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미터상' 심사위원장 심사평…"도시의 아름다운 자원, 보전·재생해야 도시 정체성 구현"

  • 백승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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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1-24 08:19  |  수정 2020-11-24 08:23  |  발행일 2020-11-24 제15면
작은 종교시설 '애은성당' 재생 롤모델
신부·신자·예술가 자발적 참여 돋보여
이상화 생가 터의 한옥 '라일락뜨락'
역사성 살려 공공문화공간으로 재생
'2garden' 70년 된 공장·창고 개조
지역주민 복합문화공간으로 재창조

대구시는 최근 10여 년간 훌륭한 근대역사유적과 골목문화를 적극적으로 재생해 다른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관광명소로 조성했다. 특히 특색 있는 공간들을 창출해 도시이미지를 현격하게 높였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서 아파트 재건축이 주류가 되는 전근대적 개발 중심의 사고방식으로 되돌아가 도시의 소중한 유산과 공간분위기를 심각하게 파괴하고 있는 점은 아쉽게 생각한다.

이러한 가운데 <사>여성과도시에서는 역사성을 간직한 아름다운 도시, 시민 모두에게 사랑받는 공공을 위한 도시를 조성하는 것이 미래 대구의 비전이 돼야 한다는 강한 믿음으로 이에 부합하는 좋은 선례를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기존 건축물 및 공간을 의미 있고 아름답게 재생(리모델링)한 우수한 작품을 선정해 시상하는 '미터상'을 제정해 영남일보와 함께 시행하기로 했다.

숲속전원마을, 라일락뜨락1956, 애은성당, 작가레지던시, 대명마을문화창작소, 공감공작소, 빌리웍스, 박물관이야기, 2garden 등 다양한 작품이 대구의 전 지역에서 고르게 접수됐다. 제출된 설명서와 사진으로 사전 심사를 거친 후 건축주와 관계자를 만나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현장방문 심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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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작 라일락뜨락1956의 재생 전후 모습. 라일락뜨락은 1956년 건축된 건물로, 시인 이상화의 생가터이면서 그의 형인 독립운동가 이상정 장군이 살았던 집이다. 역사적 의미를 살려 공공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킨 점이 돋보인다.

먼저 최우수상을 수상한 대구 중구 소재 라일락뜨락은 1956년에 건축된 시인 이상화의 생가터이면서 그의 형인 독립운동가 이상정 장군이 살았던 집으로 대지 168.6㎡, 건축면적 66.11㎡의 작은 근대한옥이다. 주변의 3필지가 모두 이상화 시인의 부모 형제들의 거주지였다는 역사적 의미를 알게 된 건물주는 부단한 개인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대구 근대역사 자원으로 인정받고 4년 동안이나 방치된 이 공간을 2018년 원래 한옥의 이미지를 최대한 살려 커피숍으로 리모델링했다. 200년 된 라일락을 중심에 두고 주변 마당에 전시·공연 등을 위한 문화공간을 새로 건축해 한옥과 조경수 그리고 현재가 어우러지는 독특한 분위기의 이상화 스토리텔링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또 지역의 예술인과 대중의 만남을 쉽게 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이 지역에 또 다른 공공문화공간으로 의미 있는 재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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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작 2garden의 재생 전후 모습. 1953년 지은 약품공장과 창고를 이마트24가 친환경적으로 재생한 건축물이다. 대기업이 지역주민과 함께 공생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또 하나의 최우수상을 수상한 대구 북구 소재 '2garden(to garden)'은 이마트24의 새로운 사업 개념인 재생을 통한 복합문화공간 조성에 맞게 꾸며졌다. 1953년에 건축된 약품공장과 창고를 친환경적 접근으로 재생했다. 단순한 상업시설이 아닌 베이커리카페, 스테이크하우스, 패션숍, 플라워 숍, 레고 숍, 편의점, 와인 숍에 더해 도심 속의 정원, 책으로 가득한 사색의 공간인 북 터널 등 다양한 콘텐츠로 고객이 자유롭게 휴식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한 600평 규모의 복합문화공간이다. 기존 건물의 외형과 내부를 최대한 보전하면서 내부 목구조의 트러스와 천장을 그대로 살리고 기능에 맞게 실내디자인을 차별화한 점이 돋보인다. 외부 공간에는 생화를 심어 마치 도심의 사막에 조성된 정원처럼 보이게 했다. 정원으로 향하다(to garden)는 의미와 과거·현재의 문화가 공존하는 공간(two culture)이라는 개념에 맞춰 기존의 창고 건물을 잘 재생해 도시적 콘텐츠와 조화되게 재창조한 사례다. 대기업이 시행한 상업공간이지만 우수한 디자인과 콘텐츠의 다양함 그리고 지역주민과 함께 다양한 문화행사를 진행하고 각 시설의 운영을 지역민에 위탁해 상호 공생하는 경영방식도 인상적이다.

대상을 수상한 애은성당은 대구 서구 평리동의 작은 주택이 많은 동네, 언덕 경사지에 위치해 있으며 대지면적 893㎡로 1971년에 건축된 작은 종교시설이다. 2019년에 부임한 신부와 신자들이 성당과 주택을 개조한 부대시설에 대해 리모델링을 시작했는데, 후에 소문을 들은 뜻있는 지역의 예술가들이 동참해 현재까지 계속 공간을 재생하는 작업이 진행 중인 미완성의 공간이다.

이 성당은 휴먼스케일로 아담하게 꾸며진 쉼터와 작은 정원 그리고 주차장으로 조성돼 있다. 서측 도로에 접해 있는 유일한 외부공간을 에워싸듯 배치된 건물들을 살펴보면 예쁜 결혼식장 같은 작은 성당과 그 옆에 붙어 있는 청년순례자의집이 부지의 제일 높은 곳인 동편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북측 도로에 면해 있는 2개의 작은 건물은 사제관과 문화관이다. 이곳 1층에는 가난한 주민들의 자율 문화공간인 카페와 식당이 있고 2층에는 낮은 천장의 어린이를 위한 책방 겸 놀이방이 있는데 내부계단이 설치된 수직으로 트인 공간이어서 1층의 주민문화공간과 소통된다. 또 외부에서 바로 진입하는 별도의 외부계단이 있어 아이들이 공간을 마음대로 이용할 때도 부모와 소통 가능한 안전하고 재미있는 공간이다. 이곳에 있는 건물 전체 면적은 350㎡에 불과하다.

애은성당의 디자인은 누구에게나 인간미가 느껴지며 포근하고 따스하다. 작업방식 또한 전문적이라기보다 정성이 가득한 마음이 엿보이는 과정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공동체 정신이 보인다. 그래서 이곳은 누구든지 환영하는 공공을 위한 장소라는 분위기가 물씬 전해온다. 또한 모든 공간과 시설의 이름은 상록이다. 상록카페, 상록책방, 상록정원, 상록쉼터, 주차장도 상록이다. 심사위원 전원이 공감한 재생의 롤 모델이라는 생각이다.

도시는 시민 모두의 공유공간이다. 심지어 개인을 위한 건물조차도 형태와 색채를 외부로 드러내면서 의지와 상관없이 여러 측면에서 공공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도시의 아름다운 자원은 계속 보전돼야 하고 시대변화에 맞춰 변모할 때에도 공간과 장소는 진정한 재생을 통해서만 미래를 위한 지속 가능성 및 도시 정체성이 구현되는 것이다.

이정호〈심사위원장·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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