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중 앞에 선 새 교황 레오 14세. 8일(현지시간) 새 교황으로 선출된 레오 14세가 성 베드로 대성전 중앙에 있는 '강복의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연합뉴스>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의 굴뚝에서 새 교황의 선출을 알리는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미국 출신의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추기경(69)은 8일(현지시간) 133명의 추기경 선거인단이 참석한 2일차 콘클라베(Conclave·추기경단 비밀회의)에서 선거인단의 3분의 2 이상의 지지를 받아 제267대 교황으로 선출됐다. 지난달 21일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이후 17일만에 14억 가톨릭 신자의 수장으로 등극한 것이다.
사상 최초의 미국인 교황의 교황명은 '레오'다. 라틴어로 '사자'를 뜻하며 강인함과 용기, 리더십을 상징한다. 새 교황명 '레오 14세'는 노동권과 사회정의를 강조한 레오 3세 교황(재위 기간 1878-1903)을 계승한 것이다.

일(현지시간)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굴뚝 위로 흰 연기가 피어오르자 성 베드로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새 교황 탄생에 감격하고 있다. <연합뉴스>
새 교황의 탄생을 알리는 고위 추기경의 입에서 “하베무스 파팜(우리에게 교황이 있다)"이 울려 퍼지자 가톨릭 신자 등 수많은 인파가 집결한 성 베드로 광장은 환호로 가득 찼다.
교황의 예복인 수단을 입고 성 베드로 대성당 '강복의 발코니'에 등장한 레오 14세는 이탈리아어로 “평화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있기를(La pace sia con tutti voi)"라고 말하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고 세계는 교황의 탄생을 축복했다.
이번 교황 선출은 2005년 베네닉토 16세와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 선출 때처럼 이틀 만에 마무리된 가운데, 총 4번째 투표 만에 결과가 나왔다. 애초 레오 14세는 유력 후보군에 포함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바티칸의 관료주의에서 자유로웠던 점이 유력 후보였던 이탈리아의 피에트로 피롤린 추기경보다 우위에 선 배경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다 콘클라베 선거인단 133명 중 미국인 추기경 10명이 투표에 나섰는데, 이는 이탈리아의 17명 다음으로 많은 것이다.
레오 14세는 전임자인 프란치스코 교황의 측근으로 평가되지만 중도성향을 표방하고 있어 기존의 개혁 노선을 승계하면서도 가톨릭교회의 전통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할 것이란 전망이다.
미국 시카고 태생인 레오 14세는 페루에서 사목활동을 펼쳐왔다.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일원으로, 1982년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이 추기경으로 임명했다. 영어와 스페인어는 물론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등 다양한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교회 내 다양한 목소리를 포용하는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취미로는 테니스를 즐긴다. 2023년 추기경으로 임명된 직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아마추어 테니스 선수"라고 밝힌 바 있다.
미국인 추기경의 교황 선출이 알려지자 도널드 트럼트 미국 대통령은 축하에 나섰고, 레오 14세의 고향 시카고는 축제 분위기에 빠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SNS 트루스 소셜에서 프레포스트 추기경의 교황 등극에 대해 ““얼마나 흥분되는 일이고, 우리나라에 얼마나 큰 영광인가. 나는 교황 레오 14세를 만나길 고대한다. 그것은 매우 의미 있는 순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세계 각지에서 전쟁이 진행 중이거나 개전(開戰)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그동안 종교의 경계를 넘어 평화의 중재자 역할을 기꺼이 수행해온 교황의 역할에도 국제사회의 관심이 쏠리는 모양새다. 직전의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한반도 평화를 위해 북한 방문 의사를 밝혔으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중재를 위해 애쓴 바 있다.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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