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논설위원 |
1945년 8·15 광복 즈음 우리나라 자작농은 전 농지의 37%인 85만㏊였다. 나머지 63% 147만㏊는 소작농이거나 소·자작 혼합형. 농가 호수로 따지면 순자작농은 13.6%에 불과했다. 지주계급의 소작농 착취 구조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자작농 비중이 크게 늘어난 지금은 어떨까. 극소수 지주가 국토의 절대 면적을 과점(寡占)하는 구도다. 지난 10년 동안에만 상위 1% 법인·대기업의 보유 토지가 두 배 넘게 늘었다니…. 공공이든 민간개발이든 부동산 개발은 지주들의 불로소득을 극대화한다. 주택은? 2019년 말 부동산 상위 1%의 1인당 보유주택은 무려 9채. 불로소득의 화수분이자 집값 급등의 진앙이다. 시대가 바뀌어도 과점자의 착취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나라가 온통 LH 블랙홀에서 허우적거린다. 한데 부동산 적폐가 LH와 공공개발, 공직자에게만 국한된 사안일까. LH발(發) 부동산 투기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부동산 불패, 불로소득 적폐를 타파하기 위해선 부동산 개혁이란 큰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단순 무식하게 말하면 양도차익을 100% 환수하면 투기는 없어진다. 이런 극단적 명제 아래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근간을 흔들지 않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 헌법 122조에 토지공개념이 명시돼있다.
불로소득, 왜 원천 차단해야 할까. 사회와 경제를 골병들게 하는 악성 바이러스이기 때문이다. 노동의 가치를 훼손하고 자산 불균형을 심화시키며 자금 흐름을 왜곡한다. 불공정을 조장하며 교육 불평등과 지역 격차를 키우는 병폐이기도 하다. 부동산 망조가 들면 성장잠재력은 물론 출산율까지 떨어진다.
LH 사태에 한껏 고무된 국민의힘도 불로소득 적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명박 정부는 종부세를 무력화했고, 박근혜 정부는 2014년 부동산 규제를 대폭 완화해 투기 망령을 깨웠다. 종부세 폭탄이라고? 종부세 세수는 2007년 2조8천억원이었으나 2017년 1조8천억원까지 내려앉았다. 집값이 급등하고 정부가 종부세 세율과 공시가격을 인상하고서야 지난해 4조2천억원으로 늘어났다. 13년 동안 아파트값이 몇 배 올랐는지 생각해보라.
부동산 개혁,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노태우 정부 때 제정된 토지공개념 3법의 부활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택지소유상한제 △토지초과이득세 △개발이익환수제가 그것이다. 토지공개념 3법이 제대로 정착됐더라면? 그래도 온 나라가 투기판에 빠졌을까. 토지초과이득세는 1994년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았고 택지소유상한제는 1999년 위헌 판결이 났다. 위헌이라지만 기실은 기득권의 저항 또는 훼방이었다. 개발이익환수제 또한 시행과 중단을 번복하며 무실해졌다. 기본소득과 연계된 보유세 도입도 검토할 만하다. 모든 부동산에 보유세를 부과하되 세수 순증분을 전 국민에게 n분의 1로 분배하자는 것이다.
19세기 미국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는 지주의 불로소득을 심각한 불의(不義)라고 비판하며 '단일 토지세' 도입을 제안했다. 그의 주장엔 천부(天賦)토지 개념이 깔려 있다. 헨리 조지는 불로소득과 투기를 차단하고 경제활동을 촉진하는 방책이 단일 토지세라고 판단했다. 참고로 헨리 조지는 시장경제 옹호론자다.
1946년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토지개혁은 무상몰수·무상분배였다. 하지만 1949년 단행한 우리의 농지개혁은 유상몰수·유상분배 원칙에 입각했다. 북의 토지개혁보다 강도는 낮았으나 농지개혁 후 자작농 비율이 96%까지 높아졌다. 농지개혁도 해냈는데 부동산 개혁인들 못 할 이유가 있으랴. 어쩌면 헨리 조지에 부동산 개혁의 답이 있을지 모른다.
논설위원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