람 위에서 군림하고 대접받으려고 하는 갑질, 이런 것들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기 때문에 과잉친절, 사물 존대표현이 사용될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닌가?

언어는 사회를 반영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언어를 사회를 보여주는 거울이라고도 한다. 사물 존대 표현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갑질’의 반영일 수도 있다. 국립국어원의 ‘우리말샘’에서 갑질은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자가 상대방에게 오만무례하게 행동하거나 이래라저래라 하며 제멋대로 구는 짓’으로 정의되어 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갑질이 문제가 되어 연일 언론에 보도되고 있고, 일명 ‘갑질 방지법’을 만드는 상황이다.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손님들로부터 다양한 갑질을 경험한다. 이런 갑질이 사물에까지 존대 표현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도록 만든 것은 아닌가?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을 쓴다고 비난하고, 사물 존대 표현을 남용하는 것의 책임을 서비스업 종사자들에게 돌리기 전에 우리는 그들에게 어떻게 대했는지 생각해 보자. 단순히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책임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런 표현을 쓰게 한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홍미주 경북대 교양교육센터 강의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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