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뉴스] 서낭당일까, 조선시대 대구 여제단일까? 대구 북구 침산동 침산 서낭당

  • 송은석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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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3-16   |  발행일 2021-03-17 제12면   |  수정 2021-05-1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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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북구 오봉산(침산) 서낭당에서 한 무속인이 기도를 하고 있다.

대구 북구 침산동 오봉산(침산)에 아주 특별한 공간이 있다. 무속인이 찾는 기도처다. 침산 서낭당이라 불리는 이 기도처는 오봉산 남쪽 오봉오거리 인공폭포 서쪽 약 30m 지점에 있다. 서낭당 바로 위쪽에 야외골프연습장이 있고, 아래로는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아파트단지, 주택가, 상가, 경찰서, 세무서, 북구청 등 관공서가 자리하고 있다. 한마디로 대구 북구 도심 한가운데 서낭당 있는 셈이다.

침산 서낭당은 절을 하는 자리인 하단, 제물을 올리는 중단, 서낭신을 모시는 상단으로 되어 있다. 상단에는 서낭신이 깃든 돌탑 2기와 입석 1기가 있고, 바로 뒤쪽에 할매나무라 불리는 당산나무 두 그루가 있다. 역사가 오래된 이 서낭당은 할매당, 당산, 산신당 등으로도 불린다. 과거에는 주로 침산동 주민, 근래에는 무속인이 찾고 있다.

그런데 침산 서낭당이라 불리는 이곳이 어쩌면 조선시대 대구 여제단(여祭壇) 흔적일 수도 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의 명으로 전국 모든 고을에 '3단1묘'를 설치했다. 3단은 토지신과 곡식신 제단인 사직단, 성황신 제단인 성황단, 무사귀신(無祀鬼神) 제단인 여제단이며, 1묘는 향교에 있는 공자 사당 문묘(대성전)다. 유교 국가였던 조선이 이처럼 전국 고을마다 3단을 설치하고 고을 수령이 직접 제사를 지낸 것은 이유가 있었다. 민간에서 행해오던 불교·도교·민간신앙 등의 제사를 유교식으로 정리함과 동시에 고을수령이 직접 제사를 주관함으로써 백성의 삶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함이었다.

이중 여제는 성격이 매우 특별한 제사였다. 자연재해, 역질, 형벌, 강도, 맹수, 굶주림, 자살, 난산 등으로 죽거나 자식이 없는 귀신 등, 제사를 받지 못하는 15종류 귀신을 위로하는 제사로 한양에서는 한성부 당상관이, 지방에서는 고을 수령이 제사를 주관했다.

대구읍지에는 여제단에 대해 "부에서 북쪽 8리 침산에 있다. 신실과 전사청이 있으며, 인근 승려로 하여금 지키게 했다"고 되어 있으며, 고지도에는 지금 서낭당이 자리한 위치인 침산 남쪽 끝자락에 여제단이 표시되어 있다.

현재 전국적으로 여제단이 남아 있는 곳은 거의 없다. 만약 침산 서낭당이 대구 여제단 흔적으로 확인된다면 이미 사라진 것으로만 알았던 희귀한 전통문화유산 하나를 되찾는 것이다.
글·사진=송은석 시민기자 316917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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