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명필 이야기-1] 왕희지 '난정서'(상)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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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5-13  |  수정 2020-07-30 07:49  |  발행일 2020-05-13 제19면
[흥미로운 명필 이야기-1] 왕희지 난정서(상)
최고의 서예작품으로 칭송받는 왕희지의 '난정서'를 보고 당태종 때 풍승소가 베껴 쓴 난정서(앞 부분). 베이징고궁박물원 소장. 여러 임모본 중 가장 원본에 가깝게 임모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동양문화권의 대표적 예술인 서예(書藝)는 붓과 먹, 종이 등을 이용해 문자를 중심으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시각예술이다. 중국에서 발달해 한국과 일본, 베트남 등에서도 계승·발달시킨 서예는 수많은 서예가들이 필생의 노력을 통해 다양하고 개성있는 서예작품을 남겼다. 더불어 흥미로운 일화도 많이 남겼다. 대표적 명필 서예가들의 작품과 삶은 지금도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는 서예에 대한 식견과 안목을 키우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서예가열전'(곽노봉 지음), '왕희지 평전'(궈롄푸 지음), '한국역대서화가사전'(국립문화재연구소) 등 자료를 참고해 중국과 한국 명필의 삶과 작품을 살펴본다.

먼저 서예계에서는 너무나 유명한 왕희지(307~365)의 작품 '난정서(蘭亭序)'에 얽힌 일화부터 소개한다.


난정서는 서성(書聖)으로 불리는 왕희지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것으로 꼽힌다. 353년 3월 3일에 왕희지는 지금의 중국 절강성 소흥현인 회계현(會稽縣)의 산음(山陰)에 난정(蘭亭)을 짓고 '문장과 의로움이 세상의 으뜸'인 사안(謝安)을 비롯해 치담, 손작 등 동진의 사족(士族)과 명사들 42명을 초청해 모임을 가졌다. 왕휘지, 왕헌지 등 자신의 아들 7명도 포함돼 있다. 왕희지는 당시 동진(東晉)의 회계현을 다스리던 회계내사(會稽內史)이자 우군장군(右軍將軍)으로 있었다.
이들은 이날 제를 올리고 술을 마시며 시를 짓는 모임을 가졌다. 모임은 술잔이 물에 떠내려 돌아가는 동안 시를 짓지 못하면 벌주로 술을 마시는 유상곡수(流觴曲水) 연회로 펼쳐졌다. 당시 왕희지, 사안 등 21명은 시를 지었고, 나머지는 벌주를 마셨다. 이 때 지었던 시 36수를 모아 책자를 만들었는데, 왕희지가 서문(序文)을 썼다. 후서(後書)는 참석 인사 중 문명(文名)이 높았던 손작이 썼다. 왕희지는 연회가 끝난 후 서문을 짓고 글씨도 직접 썼는데, 이것이 바로 '난정서'이다. 지금까지도 최고의 서예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난정서는 이날 모임의 일시와 장소, 날씨, 모임의 경위와 풍경 내용 등을 서술하고 왕희지 자신의 감흥을 담고 있다. '훗날 독자들 또한 이 글들을 보면 감동하게 될 것이다'라고 끝맺고 있다.


당나라 때 하연지(何延之)가 남긴 난정기(蘭亭記)를 보면, 당시 왕희지는 술이 취한 상태에서 잠견지(蠶繭紙: 누에고치 껍질로 만든 종이)에 서수필(鼠須筆: 쥐 수염으로 만든 붓)로 28행 324자를 써 작품을 완성했다고 한다. 글씨 중에는 특히 갈지(之)자가 가장 많아 24자나 들어가 있는데, 자획에 변화를 줘 한 글자도 똑같이 쓴 것이 없었다. 왕희지는 술이 깬 후 수 십 번을 다시 써보았으나 이에 미치지 못하자 스스로 '신의 도움을 받았다'라며 감탄했다고 한다.
이 난정서에 얽힌, 당태종과 관련한 유명한 일화가 전한다.
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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