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뉴스-시민기자 세상보기] 작고 낡은, 그래서 더 애처로운 삼성역

  • 천윤자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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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3-31   |  발행일 2021-04-07 제12면   |  수정 2021-05-11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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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기능을 상실한 경북 경산 경부선 삼성역 전경. 이용객 발길이 끊긴 간이역 주변으로 벚꽃이 활짝 피어 있다.
주변이 온통 벚꽃으로 환하다. 마을과 떨어져 강 건너 언덕 위에 자식들의 발길 기다리는 구순 노모처럼 애처롭게 서 있는 간이역. 그리운 이의 발길이 끊어진 지는 이미 오래다. 경북 경산에서 청도로 가는 국도를 따라가다 남천면 삼성리 안내판이 보이는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난 길로 접어들면 멀리 벚꽃 사이로 '삼성역' 작은 간판이 보인다.

경부선 철도역으로 1921년 9월 신호소 문을 열고, 1926년부터 여객 업무를 시작한 삼성역은 이용객이 줄어 더는 손님을 맞지 않고 하루 두 번 머물던 열차마저 무정차 통과하면서 역의 기능을 상실했다. 80년대까지는 그런대로 이용객이 있었다고 한다. 도로 확장과 승용차의 보편화, 경산 시내와 연결된 버스의 운행으로 삼성역 이용객의 발길이 줄었고, 비둘기호와 통일호 열차가 사라지며 이 역을 찾는 발길도 끊어졌다. 80년 긴 세월 남천면 사람을 서울, 부산, 대구 등 대도시와 연결하던 삼성역은 2004년 7월15일 마지막 열차가 떠난 후 사람들의 이목에서 멀어져 지금은 신호장역으로 운영된다.

역 바로 앞에는 강이 흐른다. 경산을 가로지르는 남천강 상류로 지금 하천 정비사업이 한창이다. 오랜 세월을 버티어 온 좁고 낡은 콘크리트 다리를 조심스럽게 건너 계단으로 올라가니, 마치 학생들이 없어 문을 닫은 시골 학교 현관문 앞에 서 있는 듯하다. 100년 세월을 품은 여러 그루 벚나무가 이제 막 팝콘처럼 망울을 틔우고 있다. 역사 주변을 기웃거리다가 대합실 닫힌 문을 살며시 밀어보니 열린다. 기차가 서지 않는 역의 작고 고즈넉한 대합실을 지키고 있는 것은 열차 시간표와 여객운임표가 적힌 안내판, 승객들이 기다리며 앉았던 오래된 나무 의자, 몇 개의 사물함과 벽에 걸린 빛바랜 액자뿐이다. 역사 내에는 박해수 시인의 시 '삼성역' 시비가 건립돼 있다.

인기척을 느끼고 사무실에서 나온 역무원은 "여객 업무는 중지됐지만, 역무원이 상주하는 배치 간이역으로 유지되고 있다. 경산역 이전부터 남성현역까지 계속 오르막이 이어지는데, 속도가 느린 화물열차가 후속 여객열차를 먼저 보내는 신호장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곧 경산역에서 신호기를 조종하게 되고 역무원도 떠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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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선 삼성역 역사 밖에는 이곳이 이동하 작가의 장편소설 '우울한 귀향'의 무대였음을 알리는 비석이 서 있다.
역사 밖에는 향토 출신 작가 이동하의 장편소설 '우울한 귀향'의 무대라는 비석이 서 있다. 지난해 12월 경산문인협회에서 건립한 것이다. 두 그루 벚나무 사이에 서 있는 비석에는 작가가 서울에서 고향을 찾아 삼성역에 내릴 때의 모습을 묘사한 소설 첫 부분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삼성역은 한 시대의 우울과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내면을 밀도 있게 파헤친 소설 '우울한 귀향'의 주요 서사 공간이다. 작가는 남천면 대명리에서 유소년 시절을 보내며 남천초등학교에 다녔다는 설명도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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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윤자 영남일보 시민기자

열차는 멈추지 않고, 승객이 사라진 역에도 벚꽃과 개나리는 여전히 피고 진다. 고속열차가 무섭게 질주한다. 비둘기호가 머물던 정거장을 KTX 열차가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지나쳐 버린다. 세상은 이렇듯 빠른 것만을 요구한다. 머물 수 없는 시간, 돌아오지 않는 지난날의 추억들, 느린 것은 세상 밖으로 내몰려 도태된다. 그래서 힘겹게 서 있는 작은 역이 더 애련한 향수를 불러온다.


글·사진= 천윤자시민기자 kscyj8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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