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뉴스] 김굉필-정여창 선생이 교류하던 곳...대구 달성 구지 이노정을 아십니까?

  • 이외식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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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5-16   |  발행일 2021-05-19 제10면   |  수정 2021-05-25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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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문화재 자료 제30호 이노정이 고색창연하게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 내리 성담에 자리한 이노정(二老亭)은 낙동강이 굽이쳐 흐르는 야트막한 언덕 아래에서 500년 넘게 풍상을 겪으면서도 그 도도함을 잃지 않고 은근함을 간직하고 있다. 푸른 이끼가 오래된 기왓장에 비단자리를 깔아 고색함을 더하는데 강 건너 풀꽃 향기는 강바람에 실려와 '이노정'의 문고리를 흔든다. 통마루에서 책상을 마주하고 담론을 나누며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삶을 즐기는 두 현자의 큰 그림자가 오버랩되면서 오늘의 우리들에게 무언의 화두를 던지는 듯하다.

'이노정'은 조선조 5현으로 추앙받는 한훤당(寒暄堂)김굉필 선생과 일두 정여창 선생이 서로 교류하며 고담준론을 펴면서 후학을 강학하고 시와 풍류로 소요(逍遙)했든 곳으로 알려져 있다.

두 분은 영남학맥의 종조(宗祖)인 점필제 김종직 선생 문하에서 동문수학하면서 학문을 연마, 당대 최고의 석학으로 쌍벽을 이루며 살신성인의 삶을 사셨든 현인이다. 애석하게도 두 분은 무오·갑자 양대 사화에 연루돼 김굉필 선생은 1504년 전라도 순천에서 유배 중 죽임을 당했고, 정여창 선생은 무오사화 때 함경도 종성에서 유배 중 1504년 적소에서 병사했으나 갑자사화 때 부관참시(剖棺斬屍)되었다.

두 현인은 유교적 정치이상과 성리학이 추구하는 이상국가를 실현하고자 진력을 다했지만 시대의 희생양이 돼 아이러니한 역사의 모순을 보여주고 있다. 한말 영남 유학자 회당 장석영 선생은 "일찍이 두 분 선생이 동방의 성리학을 일으켜 공자의 도가 밝아졌다. 돌아가신 후에는 공자의 사당에 모셔졌으니 두 분은 동방의 공자요 동방 제일인이다. 제일인이 머물던 곳이 바로 제일강산"이라며 '이노정' 내의 '제일강산정기' 현판에서 두 선생을 흠모해 찬(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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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굉필 '독소학' 정여창 '유악양' 시구가 주련에 걸려 있다.


'이노정'은 처음 '제일강산'이라 했으나 훗날 후학들이 두 분 선생을 추앙하는 의미에서 '이노정'이라 개칭했고 지금은 '제일강산' '이노정' 두 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정자의 규모는 크지 않으나 이름에 걸맞게 풍광이 뛰어나다. 작지만 솟을 외문이 있고 개양문을 통해서 정자에 들어가면 전면의 원기둥에는 시구를 연해 걸어 놓은 주련(柱聯)에 칠언절구의 정여창 선생의 유악양(遊岳陽)시가 있다. 바깥쪽 주련에는 김굉필 선생의 독소학(讀小學)의 시가 '이노정'의 의미를 또렷하게 나타내며 운치를 보태고 있다.

한훤당은 소학을 통달한 후 소학 속에서 어제의 잘못을 깨달았다고 술회하며 이 시를 통해 실천 의지를 새롭게 다졌다고 소회로 남겼다. 성리학의 대가로 경사에 통달한 일두 선생의 '유악양' 시는 섬진강 변 악양루에서 학문을 강론하며 지리산을 유람하고 악양들 화개에서 보리가 익어가는 풍경과 자연 속으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을 그리면서 무위자연(無爲自然)을 노래한 시다. 중종반정 후 두 분은 신원돼 조선 선비의 사표로 숭상받으면서 동방오현으로 추앙받고 있다.
글·사진=이외식 시민기자 2whysi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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