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세현 기술보증기금 대경본부장
지금 대한민국은 뜨겁다. 단지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 때문만은 아니다.
새 정부의 출범과 함께 산업 현장 곳곳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모색하는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 DX)의 열기가 지역경제를 다시 달구고 있다. 지난달 경북 구미에서는 농공단지 입주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기술이전 설명회가 열렸다. 당장의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웠지만, 침체된 농공단지의 현실을 직시하고 변화의 가능성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출발이었다.
농공단지는 1980년대 중반, 농촌 제조업 육성을 목표로 조성돼 현재 전국에 500여 개가 운영 중이다. 대구·경북 지역에만 80여 개가 있지만, 그 중 상당수는 시설 노후화, 기술 정체, 인력 고령화, 청년 이탈, 공장 공실률 증가 등 복합적 위기에 놓여 있다. 전국 평균 가동률은 70%에 미치지 못하고, 기존의 방식으로는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그러나 변화는 가능하다. 최근 일부 농공단지에서 기술이전과 기술금융이 결합된 디지털 전환 성공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예컨대 경북 의성의 한 전자부품 제조기업은 지역 대학에서 이차전지 관련 기술을 이전받아, 정부지원 R&D와 기술보증기금의 기술평가보증을 연계해 신사업 진출에 성공했다. 창녕의 한 식품업체는 자동온도제어 시스템을 도입해 위생관리 체계를 디지털화했고, 이를 바탕으로 대형 유통망에 진입했다. 농공단지가 기술혁신을 통해 다시 지역경제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들이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기술보증기금이 있다. 기보는 담보력이 부족한 기업이라도 기술력만으로 보증을 받을 수 있도록 기술평가 기반 금융지원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주목받는 플랫폼인 '스마트 테크 브릿지(Smart Tech-Bridge)'는 대학·연구소·민간이 보유한 기술과 중소기업의 수요를 연결해, 기술이전과 기술금융을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통로 역할을 담당한다. 농공단지 기업들도 이를 통해 기술, 자금, 시장을 함께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같은 흐름은 정부의 정책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이재명 정부는 '식량안보·기후적응·스마트 전환·지역 균형발전'을 핵심 국정기조로 삼고 있으며, 이를 실행하기 위한 '푸드테크·그린바이오 산업 육성', '스마트농업 확산', '농촌재생뉴딜 300프로젝트' 등의 정책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농공단지를 단순한 생산기지에서 '청년이 돌아오는 디지털 제조 클러스터'로 재편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농공단지를 디지털 기반 산업거점으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첫째, 노후 설비를 스마트공장 단계별 솔루션으로 개선하고, 둘째, 대학 및 연구기관과의 기술이전 협력체계를 구축하며, 셋째, 지역의 특화산업과 연계한 디지털 전환을 지원하는 기술금융을 확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유휴부지를 활용한 청년 창업 생태계를 조성함으로써 농공단지를 청년 친화형 스마트 산업지구로 리디자인할 필요가 있다.
농공단지는 더 이상 낡은 산업시설의 대명사가 아니다. 그곳은 지역 주민의 삶, 청년의 기회, 지방산업의 축적의 시간이 녹아있는 공간이다. 농공단지의 생존과 경쟁우위 확보는 지역경제 활성화의 핵심 동력이다.
기술로 지방을 살리는 길, 우리는 이미 그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 중심에는 농공단지가 있다. 지금 농공단지의 변신은, 아무리 지나쳐도 무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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