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보는 대구문화 아카이브 .3] 서병오…대구 출신 '해동제일' 서화가, 中·日 예술가도 칭송

  • 김봉규,이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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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2-01 08:02  |  수정 2021-04-22 16:18  |  발행일 2021-02-01 제20면
어릴 적부터 시·서·화 재능 뛰어나 흥선대원군이 각별히 아껴…사군자 호방한 화풍 개척한 '희대의 천재'
우리나라 문인화 발전·지역 예술계 후진 양성 등 다양한 업적 불구 그를 기리는 기념관 하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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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재 서병오 작 '노근란'. 1910년 작품으로 항일의 의미를 담은 작품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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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재 서병오 작 '냉로무성'. 1910년대 작품.
대구가 낳은 대표적 예술가 중 서화가로는 석재(石齋) 서병오(1862~1936)가 단연 우뚝하다. 당대에 그와 필적할 상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시(詩)·서(書)·화(畵)에 뛰어난 삼절(三絶)의 인물이었다. 그는 당시 대구·경북은 물론 전국적으로도 걸출한 문인이자 예술가이며, 중국과 일본의 최고 지식인·예술가들도 탄복하게 한 서화가였다. 그들은 이런 서병오를 '화국지재(華國之才)' '해동제일(海東第一)'이라며 칭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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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6월 대구 달성공원에 세워진 '석재서병오선생예술비'. '석재(石齋)'의 '석(石)'자를 형상화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팔능거사(八能居士)로 불린 걸출한 예술가

서병오는 타고난 재능이 뛰어난 데다 만석꾼 집안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그 덕분에 부족함이 없는 환경 아래서 어릴 적부터 학문과 예술을 두루 섭렵, 일찍부터 두각을 드러냈다.

10대 후반의 서병오를 처음 본 흥선대원군 이하응(1820~1898)은 그 재능에 경탄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호인 '석파(石坡)'에서 '석' 자를 떼어 '석재(石齋)'라는 호를 지어주고 침실까지 같이 사용할 정도로 아꼈다. 서병오가 설립한 교남시서화연구회(嶠南詩書畵硏究會)에 왕래하던 문인 중 한 사람인 춘원 이광수는 그를 '희대의 천재'라며 찬탄했다.

서병오는 시·서·화는 물론이고 거문고(琴), 바둑(棋), 장기(博), 의술(醫), 구변(辯)에도 뛰어나 '팔능거사(八能居士)'라 불렸다. 이 모든 분야에서 출중한 재능을 보였다.

서화가 구룡산인 김용진(1878~1968)은 "역대 사군자를 논하는 데 있어 석재의 사군자는 추사나 석파에 비할 바가 아니다"고 평가했다. 사군자화 중 대나무 그림은 그 이전의 묵죽과는 확연히 다른, 거침없고 호방한 자신만의 경지를 개척해 일가를 이루었으며 '석재죽(石齋竹)'이라 불리었다. 그가 우리나라 문인화 발전에 끼친 공로는 조선 전기의 탄은(灘隱) 이정(1554~1626), 후기의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에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도 있다.

의술에 대한 조예 또한 깊어 중국에서까지 '조선의 명의'라는 소리를 들었다.

서병오는 이처럼 다방면에서 워낙 뛰어나 살아서 이미 전설 같은 인물이 되었다. 이런 그는 당대 중국과 일본의 최고 지식인들도 놀라게 하고, 그들은 다투어 서병오와 사귀려고 했다. 서병오는 1898년과 1908년 두 차례 중국으로 건너가 수년 동안 상하이, 쑤저우, 난징 등 곳곳을 주유하며 제백석(齊白石), 오창석(吳昌碩), 포화(蒲華), 손문(孫文) 등 유명 서화가와 정치인 등을 만나 교유하게 된다.

중국에서도 서병오의 재능은 낭중지추(囊中之錐)처럼 저절로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흥취가 오른 서병오가 즉흥 자작시를 지어 화제로 쓰곤 할 때마다 탄복하며 '한국의 두보요 이백'이라 평가했다. 중국 대가들의 서화를 바로 자신의 색깔로 소화해 내는 것을 보고는 '여시필적(汝是筆賊)'이라며 부러워했다. 중국 주유는 그의 서화 수준과 차원을 한 단계 더 높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는 일본에도 3차례 건너가 일본의 석학·예술인들과 문묵(文墨) 교류를 통해 그들을 감탄시킴으로써 '세기의 위재(偉才)'라는 격찬을 받았다.

◆흥선대원군의 각별한 사랑

서병오는 1862년 6월 대구 동성로에서 대부호인 서상민(1833~1918)의 4남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고, 나중에 숙부 서상혜(1837~1909)의 양자로 들어갔다. 숙부 역시 만석꾼 부자였다.

어린 시절 '서동(徐童)'으로 불리던 그는 남달리 총명했다. 그의 제자 신대식(1918~1985)은 '어려서부터 비범·총명하였고, 취학하니 초륜(超倫)하여 일문(一聞)하면 해오(解悟)요, 일견(一見)이면 강기(强記)하여 제예(諸藝)에 있어서 능통하지 않음이 없으니 절세(絶世)의 천재라 하였다. 10세 미만에 사서삼경에 통달했을 뿐 아니라 시·서·화·기(詩·書·畵·棋)에도 초인적 재조(才操)를 여지없이 발휘해 세인을 놀라게 했다'고 표현했다.

1874년에는 당대의 대표적 서예가인 팔하(八下) 서석지(1826~1906)에게 중국과 우리나라 명가의 글씨를 배우게 된다. 서석지에게 서예를 배우던 무렵 그는 영남의 거유(巨儒)이자 문장가인 방산 허훈(1836~1907)과 면우 곽종석(1846~1919)의 문하에 출입하며 학문과 문장도 연마했다.

남달리 뛰어난 자질을 타고난 석재는 부친의 각별한 교육열 속에서 여러 석학과 예술 대가들의 가르침을 열심히 받아들이면서 그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그런 그의 실력과 재능은 일찍부터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10대 후반에는 서울까지 그 소문이 났다. 당시 풍류와 권세로 이름이 높았던, 서울 운현궁의 흥선대원군 귀에도 그런 소식이 들렸던 모양이다. 1879년 대원군은 그를 운현궁으로 불러들였고, 그에게 '鴨東初有之才(압동초유지재: 압록강 동쪽에서는 처음 난 인재)'라는 글씨를 비단에 써 주고, 중국 명필의 진품을 선물하는 등 각별하게 아꼈다.

◆'대구삼절(大邱三絶)'로 유명

서병오는 1922년 후진 양성을 목적으로 교남시서화연구회(嶠南詩書畵硏究會)를 창설한다. 1922년 1월22일 첫 총회를 열어 발족한 교남시서화연구회는 1922년 5월 제1회 전람회를 열었다.

교남시서화연구회는 대구 문화를 활성화한 주요 거점이었다. 후진 양성뿐만이 아니었다. 전통 시서화 교양을 지녔거나 애호하는, 대구를 비롯한 전국의 문화계 인사들이 교류하는 장이 되었다. 전람회와 휘호회, 한시 공모전 등을 통해 지역 간 시서화 교류가 이뤄지는 구심점 역할을 했다.

이런 교남시서화연구회는 전국 명사들이 모이는 명소로 발전했고, 이곳을 중심으로 당시 '대구삼절'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달성토성(달성공원)과 석재 서병오, 명기 염농산이 대구삼절이다. 대구를 찾는 사람들은 이 삼절을 접하기를 원했는데, 교남시서화연구회를 찾아가야 그 소원을 이룰 수 있었다.

서병오는 1906년 대구 자강단체인 광문사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1907년 금연상채회(禁烟償債會) 평의원이 되어 국채보상운동 발기인 17인으로 참여하는 등 사회활동도 적극적으로 했다. 1930년에는 이육사가 그의 제자로 입문했다. 1932년에는 대구 유림 강회소인 문우관(文友觀) 관장을 맡기도 했고, 1933년 7월에는 대구 유지들과 함께 서양화가 이인성을 위한 전시회 '천재 소년화가 이인성군 개인전'을 열어주었다.

말년에는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불우하게 보낸 서병오는 1936년에 별세한다. 1936년 3월30일 자 동아일보 보도다. '대구의 한시서화 거벽인 석재 서병오옹은 향년 74세를 일기로 28일 정오에 동성정(東城町) 자택에서 별세하였다. 씨는 작년 말부터 노환으로 자택에서 요양 중이던 바 이번에 그와 같이 별세한 것이라 한다.'

서병오는 '내가 죽거든 관 위 명정에는 진사나 신령군수 등 관직은 쓰지 말고, 석재서병오지구(石齋徐丙五之柩)라고만 쓰라'는 유언을 남겼다 한다.

서병오는 이처럼 한 시대를 풍미한 세계적 서화가였지만, 대구에 지금까지 그의 기념관 하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를 아는 대구 서화가들은 물론이고 전국 다른 지역 예술인들도 이런 현실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있다.

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공동기획  대구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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