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生劇場 소설 기법의 인물스토리] 부추굽 가족(1) 우리는 각양각색 부추굽 가족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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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8-14   |  발행일 2020-08-14 제33면   |  수정 2020-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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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강인성(29)이다. 뭐가 그렇게 강인해서 이름까지 강인성이 됐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난 세상의 틈새 열정을 찾아 날 거기로 날려 보내길 좋아한다. 다른 길도 많지만 내 삶의 화두는 단연 '춤'이다. '미학적 노동'의 결정체랄까.

나는 지금 고난도의 춤동작이 인상적인 '팝핀(POPPIN)'이라는 스트리트 댄스(Street dance)를 뿜어내는 춤꾼이다. 팝핀은 힙합·브레이크댄스 등과 같은 스트리트 댄스 가운데 하나로 관절을 꺾고 근육을 튕기는 듯한 즉흥적인 안무가 특징이다. 이 때문에 '터지다, 튀다 라는 뜻의 '팝(Pop)'이라는 이름이 붙게 됐다.

나는 영남일보 주말섹션 '인생극장'이란 코너 덕분에 대구 남구 대명문화전당 광장 복판에서 모처럼 어머니가 부르는 경기민요 가락에 맞는 팝핀 동작을 올려볼 수 있었다. 나를 낳아준 어머니, 그가 부르는 노래에 아들이 춤을 입힌다는 것. 어떻게 보면 참 '부끄 부끄한 그림'이 아닐 수 없지만 거기엔 성결한 의미가 담겨있다.

어머니는 민요 르고
취미로 시작했다 3년 전 대학 입학

아들은 춤
장어구이집 카운터 지키는 팝핀 춤꾼
"하늘과 땅 사이에는 장어와 춤이 있다"


아버지는 장어
컬러링 사업 실패 후 외식업 재기

아들의 어설픈 춤을 계단에 앉아 물끄러미 내려다보시는 어머니. 정말 오랜만에 어머니의 고즈넉한 표정에 푹 젖어 들 수 있었다.

가족의 영광? 그리고 가족의 좌절! 난 영광보다 '좌절'이란 대목이 더 감동적이라 생각한다. 가족이란 참 희한한 물건이다. 좌절이 깊을수록 영광을 향한 그 반동력은 더욱 파워풀해진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평소 후줄근하게만 봐 왔던 가족이 비로소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늘 만나고 있지만 좀처럼 그 속살을 보기 힘든 불가사의한 존재, 그게 가족 아닐까?

서른을 딱 한 해 눈앞에 둔 나는 지금 부모가 가업으로 성장시키고 있는 남구 대명동 앞산순환도로변에 있는 장어집(대덕골) 카운트를 지키고 있다. 어떨 때는 이 식당이 춤판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각양각색의 손님이 자기만의 이야기를 떨궈놓고 간다. 난 그걸 퍼즐처럼 이어붙여가며 세상의 묘리를 조금씩 배우고 있다. 어떤 이는 울분을 토하고 어떤 이는 웃음꽃을 피워문다. 하지만 가만히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접점이 보인다. 모든 길이 결국 가족을 향한다는 사실. 그렇다. '삼국지'가 인생공부하기 딱 좋은 텍스트라고 하지만 나는 이 식당이 바로 '내 멘토'다.

하늘과 땅 사이에 뭐가 있는가. 춤과 장어가 있다고 생각한다. 춤은 내 영혼을 지켜주는 '주술사', 그리고 장어는 내 일상을 지켜주는 '수호천사'. 꿈도 중요하지만 일상도 중요하다. 하지만 난 오래 그 둘을 분리시켜 놓고 스스로를 갈등의 덫 속으로 끌고만 들어갔다. 꿈은 꿈이고 일상은 일상일 따름이라고 마구 외쳐댔다. 29년 세월을 살아오면서 겨우 느낀 게 있다. 그 꿈이 결국 일상을 통해 파종되어야 하고 그래야 제대로 수확된다는 걸. 꿈만으로 보장되는 삶은 없는 것 같다. 일상을 존중하는 꿈, 그 꿈이 결국 성공으로 이어지는 건 아닌지?

이제부터 우리 가족이야기를 슬금슬금 풀어볼까 한다. 모두 세 사람, 삶의 결이 제각각이다. 외아들인 나는 '추'고, 어머니(양영희)는 노래(민요)를 '부'르고, 그걸 멀찌감치 떨어져 안쓰러운 맘으로 바라보는 아버지(강경호)는 장어를 '굽'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우리 셋을 '부추굽 가족'이라 네이밍해 본다. '대덕골에 오면 세상에 가장 멋진 굽을 볼 수 있는데 그 굽 이름이 뭔 줄 아세요? 그건 바로 말굽이 아니고 '부추굽'이라고 너스레를 떨어보기도 한다.

그 너스레 앞에서 동녘처럼 금세 환해지는 부모의 두 눈시울. 저 불그스름한 기운의 정체는 과연 뭔가? 예전 부추굽 가족에겐 공통분모가 없었다. 셋을 이어주는 연골이 없다 보니 항상 뼈끼리 부딪혔다. 멍이 잦은 가족이었지만 이젠 아니다. 각기 다른 방향을 봐도 늘 한 목소리로 귀결된다.

글·사진=이춘호 음식·대중문화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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