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태의 제3의 눈] 보수언론, 표현의 자유를 외치다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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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7-03   |  발행일 2020-07-03 제22면   |  수정 2020-07-03
대북전단 다룬 언론보도들
국민 희생과 목숨 볼모로 한
평화 짓밟는 표현의 자유는
존중 받을만한 가치 있을까
목숨보다 귀한 자유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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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분쟁 전문기자

'남한 활동가들 대북 전단 날리며 긴장 고조'<알자지라>, '골칫거리 풍선'<방콕포스트>, '남한(정부) 법적 경고에도 탈북자들 대북 전단 풍선 밀어붙일 것'<인디펜던트>, '남한 풍선 발사'<비비시>, '남한(정부) 대북 전단 탈북자 고발'<에이피>….

6월 내내 시끄러웠던 대북 전단을 다룬 외신 제목들이다. 여긴 우리의 순진한 바람 같은 '남선북악' 따위가 없다. 둘을 싸잡아 싸움질이나 해대는 별종쯤으로 보는 눈길뿐이다. 탓할 것도 억울할 것도 없다. 사실이 그랬으니까. 하여 6·25전쟁 70주년에 날아든 이 서울발 뉴스를 보는 심사가 참 복잡했다. 강산이 일곱 번이나 변하는 동안 우리는 아직도 그 전쟁에서 못 벗어나 죽으라고 싸우는 꼴이 한없이 부끄러웠고.

이번 대북 전단을 다룬 나라 안팎 보도는 '표현의 자유'를 외친 보수언론과 '시민의 안전'을 앞세운 진보언론으로 갈렸던 게 아닌가 싶다. 전통적으로 표현의 자유는 진보 언론의 영역이었지만, 대북 전단에서만큼은 그 주체가 뒤바뀐 셈이다. 이건 보수언론이 대북 전단을 표현의 자유라 외치며 남북 두 정부를 동시다발 공격하는 무기로 삼았다면, 진보언론은 시민의 안전을 내걸고 남북 평화를 밀어붙였다는 뜻이다. 그 바탕에는 예나 이제나 주전론을 퍼트려온 보수언론과 반전을 줏대 삼은 진보언론의 본질적 성격 차이가 깔려 있었고.

본디 개인이든 집단이든 결투를 외치는 쪽은 목소리도 크고 용감해 보인다. 반대로 싸움질을 마다하는 쪽은 좀 어눌하고 비굴해 보일 수도 있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대북 전단을 놓고 우리 시민사회의 정서와 달리 나라 안팎 언론에서 표현의 자유가 도드라져 보였던 까닭이다.

전쟁이란 건 국가로 위장한 정부가 저지르는 가장 극단적인 정치 행위다. 그 전쟁에는 어김없이 나팔수들이 등장한다. 전쟁을 팔아 부를 챙기는 언론이다. 그리고 그 전쟁의 희생과 책임은 모조리 시민이 뒤집어쓴다. 전쟁을 반대하는 까닭이다. 간 큰 놈이 일으키는 전쟁과 달리 애초 평화를 좇는 놈은 늘 고단한 구걸을 했던 게 인류사다. 시민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면 머리를 조아린들 어떠리오.

대북 전단 보도에서 나라 안팎 보수언론이 표현의 자유에 들이댄 법의 잣대도 눈여겨볼 만했다. 외신은 '모두가 의사 표현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는 1948년 세계인권선언 제19조나 '모두는 표현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고, 국경을 초월해 정보와 사상을 추구하고 전달할 권리가 있다'는 1966년 시민과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19조 1항과 2항을 앞세웠다. 그러나 '타인의 권리와 신용 존중, 국가안보, 공공질서, 공중보건, 도덕보호를 위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3항을 통해 한국 사회의 현실을 깊이 들여다본 경우는 없었다. 이건 내신이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대한민국 헌법 제21조만을 우겼을 뿐,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는 제37조를 숨긴 것과 다를 바 없다.

표현의 자유는 절대적 권리다. 그러나 시민의 목숨을 볼모로 전쟁을 부추기고 평화를 짓밟는 표현의 자유까지 존중할 가치는 없다. 시민의 목숨보다 귀한 표현의 자유는 없다. 표현의 자유는 시민을 위한 것일 뿐, 추상적인 자유를 위한 자유가 아니라는 뜻이다. '주석궁으로 탱크몰이'를 외친 극단적 호전주의 곡두가 여전히 어른거리는 보수언론을 노려 보는 까닭이다.
국제분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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