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 푸드' 좇기보다 균형 식단·규칙적 운동·즐거운 마음가짐이 만병통치약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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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3-13   |  발행일 2020-03-13 제34면   |  수정 2020-03-13
■ 몸에 좋은 음식의 허와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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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의 기운을 담고 있는 각종 채소와 과일류를 보면, 보기만 해도 기운을 상승시켜주는 것 같다. 가공음식과 제철음식이 균형을 이루는 힐링식단 이야 말로 모든 가족과 오순도순 선순환하는 것, 음식이 존재하는 진정한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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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대형마트의 범람 등으로 인해 예전에는 꿈에도 보기 어려웠던 각종 가공식품의 홍수에 직면하게 됐다. 평소 집에서 해 먹던 온갖 음식을 첨단 포장술 덕분에 이제는 매장을 찾으면 반가공된 각종 식재료를 맘껏 사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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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사협회는 특정 제조사와 손을 잡고 해당 상품의 판매에 영향을 미치는 반(反)식품의학적 주장을 서슴지 않고 하는 '쇼닥터'들 때문에 국민들의 건강염려증은 위험수위에 놓이게 됐다고 경고한다. 식품의학자는 지금이라도 '몸에 좋은 음식', '면역력에 좋은 식품'이란 표현을 사용하지 말아야 된다고 권고한다.


1987년쯤 국내에 상륙한 한국 암웨이 '뉴트리라이트', 그리고 1980년 미국에서 태동한 '허벌라이프'는 국내 양대 건강식품으로 각인된다. 물품 판매자는 특정 종파의 전도사 같았다. '건강식품 묻지마 대박 특수'에 편승해 별별 물건이 다 가세한다. 게르마늄, 셀레늄, 지장수, 육각수, 수소수, 음이온, 효소찜질, 글루코사민, 동충하초, 두충나무, 헛개나무, 로열젤리, 키토산, 프로폴리스, 블루베리, 아로니아, 노니, 슈퍼바나나, 미강차, 봉침, 와송, 어성초, 시서스, 현미채식, 쥐눈이콩청국장…. 녹용과 산삼의 위세를 압도해 버렸다.

건강기능식품 통한 질병 예방·치료
기사형 광고, TV 쇼닥터 과장 넘쳐
의약품과 경계 허문 천차만별 건강식

서적마다 절대 먹지 말아야 할 식품
절대로 먹어야 할 식품 '이중적 잣대'
같은 음식 놓고도 '좋다 나쁘다' 평가
매일 선택한 치열한 '음식정치' 산물

1일 물 2ℓ 효능도 과학적 근거 미흡
기적의 식품·위험한 가공식품도 없어
면역력에 좋은 음식 표현 자제 권고
"재료 가리지 말고 양 줄이기 실천을"


◆식품은 어느새 약품으로 둔갑

어느 날부터 일반 식품이 만병통치약으로 슬그머니 건너온다. 특정 식품이 광고될 땐 어김없이 '기적'과 같은 수식어를 붙였다. 워낙 이런 일이 다반사가 되다 보니 일손이 부족한 당국도 1대 1 대응을 할 수 없었다. 피해 신고가 들어오거나 심각한 후유증이 발생해 사회적 문제가 됐을 경우 뒤늦게 솜방망이 처벌을 할 정도였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도 어김없이 항바이러스 식약품이 유튜브와 주요 기사로 부각됐다. 면역력, 만병통치약, 기적의 식품 등의 검색어를 쳐보면 얼마나 천문학적 상품이 우리를 노리고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독자들은 그렇게 많은 드림푸드에도 불구하고 지금 왜 그렇게 많은 이들이 말기 암에서 살아오지 못하는 가에 대해 본격적으로 의문을 제기해봐야 시점일 것 같다.

나는 거의 열흘 정도 뉴스를 장식한 숱한 식품의학 전문가의 멘트를 추적했다. 나는 그들의 상반된 주장 앞에서 멘붕이 왔다.

지난해 10월22일자 서울의 모 일간지 한 식품 관련 기사. 이 식품을 먹으면 경동맥 혈관벽 두께를 감소시켜 근본적인 혈관 관리에 도움을 준다. 뉴스타파 측이 이동근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정책기획팀장에게 관련 기사에 대한 팩트 체크를 요청했다. 이 팀장은 "이 기사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혈관벽에 직접 작용해서 혈관벽을 얇게 하는 그런 작용은 제가 아는 의약품은 존재하지 않는다. 건강기능식품으로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다는 생각은 부적절하다"고 답변했다. 이 기사는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 심의 결과, '기사형 광고'로 분류돼 경고 처분을 받았다. 식약처에 따르면 기사형 광고는 겉으로는 광고가 아니기 때문에 식품표시광고법의 규제를 받지 않는다.

2002년부터 한국의 건강식품과 의약품의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보다 못한 보건복지부가 칼을 빼든다. 의료법을 우회하는 변종 기사들이 속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가 2019년 상반기 6개월 동안 주의나 경고 처분을 내린 식품 관련 '기사형 광고'는 모두 529건, 이 중 건강기능식품을 홍보한 기사형 광고는 147건에 달했다.



◆음식 정치(Food Politics)

2015년에도 '하루 청양고추 10개 먹기' '죽염 10숟갈 먹기' '토끼 5마리 먹기' 등 황당 요법으로 암 환자와 자폐증 환자 24명으로부터 1억8천만원을 가로챈 가짜 한의사가 경찰에 붙잡힌 바 있다. 이처럼 비슷한 범죄가 되풀이되고 있는 것은 현대 의학에서 손 쓸 방도가 없는 말기 암 등 난치병 환자와 그 가족들이 '혹시나'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민간에 눈을 돌리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정국에도 그런 상혼이 발호했다. 지난 1월9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허위·과장 광고를 한 인플루언서 15인을 적발했다.

지금도 미네랄 주스, 연골 주스, 명안 주스, 미생물 주스, 히포크라테스 주스, 바나나 단백질 주스, 황금 주스, 청혈장, 세포죽, 수면죽….

시내 교보서적을 찾아 건강식품 코너를 훑어봤다. 절대 먹지 말아야 할 식품, 그 반대편에는 절대 먹어야 할 식품 관련 서적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육식도 나쁘다와 좋다는 파로 나뉜다. 김치를 발암식품으로 보는 의사도 있다. '이것 먹으면 나쁘다'는 주제 의 책 제목을 쭉 모아놓으면 세상에 먹을 게 하나도 없다.

반대로 '이것 먹으면 좋다'는 제목 책을 모아놓으면 세상에 왜 아직도 아픈 사람이 있나 싶다. 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주장인가. 의사들도 못 모으는 중론이니 국민은 누구의 봉이 될 수밖에 없다.

오늘 당신이 선택한 음식은 치열한 '음식 정치(Food Politics)'의 산물이랄 수 있다. 한국식품연구원 김경탁 전략기술연구본부장의 생각이다. 그는 현재 효능분석이 얼마나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인가를 고발한다. "암에 대한 연구 결과는 시험관이나 세포배양에서 수행한 결과인 경우가 태반이다. 암세포를 배양한 시험관에 어떤 식품 성분을 첨가하니 암세포가 죽거나 증식이 억제됐다고 하는 식이다. 세상에는 특별히 좋은 음식도, 특별히 나쁜 음식도 없다."

그는 "코알라는 평생 유칼립투스 나뭇잎 하나만 먹고산다. 다른 동물도 대부분 먹는 음식이 뻔하다. 그러나 인류는 오랜 세월 계속 새로운 재료와 조리법을 찾았다. 토마토처럼 한때 '슈퍼 푸드'로 추앙받던 식품이 어느 날 갑자기 '내 몸을 해치는 존재'로 평가절하당하곤 한다. 누구는 현미를 먹으라고 하고, 다른 누구는 백미가 훨씬 낫다고 말한다. 다양한 정보 사이에서 소비자는 갈피를 잡기 어렵다. TV에 등장하는 전문가와 서점에 쏟아져 나오는 건강 관련 서적도 혼란을 가중시키는 게 현실"이라고 말한다.

최근 저명 학술지 '내과학연보(Annals of Internal Medicine)'에 실린 논문 한 편이 국제적 관심을 모았다. 소고기·돼지고기·양고기 등 이른바 적색육과 베이컨·소시지·살라미 등 가공육의 건강상 위험이 실제보다 과장되게 알려졌다는 내용이다. 그동안 적색육과 가공육은 암·심장질환 등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여겨졌다. 미국·캐나다·스페인 등 세계 7개국 학자 14명이 이 '상식'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쇼닥터 고발

최근 비과학적 건강 상식을 고발 중인 이태호 부산대 미생물학과 명예교수는 '우리는 쇼닥터에게 속고 있다(오픈하우스 간)'는 책을 통해 몸에 좋다던 TV 쇼닥터에 의해 과장된 건강기능식품의 실체를 까발려 주목받고 있다.

"사실 방송에서 식품의 효능을 과장하는 쇼닥터치고 식품을 종합적으로 공부한 사람은 없다. 그냥 대중이 믿고 싶어 하는 속설을 방송이 의도하는 포맷에 따라 자료를 검색해 제공할 뿐이다. 그러니 그들의 주장은 오늘 말 다르고 내일 말 다르며, 이 사람 말 다르고 저 사람 말이 다를 수밖에 없다.룖

특히 기정사실화된 1일 물 2ℓ에 대한 불편한 진실도 알려준다. "하루에 2ℓ씩 물을 마시면 좋다는 이야기도 과학적 근거가 없다. 이 이야기는 1945년 미국과학위원회 산하 영양위원회가 하루 2천500㎖의 수분 섭취가 좋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당시 보고서에는 음식이나 음료수 내 수분을 합산할 경우 이미 충분한 수분 섭취가 이뤄진다는 단서가 제시됐었다. 그러나 보고서 내 뒷부분이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으며 이러한 오해가 시작됐다. 이미 뉴욕타임스와 BBC에서도 잘못 알려진 의학 미신으로 소개한 바가 있다"고 했다. 그는 "사람이 하루에 마실 물의 권장량은 없다"면서 "음식의 종류, 환경, 체질, 생활습관에 따라 마셔야 할 물의 양도 다르다"고 강조했다. 물은 마시고 싶을 때 마시면 된다는 얘기다. 그는 "면역력 증진 식품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가

이제부터 '몸에 좋은 음식이란 표현'부터 자제했으면 싶다. 식품업자도 이게 식품인지 약품인지를 분명히 해야 된다.

그럼 이제 우린 뭘 먹어야 되는가. 자기 식성에서 시작하자. 독한 감기만 앓아도 식성을 잃게 된다. 끼니 때마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건강한 것이다.

하지만 식성이 '편식'으로 기울면 문제가 발생한다. 현대인은 대다수 지금 그 위험구역에 있다. 그래서 식품업자가 기승을 부리는 것이다.

먹거리 춘추전국시대·영양과잉시대다. '어느 정도 먹느냐'가 정말 중요하다. 모든 문제는 '과부족'에서 발생한다.

그렇다면 심신이 평화로우면 절대 과식하지 않는다. 그러니 몸 건강과 맘 건강부터 합치시켜야 한다. 그럼 나머지는 심신이 알아서 할 것이다. 우린 그것을 믿어야 된다.

식품공학자 최낙언 박사가 첨언한다. "자연에 우리가 모르는 기적의 식품은 없다. 먹으면 큰일나는 가공식품도 없다. 유념할 건 절제뿐이다. 오랜 세월 굶주림에 시달렸던 인류는 필요량보다 훨씬 많이 먹기를 원한다. 재료를 가리지 말고 양부터 줄이자."

취재를 끝내면서 독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규칙적이고 절제된 생활습관, 마약류 금지, 균형식단, 적절하고 규칙적인 운동, 긍정적이고 여유있는 사고. 어쩜 바로 그 조합이 우리가 그토록 찾던 '만병통치약'이 아닐까.

글·사진 =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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