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로드] 경상도 국수열전 (2)추억의 국수공장…소표국수 권호용 사장의 추억담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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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7-03   |  발행일 2020-07-03 제34면   |  수정 2020-07-03
쌀 부족한 60·70년대
쌀·면 혼합 밥상 장려
국수공장 즐거운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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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창업해 아버지와 형을 거쳐 가업을 잇고 있는 대양제면 권호용 3대 사장.

1970년대까지만 해도 국수는 대기업의 몫이 아니었다. 소주, 막걸리 처럼 지역을 대표하는 지방 국수 공장이 국수 시장을 분점했다. 국수 공장 특수는 '분식장려운동'과 맞물려 있다. 한국인의 주식은 쌀이었지만 70년대 후반 이전까지 쌀 생산량의 부족으로 쌀밥을 풍족하게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런 쌀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일제시대부터 국가가 절미운동(節米運動)의 일환으로 혼식과 분식을 강제하는 식생활개선 정책이 시행되었다. 일제시대의 절미운동과 혼분식 장려운동은 광복 이후에도 유사한 방식으로 지속되었다.

50년대 정부에 의해 절미운동이 실시되다가 56년부터 미국의 잉여 농산물 원조가 제공되면서 혼분식장려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된다. 이 운동은 60년대에는 재건국민운동본부 산하 식생활개선추진위원회, 이후 농림부 양정국 양정과에서 주도하다가 73년 농림부 식량국 산하 식생활개선과에서 담당한다. 67년부터 76년까지 매년 혼분식 관련 행정명령이 시달됐다. 매주 수·토요일은 '분식의 날'이었다. 그 기간 모든 음식점은 밥에 보리쌀이나 면류를 25% 이상 혼합하여 판매해야만 했다. 학교에서는 도시락 검사를 했고 가정에서도 혼분식을 강요받는다. 덕분에 국수공장은 즐거운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80년에 전국의 국수공장 사장들이 조합을 만든다. 이때 대구의 입김이 가장 셌다. 대구 남문시장에 있던 '남산제면' 고윤걸 대표가 초대 이사장, 2대 이 사장은 권호용이 맡게 된다.

대구시민과 동고동락한 추억의 국수는 어떤 게 있을까. 별표, 닭표, 소표, 풍국면, 새농촌국수, 왕관, 별표, 금성제면, 달성제면, 남산제면, 금성제면, 대구종합식품, 종표, 제비표, 학표 , 봉표, 갈산…. 그들이 종횡무진할 때 대구국수는 물론 지역경제도 절정이었다. 하지만 거의 다 사라졌다. 이제 국수공장은 추억이다. 72년 역사의 소표국수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게 꿈만 같다.

글·사진=이춘호 음식·대중문화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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