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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에 원로 음악가 이점희 선생의 유품을 기증한 아들 이재원씨가 대구 남구의 자택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
"저희 가족이 기증한 자료들을 많은 사람들이 활용하고 연구해 '대구 음악'에 대한 자부심을 높일 수 있길 바랍니다."
최근 대구의 원로 음악가 이점희 선생(1915~1991년)의 유품을 대구시에 기증한 아들 이재원씨(70)가 이같이 말했다.
이점희 선생은 계성학교에서 작곡가 박태준에게 음악을 배운 것을 계기로 음악가로 성장한 한국 서양음악의 1.5세대 예술가다. 해방 직후 대구에서 음악학원 운영, 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 교수, 영남대 교수 등을 역임하며 많은 음악인을 양성했고, 지휘자 이기홍(1926~2018)과 함께 대구시향, 대구시립오페라단 창단의 토대를 닦은 인물이다.
"아버지가 작고한지 30년이 됐습니다. 예전에 가족이 이사를 하던 중 많은 자료들이 유실돼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 그게 후회가 돼 제가 남은 유품들을 집에 잘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대구시에서 기증을 제안해왔고, 한동안 고민하다가 기증을 결정했습니다. 대구시에서 유품을 잘 보관하고 전시까지 해준다고 하니, 유족의 한사람으로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아버지의 혼이 대구 음악계에 길이 남아있기를 바랍니다."
기증된 유품은 이점희 선생이 제자들을 가르칠 때 사용했던 오래된 피아노를 비롯해 릴 녹음 플레이어, 전축, 연주복, 서예가 서경보 선생이 오페라에 대해 글을 써준 액자, 화가 백낙종 선생이 그려준 오페라 '춘향전' 포스터 원화, 음반, 사진자료 등 다양하다.
유품은 대구 음악사를 비롯해 한 시대의 문화예술 관련 역사가 담겨 있는 것들이다. 결혼 후 7년간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던 이씨는 이점희 선생이 남긴 물건들에 대한 기억도 많이 갖고 있다.
"젊은 시절 아버지는 대구에서 음악을 일구려는 목표 의식이 뚜렷하셨습니다. 유품은 모두 대구 음악을 위해 노력하신 아버지의 열정이 깃든 것들입니다. '녹향'지기 고(故) 이창수 선생이 아버지의 음악학원 첫 제자였는데, 그래서 현재 '녹향'에 있는 전축 하나도 아버님이 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씨는 기증한 유품 중 유난히 애착이 가는 물건도 있다고 했다.
"피아노와 서경보 선생이 써준 글씨 액자, 백낙종 선생의 춘향전 원화가 개인적으로 특히 소중합니다. 오페라 작품과 연관성이 있고 아버지 또한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소중하게 보관하셨기 때문입니다. 국악인 박기환 선생이 아버지께 선물해주신 옥으로 만든 편경 하나도 귀하게 간직하고 있다가 이번에 함께 기증했습니다."
아들의 기억 속 이점희 선생은 어떤 아버지, 어떤 예술가였을까.
"아버지가 집에서 음악학원을 하실 때 자식들은 모두 뒤꿈치를 들고 걸어 다녀야했습니다. 이기홍 선생과 대구시향 창단까지 교향악운동을 함께 하고, 또 오페라 운동을 하시느라 늘 예술가들과 어울리셨습니다. 음악활동에 지갑을 먼저 여셨기에 형님이나 저는 기숙사 비용이나 수학여행비도 못받아간 적이 많습니다. 아버지는 가정보다 음악이 우선이었고, 대구에 음악과 예술을 제대로 뿌리내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일생을 바친 분입니다."
이씨는 얼마 전 기증 작업을 위해 자택에서 피아노를 옮길 때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수십년 세월을 이씨의 가족과 함께 한 정든 피아노를 집에서 떠나보내려니 그 심정이 복잡했을 것이다.
이씨는 "대구시를 비롯해 이번 유품 기증을 위해 애써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제가 기증한 아버지의 물건들이 전시와 교육 등에 잘 활용돼 대구의 음악사를 알리는데 기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노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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