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寺미학 .23] 해우소

  • 김봉규
  • |
  • 입력 2020-02-06   |  발행일 2020-02-06 제22면   |  수정 2020-02-06
햇살 따라든 새소리·바람소리, 걱정을 비우고 또 비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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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의 전통 해우소는 소중한 가치관과 미학이 담겨 있다. 대표적인 산사 전통 해우소인 문경 김용사 해우소(위쪽)와 승주 선암사 해우소.

인류 물질문명이 너무 인간의 편리와 효율 중심으로 흘러왔다. 그런 물결에 떠밀려 전래의 소박하고 자연친화적 삶의 유산들이 적지 않게 없어져 버렸거나 사라지고 있다. 그런 유산 중의 하나가 전통 뒷간(화장실)이다. 그중에서도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산사의 전통 뒷간은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자연친화적 가치관과 미학이 녹아있는 문화유산이다. 현대문명이 배출해내는 온갖 문명의 배설물들이 지구촌의 건강을 해치고 인간 정신도 황폐하게 하고 있는 상황을 우리는 수시로 접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심각성을 절감하지 못하고 눈길을 돌려버리거나 눈을 감아버리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산사가 전통 뒷간문화를 지켜가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현대문명의 거센 물결에 떠밀려 산사 전통 뒷간마저 점점 사라지고 있어 아쉬움도 크다.

대소변, 재·왕겨·낙엽 등과 썩어
양질 비료로 재탄생 땅에 뿌려져
가장 이상적인 배설물 처리시설

편리함 추구와 무관심에 떠밀려
전통 해우소 점점 사라지고 있어
인간·자연 不二사상 잃지 말아야


◆자연친화적 전통 해우소

'비우고 또 비우니 큰 기쁨일세/ 탐진치(貪嗔癡) 어두운 마음도 이같이 버려/ 한 조각 허물마저 없어졌을 때/ 서쪽의 둥근 달빛 미소 지으리/ 옴 하로다야 사바하'

사찰 뒷간에 가면 간혹 볼 수 있는 입측진언(入厠眞言)이다. 뒷간에 들어가서 외우는 진언이다. 뒷간에서 볼일을 볼 때 순차적으로 외우는 다섯 가지 진언인 입측오주(入厠五呪) 중 첫 번째 진언이다.

뒷간은 측간(厠間), 변소 등 다양하게 불려 왔다. 사찰에서는 동사(東司), 해우소(解憂所)라는 이름으로도 불려왔다. 요즘은 '근심을 해결하는 곳'이라는 의미의 '해우소'라는 이름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해우소라는 이름은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다. 처음으로 '해우소'라고 명명한 주인공은 양산 통도사 극락암에 오래 주석했던 선승인 경봉스님(1892~1982)이라고 한다.

잘 비우고 버리는 일은 건강한 삶을 위해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실천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어리석은 욕심이나 생각 등을 제대로 버릴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는 자유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육체 또한 마찬가지다. 비울 것을 잘 비울 수 있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이 비우는 일을 매일 실천하는 곳이 뒷간이다. 대소변을 비우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일은 이를 처리하는 일이다. 더럽고 냄새나는 것의 대명사인 대소변을 매일 비우러 가는 곳의 이름은 뒷간이나 측간에서 변소, 화장실로 듣기 좋게 바뀌어왔다. 그러나 그 처리방식은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다. 그래서 산사의 전통 해우소가 지닌 미학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산사의 전통 해우소는 더없이 이상적인 대소변 처리시설이다. 전통 해우소는 자연으로부터 나온 음식물을 먹고 배설한 배설물을 다시 자연으로 되돌리는 순환의 연결고리를 철저히 고려해 만들어졌다. 흙바닥에 떨어진 배설물은 그 자리에서 왕겨나 재, 낙엽 등과 함께 썩어 양질의 유기질 비료로 변한다. 이것은 다시 땅에 뿌려져 곡식과 채소를 키우는 소중한 거름이 된다. 환경오염과는 거리가 먼, 너무나 환경친화적인 처리방식이다.

사찰의 발우공양이 음식쓰레기를 남기지 않는 이상적인 식문화라면, 전통 해우소는 이처럼 인간의 배설물을 다시 자연으로 환원시키는 가장 이상적인 배설물 처리시설인 것이다. 인간과 자연은 하나라는 불이(不二)사상, 모든 것은 변하고 순환하며 서로 연관돼 있다는 상의상관(相依相關)의 진리를 해우소만큼 잘 보여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어느 산사에 가나 볼 수 있었던 이 같은 전통 해우소가 이제는 흔하지 않은 존재가 돼가고 있다. 요즘은 산속 사찰이라도 대부분 수세식 화장실을 갖추고, 많은 사찰이 중창불사를 하면서 재래식 해우소를 아예 없애 버려 전통 해우소를 찾아보기가 더욱 힘들게 되어가고 있다.

전통 해우소를 보존하거나 그 방식을 유지하고 있는 대표적 사찰로는 승주 선암사, 순천 송광사, 문경 김용사와 대승사, 서산 개심사, 부안 내소사, 홍천 수타사, 삼척 영은사, 영월 보덕사 등이다.

◆300년이 넘은 김용사 해우소

지은 지 300년이 넘었다는 김용사 해우소는 전통 해우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대표적 해우소라 할 만하다. 최근에 가 봤을 때도 20여년 전 모습 그대로였다.

개울가 길옆에 서 있는 해우소로 들어가면, 눈높이에 설치된 문창살과 곳곳의 구멍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밝고 아늑한 분위기다. 입측오주가 걸려 있고 측간 신의 이름을 써놓은 위패도 걸려 있다. 문창살에 걸려있는 바구니에는 휴지가 들어있다. 앉아 있으면 개울 물소리와 새소리, 바람소리가 들려온다. 해우소라는 이름에 걸맞게 심신의 걱정거리가 다 없어지는 듯하다.

이 해우소는 나무기둥이 놓인 주춧돌 높이가 인분이 쌓이는 높이보다 약간 높아 부식을 방지할 수 있도록 했고, 하단부의 기둥들은 껍질만 벗긴 원목 상태를 그대로 사용해 소박미를 더해준다.

근처에 있는 대성암(김용사 부속 암자)의 해우소도 전통 해우소 그대로다. 암자 마당 아래에 있는 밭 가에 세워져 있다.

부근의 대승사 해우소 역시 김용사 해우소와 함께 전통 해우소의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는데, 최근 사찰 건물이 추가로 많이 건립되면서 사라져 버렸다. 그나마 다른 장소에 전통 방식의 해우소를 새로 지어놓아 다행이었다.

100년이 넘은 선암사 해우소는 그 모양새가 매우 아름다운 데다 큰 규모(앞면 5칸 건물)와 구조 등의 면에서 전국 최고의 해우소로 꼽힌다. 근래 보수를 하면서 공기가 통하도록 나무판자로 만들어 놓은 하단부를 뜯어내고 철옹성 같은 벽으로 바꾸어 원형을 잃어버린 것은 아쉬운 점이다.

영월 보덕사 해우소도 앞면 3칸·옆면 1칸·맞배지붕의 해우소인데, 건물의 상량문을 통해 1882년에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의 배설물을 자연스럽고 완결된 형태로 다시 대자연으로 되돌리는 전통 해우소. 여러 가지 현실적인 사정이 있겠지만, 편리 추구와 무관심 속에 이런 전통 해우소가 사라지는 현실은 바람직한 일이 아닐 것이다. 현대인의 생활 감각에 맞춰 보수하거나 새로 마련하더라도 전통 해우소의 근본 원리와 정신은 변하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삶의 방식은 수행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편리만 추구하다 수행자들이 마음의 소박함까지 점점 잃어버리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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