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여행] 경남 합천 허굴산과 황계폭포…낙엽이 툭, 툭 쳐도 無心…옥빛의 물은 가을을 담았네

  • 류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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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1-06   |  발행일 2020-11-06 제14면   |  수정 2020-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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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계폭포는 영남을 대표하는 폭포 가운데 하나로 합천 8경 중 제7경이다. 수면 위에 떨어진 낙엽들의 그림자가 물빛을 감추지만 물은 스스로 흘러 그들을 밀쳐내고는 제 빛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인적 없는 산의 주인은 낙엽이었다. 보에 난 수로를 허겁지겁 빠져나가는 물소리도 마른 잎들이 떨어져 길바닥 위에서 뒹구는 소리를 이기지 못했다. 호쾌한 법석이었다. 저마다 다른 속도와 소리로 낙하하는 잎들. 어떤 주저도 없었다. 순리는 때때로 슬프다. 그래서 폭포도 조용히 흘러내렸던 건지 모른다.

◆허굴산, 황계천, 황계마을

경남 합천 시내를 관통해 황강(黃江)을 건넌다. 모래사장이 눈처럼 보인다. 산그늘에 덮여 반짝이지는 않지만 두툼하고 편안해 보였다. 옛날에는 황강이라는 이름이 매우 낯설었다.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보다도, 머나먼 '스와니강'이나 심지어 푸른 '두만강'보다도 더 낯설었다. 처음 황강을 보았을 때 그는 매우 늙어 보였고, 그 때문에 더없이 온화하고 아름다웠다. 지금은 오히려 조금 젊어 보인다. 그래도 편안해 보이니 다행이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우회전해 잠시 물길과 나란히 달린다. 그러다 용주면 소재지에 들면서 황강을 떠난다. 이제 황강의 지류인 황계천(黃溪川)을 거슬러 오른다.

황계천은 합천댐의 남동쪽에 솟아 있는 허굴산에서 시작된다. 허굴산은 합천의 가회면, 대병면, 용주면 등에 걸쳐 있는데 금성산, 악견산과 함께 암릉이 험준하기로 이름나 있다. 산봉우리에는 큰 굴이 자리해 있다. 여름에는 찬바람, 겨울에는 더운 바람이 나온다고 한다. 올려다보면 굴 안에 부처님이 앉아 있고, 올라가 보면 부처님 없는 텅 빈 굴이라 하여 산은 허굴산이다. 산의 남쪽과 북쪽 능선에서 솟아난 물줄기가 모여 이룬 것이 황계천이다. 돌 많은 벌거숭이산에서 내려오는 황톳물이라 하여 황계라 불렀다고 전한다.


돌산의 황톳물이 흘렀었다는 黃溪
지금은 이름이 무색하게 맑디맑아
거슬러 올라가면 마주하는 허굴산
부처님이 보이는듯 하다가 사라져

"눈·귀·입 닫고 사사로운 욕심 말라"
황계폭포 가는 길에 南冥의 가르침
폭포 아래 깊은 沼, 龍 전설 전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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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계마을 입구의 정자나무와 남평문씨 가문의 재실.

길가에 커다란 정자나무가 서 있다. 나무 아래에 '황계마을' 표지석이 조그맣게 서 있다. 마을은 서기 1000년경 안골 계곡에 연안차씨와 김해김씨 두 집안이 처음으로 살면서 형성되었다고 한다. 당시 안골계곡은 구황계곡이라 불렸는데 마을의 형성과 동시에 황계마을이라 했다 한다. 이후 마을은 점점 번성했고 1550년경에는 '하황계'로 이주해 살았는데 마을 앞 정자나무는 그 당시 심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나무의 수령은 400년 이상이다.

정자나무 뒤에는 제법 규모가 있는 재실이 자리한다. 담장 너머로 덕성재(德星齋) 편액이 보인다. 이 재실은 대병면 역평리에 있던 남평문씨 가문의 것으로 합천댐 건설 때 이곳으로 이건했다고 한다. 하황계, 중황계, 상황계 버스정류장을 차례로 지난다. 어쩐지 정류장 간격이 좁게 느껴진다. 그러나 노인과 아이의 걸음으로는 먼 길일 터.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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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계계곡과 자연정. 1810년경 지어진 것으로 이태백의 시에서 따온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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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계폭포 주변의 쉼터와 산책로는 정원처럼 느껴진다.

◆남명이 앞서 간 길

상황계 버스정류장 앞에 황계폭포(黃溪暴布) 이정표가 있다. 폭포까지는 500m, 황계천을 내려다보며 허굴산으로 든다. 천 바닥에 편편한 돌들이 깔려 있다. 수량이 적고 그마저도 낙엽에 뒤덮어 있지만 계류의 맑음은 금세 알 수 있다. 누렇지 않다. 황계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맑다. 잘 닦인 산길은 낙엽들이 점령해 버렸다. 툭, 툭, 두려움 없는 하강이다. 파스스, 파스스, 저항 없이 부서진다. 길바닥에 문장이 새겨진 커다란 판석이 박혀 있다. 이어이어 판석이 나타난다. 이런 내용이 있다. '내 몸 아홉 구멍에 도사린 사악함도 실은 세 군데 요처인 눈, 귀, 입에서 시작된다.' 어이쿠, 이 무슨 무시무시한 가르침이냐.

돌에 새겨진 저 엄한 문장은 합천 출신인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의 것이다. 그는 사람의 마음을 그림으로 그린 '신명사도(神明舍圖)'와 그 마음을 다스리고 수행하는 방법을 적은 '신명사명(神明舍銘)'을 남겼다. 이 길에 박혀 있는 것은 '신명사명'의 문구들이다. 사람 마음의 사악한 욕심은 모두 눈, 귀, 입, 이 세 군데에서부터 나타난다. 그러니 '사사로운 욕심'을 갖지 말라는 뜻이다. 그러면 '세 가지 관문인 눈, 귀, 입을 닫아두니 맑은 들판이 끝없이 펼쳐지는구나'라고 했다. 몸을 둘러싼 결백한 자연과 순수한 청량감을 '끝없는 맑은 들판'이라 할 수 있을까. 이 길을 수백 년 앞서 선생이 먼저 걸었다.

물길이 휘어지자 자연정(紫煙亭) 현판을 단 정자가 나타난다. 1810년쯤 지어진 것이라 하는데 모습은 젊다. 정자 이름은 당나라 시인 이태백의 '망여산폭포(望廬山瀑布)' 제2수 첫 구절인 '향로봉에 햇빛 비쳐 보라색 안개가 솟아오른다(日照香爐生紫煙)'에서 따 온 것이다. 정자 옆에 남명 선생의 시비가 있다.

'달아낸 듯한 줄기 물 은하수처럼 쏟아지니/ 구르던 돌 어느새 만 섬의 옥돌로 변했구나/ 내일 아침 여러분들 논의 그리 각박하지 않으리/ 물과 돌 탐내고 또 사람까지도 탐낸다 해서.' 이곳을 먼저 걸었던 선생은 또 앞서 폭포의 모습을 알려준다. 그러나 폭포 소리는 아직 들리지 않는다.

◆ 황계폭포

옥빛의 소(沼)다. 금성이나 달에서부터 떨어진 별의 조각이다. 멀리 떨어진 하늘에서부터 그들의 길을 계속 가고 있는 천강(天江)이다. 아무런 욕심이 없었기에 꼼짝없이 놀랐다. 수면 위에 내려앉은 낙엽들의 어지러운 그림자가 물빛을 자꾸만 감추지만 물은 흘러 스르르 부드럽게 그들을 밀쳐내고는 제 빛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황계폭포는 2단으로 이뤄져 있다. 상단 폭포는 약 15m 높이를 수직으로 낙하한다. '달아낸 듯한 줄기 물 은하수'가 맞다. 하단 폭포는 약 20m 높이로 울퉁불퉁한 바위 면을 타고 여러 갈래로 미끄러진다. 수량이 많다면 와폭으로 쏟아질 것이다. 폭포를 포함한 오른편은 '섬장암'으로 '반짝이는 장석으로 된 암석'이라 한다. 왼편은 중생대 말 백악기 때 습지나 호수가 발달하면서 형성된 경상계의 원 지층이다. 폭포의 물줄기는 두 암석의 경계를 내내 어루만져 하나 되게 한다.

폭포 아래의 소는 명주실 한 꾸러미가 다 들어가도 닿지 않을 정도로 깊다고 한다. 용이 살았다는 전설도 있다. 옛 선비들은 이곳의 승경을 중국의 여산폭포에 비유하기도 했다. 이태백은 '여산폭포'에서 '느닷없이 번갯불 치는 것 같고, 흰 무리 숨어 있다 일어난 것 같다'고 했다. 이 계절의 폭포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감흥이지만 기대 없던 놀라움은 그에 상응한다. 천강으로 연마된 옥비녀를 갖고 싶구나. 이 빛을 탐낸다 해서 각박하게 구는 이는 없으리니.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 Tip

12번 대구광주 고속도로 광주방향으로 가다 고령IC에서 내려 33번 국도를 타고 합천으로 간다. '대야로'를 따라 합천 시내를 관통해 황강을 건너자마자 우회전해 지방도 1026번 '황계폭포로'로 계속 가면 된다. 이정표가 잘 되어 있다. 황계리 택계교 앞에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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