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 피플] '판소리 명가 1호' 정순임 국가무형문화재 5호 판소리 보유자

  • 김수영,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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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2-03 08:04  |  수정 2021-06-27 14:22  |  발행일 2021-02-03 제22면
"판소리로 자신 감정 다 표현…부르고 나면 속 시원하다는 이 많아"

정순임
지난해 6월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보유자가 된 정순임 명창은 "국악 활성화를 위해서는 우리 고유의 음악극인 창극 무대가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민간창극단 설립, 창극 지원 프로그램 활성화 등도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지난해 6월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보유자로 지정된 정순임(79) 명창. 인터뷰에서 그의 첫 일성은 "어머니는 천재였다. 그에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였다. 


그의 어머니는 국악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경주에 터를 잡고 국악의 뿌리를 내린 장순애다. 장월중선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어머니는 소리면 소리, 기악이면 기악, 못하는 게 없었다. 충분히 국가무형문화재로 인정받을 만했는데 지방무형문화재(가야금병창)로 그쳐야 했다. 큰 재주가 없는 내가 국가문화재가 돼 어머니께 미안하면서 어머니의 한을 풀어준 것 같아 마음이 조금 가볍기도 하다." 

어릴 때 어깨 너머로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한 정 명창은 대표적인 국악 명가 후손이다. 어머니만이 아니라 윗대에 임금 앞에서 소리를 한 어전명창 2명이나 있었다. 2007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판소리 명가 1호'로 지정됐다.

소리꾼 한명이 다수 인물 표현
빠져들면 헤어나오기 힘들어

70대 후반에 국가문화재 인정
완창 거뜬한 체력도 한몫한 듯

전통창극 지역민에 그림의 떡
정부·지자체 공연 지원책 절실


▶4대에 걸쳐 명창이 나온 국악 명가로 유명하다.

"외가 쪽이 명창 집안이다. 초대 장석중 증조부는 철종의 어전명창, 2대 장판개 큰할아버지는 고종황제의 어전명창이었다. 3대 어머니 장순애에 이어 나와 동생들이 대를 잇고 있다. 남동생 정경호는 아쟁산조, 여동생 정경옥은 가야금병창을 한다. 모두 경주에 살면서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 고향은 전라도이지만 젊었을 때 어머니와 함께 경주에 와서 수십 년간 활동하다 보니 경주가 고향 같다. 경주에 오기 전 대구에서 몇 년간 활동해 대구에 대한 정도 깊다. 지난해 국가문화재가 된 후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개인공연을 했다.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대구시민, 공연장 관계자에게 감사하다."

▶2015년 옥관문화훈장도 받았다.

"옥관문화훈장은 문화예술 발전에 큰 공적이 있는 사람에게 수여하는 훈장이다. 이 상은 내게 준 것이 아니라 판소리 불모지였던 대구경북지역에서 국악을 진흥시킨 어머니에게 내린 상이라 생각한다. 어머니가 없었다면 판소리를 배우지 못하고 경주로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어떻게 경주에 정착하게 됐나.

"어머니는 전라도가 고향이었지만 6·25전쟁이 끝난 직후 창극 붐이 일면서 전국에서 활동했다. 판소리, 가야금병창, 거문고산조, 아쟁산조 등 소리와 기악만이 아니라 살풀이 등 전통무용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연기도 뛰어났다. 여기저기 부르는 곳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서양음악이 급속히 확산하면서 창극이 서서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즈음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살길이 막막했던 어머니에게 전쟁 때 대구에 피란 와서 재즈음악 활동을 하던 외삼촌이 구원의 손길을 보냈다. 어머니의 재주가 뛰어나니 대구에 오면 뭐라도 해서 먹고살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대구로 이사했다. 그때 대구의 원로무용가 권명화 선생이 많은 도움을 줬다. 경주에는 1960년대 중반 시립국악원이 생기면서 실기강사로 왔다. 1998년 작고할 때까지 경주에 살면서 국악 전승 및 보급에 매진했다."

정순임명창
페이스 실드를 착용하고 제자를 가르치고 있는 정순임 명창. 이지용기자


▶70대 후반에 국가문화재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나이로 보면 늦게 받은 듯한데.

"일반적으로 60대 이상이 많고 70대 후반은 거의 없다. 2007년 경북도문화재 보유자로 인정된 후 국가문화재로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판소리 부문에서 지방문화재가 국가문화재로 승격된 것은 처음이다. 흥보가를 완창하는데 3시간30분쯤 걸린다. 70대 후반이지만 흥보가 완창을 거뜬히 해낼 정도로 체력이 좋은 것도 한몫한 것 같다.(웃음) 스승도 구순을 앞둘 때까지 제자들과 무대에 올랐다. 스승처럼 후학들과 공연해 판소리를 널리 알리고 싶다."

정 명창은 흥보가로 보유자가 됐지만 심청가·수궁가 등도 여러 무대에서 완창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정 명창의 심청가는 누구나 엄지 척 할 정도로 정평이 나 있다. 이는 타고난 재능에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에게 다져진 탄탄한 실력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이만이 아니다. 1989년부터 국립창극단 단원으로 10년간 활동해 연기력과 무대 장악력에서도 돋보인다.

▶국립창극단에서 활동한 경험이 흥보가와 인연을 맺게 한 실마리가 됐다고 했는데.

"흥보가 국가문화재 보유자였던 고(故) 박록주 선생의 뒤를 이은 박송희(2017년 작고) 선생으로부터 흥보가를 이수했다. 박 선생은 국립극장에서 같이 활동한 직장 선배이기도 했다. 어머니와 함께 현재의 정순임을 있게 한 고마운 분이다."

▶흥보가의 매력은 무엇인가.

"흥보가는 흥부와 놀부라는 전혀 다른 캐릭터가 극을 이끌어가는 게 매력이다. 특히 불뚝 성질 있는 놀부의 성격이 판소리의 재미를 높인다. 판소리는 소리꾼 한 명이 수많은 사람의 성격을 파악해 이에 맞는 소리를 내야 한다. 이것이 감상자에게 재미를 주고, 소리꾼도 그 속에 빠져들면 헤어나오기 힘들다."

▶판소리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

"판소리만이 아니라 국악 전체의 문제다. 판소리를 처음 배울 때는 힘들다. 포기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다. 힘든 고비만 넘기면 몇십 년간 꾸준히 배우는 이들이 많다. 삶의 희로애락을 담은 노래를 통해 내 속의 감정을 다 표현할 수 있다. 소리를 하고 나면 속이 시원하다는 이들이 많다. 나이가 들수록 멋진 소리가 난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정통국악을 듣기가 힘들어졌다.

"최근 TV를 보면 가요, 서양음악만 들리고 국악은 찾기 힘들다. 가끔 퓨전국악이 나오는 데 좋기도 하고 우려스럽기도 하다. 퓨전국악은 국악 저변을 넓히는 장점이 있지만, 국악을 왜곡시키는 예도 있다. 퓨전국악도 필요하지만, 정통국악이 함께 활성화돼야 한다. 국악인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좀 더 많아지면 좋겠다."

▶코로나19 때문에 문화예술 전체가 많이 위축됐다. 국악인들도 힘들 텐데.

"코로나19 사태가 덮치면서 공연이 거의 사라졌다. 연습하는 과정도 힘들지만 예정됐던 무대들이 갑자기 취소되는 경우가 많아 허탈하다. 특히 젊은 국악인들의 무대가 많이 없어져 안타깝다."

▶그동안 경주 등에서 창극을 자주 선보인 것으로 안다.

"전통창극인 수궁가·흥보가·춘향가, 창작창극인 이차돈·선화공주 등을 공연했다. 하지만 2010년대 중반부터 정부나 지자체 지원이 끊겨 공연하지 못하고 있다. 창극은 출연진, 무대 등에 많은 재원이 투입된다. 개인이 계속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국악 활성화 방안이 있다면.

"국악이 점점 소수가 즐기는 음악, 어르신만 듣는 음악이 되고 있다. 국악 활성화를 위해서는 젊은 층의 유입이 필요하다. 우리 고유의 음악극인 창극을 활성화해야 한다. 서양에서 들어온 오페라·뮤지컬은 인기가 높은데 창극은 아예 공연무대조차 없다. 국립창극단이 있어 그나마 연명하지만, 서울 중심으로 활동하다 보니 지역 사람들은 그림의 떡이다. 민간창극단 설립이 절실하다. 창극 지원 프로그램도 많아져야 한다."

논설위원 sy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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