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로드] 경상도 국수열전 (2)추억의 국수공장...그때 그 시절 그 면의 맛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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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7-03   |  발행일 2020-07-03 제33면   |  수정 2020-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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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온다습한 분지의 고장 대구. 특히 건면을 만드는데 가장 이상적인 기후조건을 가진 대구는 부산과 함께 한국 국수 산업의 메카가 된다. 현재 대구 양대 추억의 국수 공장은 풍국면과 소표국수. 특히 소표국수는 1948년 대구 중구 수창동 삼성종합기계가 첫 출시한 국수 기계를 맨 먼저 매입했는데, 50~60년대 최강자 닭표국수와 함께 국수가 국민 간식이던 시절을 풍미했다. 이전한 소표국수 성주공장 내 건조실에 걸린 국수 사진.

면(麵), 너무 범주가 넓다. 국수의 범주로 좁히기 위해서는 냉면·라면류를 빼야 한다. 국수 시장은 크게 제분 시장과 제면 시장으로 양분된다. 우리밀 재배가 워낙 제한적이고 대부분 미국·호주·캐나다 등에서 독점적으로 수입되니 아직 우리 밀가루·우리 국수란 표현도 무리가 있을 것 같다.

1946~79년 美 잉여농산물 원조, 밀국수 문화 본격화
운송과정 돌처럼 굳어져 원곡 받아 국내서 제분 유통
48년 대구 첫 제면기 제작, 소표국수서 처음으로 매입
고온다습 기후 건조국수 만들기 제격…호경기 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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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국면

밀가루 만드는 제분공장, 그 공장이 욕심을 내 제면공장까지 증설해 국수까지 파는 건 비효율적이다. 합친 것보다 하나만 특화시키는 게 더 타산적이었다. 당연히 정미소는 제분공장으로 연결된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정미소 시절이었다. 이때는 밀보다 주식인 쌀에 더 집중했다. 껍질 벗기는 도정(搗精)이 고운 가루 내는 절차보다 다소 수월했다. 방방곡곡 토박이 자본은 묻지마 정미소를 오픈했다. 가내수공업식 정미소는 '자동맷돌'이었다.

50년 인천과 부산을 딛고 등장한 대한제분, 2년 뒤에는 조선제분(이후 한국·동아제분이 되었다가 2016년 사조동아원으로 통폐합)이 생겨난다. 대한제분에서 생산한 밀가루 종류도 급수에 따라 곰표(1955년 첫 상표등록)부터 코끼리·독수리·공작·고래표 등 5개나 됐다. 조선제분은 무궁화·쌍룡·제비표 밀가루를 출시했다.

19세기까지 한국의 제면과 제분은 공장의 몫이 아니었다. 수제방식으로 자가 제분·제면을 했다. 그래서 입자가 균일하지 않고 굵고 거칠었다. 그것 갖고는 고급스러운 국수를 뺄 수가 없었다. 국수 대신 메밀, 고구마, 감자, 도토리, 녹두 등에서 전분을 추출해 면류를 해 먹는 게 더 쉬웠다. 밀국수는 조선 때는 말할 것도 없고 한말·일제강점기까지 서민의 몫이 아니었다. 밀가루의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던 시절이라서 그걸 원재료로 한 분식류조차 맛볼 수가 없었다.

1874년쯤 정미소가 국내에서 처음 등장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1892년 미·일 합작으로 엥겔식 정곡기 4대가 수입된다. 1918년 진남포에 만주제분, 용산에 풍국제분이 세워진다. 대형 공장에서는 생면보다 건면이 주종을 이룬다. 생면은 가가호호 홍두깨로 밀어 만든 칼국수 스타일이었다. 번거롭기 때문에 동네 어귀에 열악한 국수 기계 한 대 갖고 생면을 만들어 파는 국숫집도 공장과 가정을 연결해 주었다. 제대로 된 현대식 제분·제면기는 1950년대에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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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상공부에 등록된 소표국수의 상표.

밀국수 문화가 본격화된 것은 미국의 잉여농산물 원조 덕분이다. 46년부터 79년까지 한국은 146억810만달러어치를 원조 받는다. 62년까지는 무상 원조, 이후에는 차관 형식으로 지원됐다. 일명 'PL 480'으로 불리는 미국 공법(Public Law) 480호 덕분이다. 56년부터 25년간 밀가루를 제공 받는다. 당시 종이 포대 겉면에는 양국이 악수하는 그림이 로고처럼 찍혀 있었다. 일명 '악수표 밀가루'다. 하지만 원조 밀가루는 식용보다는 다른 용도로 악용됐다. 밀거래의 대상이었다.


처음에는 밀가루 형태로 원조됐는데 배로 운송되는 과정에 가루가 압착돼 돌처럼 굳기 일쑤였다. 그래서 나중에는 원곡 형태로 받아 국내에서 제분해 유통시켰다. 현재 국내 유통 수입산 밀은 미국과 호주에서 거의 수입되고 캐나다로부터는 강력분용 밀, 유럽으로부터는 파스타 및 제빵용 밀가루가 수입되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제분용 기계는 빵의 고장 유럽산이 제일, 제면기기는 일본 제품을 알아준다. 그래서 그 시절 국수 기계는 대다수 일본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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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국면

지역의 첫 신식 국수 기계는 언제쯤 등장했을까. 처음에는 대구 중구 수창동에서 오픈해 현재 서구 중리동으로 이전한 삼성종합기계가 48년 대구 첫 국수 기계를 제작한다. 물론 일본 기술을 벤치마킹한 국산 제면기랄 수 있다. 그 기계를 맨 먼저 매입한 국수 공장은 한때 중구 달성동 동아극장 옆에 있다가 90년대 성주로 이전한 '소표국수'의 본가 '대양제면'이다. 지금도 삼성종합기계는 그 기계 출시를 기념하기 위해 소표국수 첫 제면기를 촬영해 공장 한편에 액자로 걸어 놓았다. 그 국수 기계는 추억의 발동기 1호점인 북성로 조양기계와 꿍짝이 맞았다. 50~60년대 초 양수기와 방앗간 피대를 돌려 정미와 제분을 하려면 조양기계의 25마력짜리 발동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자동이 아니었다. 직접 손으로 돌려 엔진을 가동시켜야만 했다. 대구만의 제조업 특수, 그리고 고온다습한 기후 때문에 건조국수 만들기에 딱인 대구의 국수 공장 호경기는 어쩜 필연적이었는지도 모른다.

글·사진=이춘호 음식·대중문화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국수 6 원조밀가루
일명 'PL 480'으로 불리는 미국 공법(Public Law) 480호 덕분에 1956년부터 국내로 원조된 밀가루 포대. 겉면에 양국 우호증진의 상징인 악수 장면이 찍혀 있다. 일명 '악수표 밀가루'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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