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뉴스-시민기자 세상보기] 벚꽃 핀 경북 성주 수륜 양정 시냇가의 추억

  • 김점순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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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4-26   |  발행일 2021-04-28 제12면   |  수정 2021-04-29 11:25
김점순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지난 봄날. 초등학교 졸업한 지 52년. 특별한 봄 소풍을 다녀왔다. 시간여행을 떠나온 듯 정겨운 향수에 젖어 추억이라는 낯익은 초대장을 받은 날이다.

1960년대 벚꽃은 경남 진해에 가면 볼 수 있는 꽃으로 여길 만큼 흔하지 않았다. 경북 성주 수륜에는 2㎞ 정도의 신작로 양쪽 가로수가 벚꽃이었다. 차량이 흔하지 않던 시절 꽃이 만개하면 신작로엔 꽃구경을 위한 관광객의 행렬이 이어지곤 했다. 인근 지역 학교들의 봄 소풍 장소도 당연히 벚꽃이 있는 양정 시냇가다.

꽃이 필 때면 양정은 관광객과 소풍 온 학생들로 인산인해가 된다. 시냇가에는 소풍에서 빠질 수 없는 수건돌리기, 보물찾기, 장기자랑으로 여기저기서 학생들의 "하하 호호 까르르" 웃고 떠드는 소리로 시끌벅적했다. 가끔은 부정하고 싶기도 하지만 이렇게 세월은 흘러갔고 남의 이야기 같았던 환갑도 진갑도 다 지난 60대 중반의 나이가 되었다.

SNS에서 친구들의 추억소환 공장으로 불릴 만큼 구수한 이야기로 울고 웃게 만들어주던 P가 최근 루게릭으로 투병 생활을 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말을 하지도 못하고 음식은 죽으로 겨우 삼킨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사고로 투병 생활은 잘하고 있으나 친구들이 보고 싶다는 소식이 이따금 들린다.

소식을 접한 친구들이 초등학교 시절 봄 소풍 단골 장소였던 양정 시냇가로 봄 소풍을 나섰다. 기억의 한 편엔 때 묻지 않은 동심을 간직하고 잠시나마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하루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소풍 장소였던 시냇가는 파크골프장으로 바뀌었다. 운동 나온 사람들의 작은 휴식공간으로 사용되는 원탁 테이블 몇 개와 긴 의자들이 듬성듬성 놓여 있다. 오늘 우리를 위해 준비된 장소처럼 보였다. 파란 하늘 산들바람 화창한 날씨도 선물이었다.

P는 직접 운전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면서 선물로 사과 한 박스를 가져왔다. 몇 개씩 나누어 가져가라는 성의였다. 루게릭병의 증상은 보통 팔과 다리부터 오는 데 운 좋게 다리가 제일 마지막에 오는 것 같아 혼자의 힘으로 운전을 하고 친구들을 만나러 왔다고 말했다.

얼굴도 보면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케케묵은 기억을 소환해서 같이 웃으며 강변도 걸으며 일상에서 벗어나 마음 편한 시간을 함께 나누었다. P는 말 대신 휴대폰 문자 메시지로 소통을 했다. 기적은 존재한다. 친구들은 투병생활을 잘 할 수 있게 격려하며 용기를 가지고 희망을 잃지 말라는 당부의 말을 전했다. 이번 봄 소풍이 투병 생활의 활력이 되고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한결같은 마음에서다.

아쉬운 작별의 시간 P의 차량이 출발하자 뒷모습을 바라보던 친구들은 하나같이 울먹이며 눈시울을 붉혔다. 마음이 짠하다며 말을 잇지 못한다. P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은 듯 30여m쯤 달리던 차량을 도로변에 세우고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초등학교 친구들을 통해서만 느끼고 맛볼 수 있는 추억소환. 특별함이 전해지는 짧은 봄 소풍은 막을 내렸다. 내가 보고 싶은 친구가 있듯이 나를 보고 싶어 하는 친구가 있을 나이.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정호승 시인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김점순 시민기자 coffee-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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