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준 교수의 '북한 이야기' .9] 대마초를 흡입하는 북한주민들

  • 조현준 계명대 언론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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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5-21   |  발행일 2021-05-21 제21면   |  수정 2021-05-21 07:36
풀린 눈으로 '대마초' 피우는 남성들
가슴엔 김일성·김정일 배지 반짝
일행과 라선지역 노래방서 시간보내다
복도쪽 이상한 냄새 풍기는 방에서 발견
공공장소서 대마초 피우는 장면 충격적
주체사상과 어울리지않는 모습에 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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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예술대학 출신 단원들의 공연 모습
오랜 기차 여정을 마치고 함경북도-러시아 국경 쪽에 있는 전망대를 방문하였다. 러시아 땅이 보이는 이곳에는 북한 직원 두 명이 있었는데 그들은 전망대에 가만히 서 있을 뿐 무언가에 대하여 설명을 하는 가이드 역할은 하고 있지 않았다. 본인이 맡은 임무에 만족하는지에 관한 질문에는 북한 당국이 요청하는 일에만 충실하게 임할 뿐 다른 희망이나 소원은 없다고 하였다. 많은 북한 주민들에게 소원이 무엇인지를 물어봤을 때 돌아오는 답변은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타인과의 경쟁을 바탕으로 승진의 기회를 얻고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자본주의 시스템과는 달리 대부분의 북한 주민들은 단지 하루하루를 무사히 넘기고 살아가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았고 사람들에게 어떠한 꿈과 희망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전망대에서의 짧은 시간을 보내고 난 후에 기념품을 판매하는 가게에 들렀는데 곰 뼈와 범 뼈 관절염 약술을 비롯하여 주체사상에 대한 서적과 2시간 남짓한 모란봉악단 공연 영상이 담긴 DVD 등 여러 제품이 있었다. 관절염 약술 같은 경우, '만병통치약'이라며 종업원이 자랑하곤 했다. 다른 DVD 안에는 휴전협정이 체결되었던 1953년 7월27일 직후에 촬영된 김일성 주석의 연설이 담긴 영상도 있었다. 영상 안에서 김일성은 "외래제국주의련합세력을 타승하고 미제국주의, 리승만 매국도당들을 물리치며 인민들이 쟁취한 위대한 력사적 승리"라고 주장한다.

이 후 라선시의 한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였는데 식당 한편에는 잭 다니엘을 포함한 온갖 외국산 양주가 배치되어 있었는데 DSLR 카메라로 동영상을 찍으려 하자 종업원이 손사래를 치며 촬영을 하지 못 하게 하였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에 북한 주민 한 명이 미화 100달러 지폐를 손에 든 채 나에게 다가오며 100달러 지폐가 있으면 본인의 것과 교환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이유를 물어보니 "지폐가 상해서" 바꾸고 싶다고 하였다. 가이드 손에 있던 지폐를 얼핏 보니 모서리가 살짝 찢어져 있었고 조금 더 자세히 물어보니 북한에서는 지폐가 '상한' 경우에는 사용할 수 없다고 하였다. 지폐가 없다고 하자 매우 난감한 표정으로 돌아갔던 기억이 난다. 이어 모란봉악단에 선발되지는 못했지만, 악기 연주와 노래 실력이 수준급인 20대 여성 단원들의 공연을 관람하러 갔다. 한복을 비롯하여 전문 의상을 여러 차례 갈아입으며 연주하던 단원들은 손풍금(아코디언)을 비롯하여 바이올린, 키보드, 베이스, 드럼 등을 다루는 솜씨가 매우 뛰어났다. 100평 정도 규모의 공간이었기 때문에 내가 있던 위치와 무대에 오르락내리락하는 단원들의 동선과 겹치는 경우가 종종 생겨서 인터뷰를 생각보다는 쉽게 진행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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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만병통치약'으로 선전하는 곰뼈와 범뼈 관절염 약술
어떤 단원은 내가 남조선에서 왔다고 하자 믿기지 않는 듯 나를 한동안 빤히 쳐다보기도 했다. 또 다른 단원은 나의 나이를 비롯하여 결혼 여부, 이상형 등을 물으며 열린 마음으로 많은 점을 궁금해하였다. 내가 인터뷰를 했던 단원들은 모두 평양예술대학 출신 여성들이었는데 '명문대'를 나온 것에 비하면 겸손한 자세를 취했다. 나보고 캐나다에서 살았으면 영어 실력이 뛰어나지 않겠냐고 말하며 본인은 영어로 "What's your name?" 정도밖에 모른다고 하며 예술 분야 외에도 다른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많다고 얘기하면서 본인을 낮추었다. 이 중 한 단원은 남조선에 있는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고 하였다. 북한에 있는 동안 몇 명의 북한 주민들이 교사를 선망의 직종으로써 생각하며 특히 남한에서 교사를 해보고 싶다는 말이 흥미로웠다.

공연 관람 후 우리 일행은 운전기사를 포함하여 미스터 김과 그의 지인들과 함께 노래방으로 향했다. 북한 주민들은 평양에서 온 대동강맥주를 마시며 신나는 반주와 곁들여진 사회주의를 찬양하는 노래를 열창하였다. 노래방 기계에 나오는 가사를 보지도 않은 채 가사 한 소절조차 틀리지 않고 부르는 모습을 보니 같은 노래를 반복해서 많이 불렀지 않았나 싶었다. 다들 흥겹게 노래를 부르는 동안 나는 위생실(화장실)에 가기 위하여 방문을 열고 나왔는데 복도를 걷는 중에 어디에선가 이상한 냄새가 났다. 냄새가 나는 방향으로 가보니 방문이 반 틈 열려있는 공간에 남성 두 명이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대마초를 피우고 있었다. 나는 황급히 몰래카메라의 전원을 켜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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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준 계명대 언론영상학과 교수
눈이 반쯤 풀린 채 돌아가면서 대마초를 피우던 이 남성들은 이 '씨라기'를 청진에서 구했다며 자랑을 하였다. 나는 씨라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어봤더니 "풀"이라고 짧게 대답한 채 계속해서 흡입하는데 몰두하였다. 다시 씨라기(대마초)를 청진 어디에서 구했는지 묻자 "북한의 논밭을 유심히 보면 대마초가 자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씨라기가 북한에서는 불법이 아니라고 하며 불법이 될 만한 이유 역시 모르는 듯했다. 복도에 거닐던 다른 북한 손님들은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하며 인상을 찌푸린 채 지나가기도 했다. 대마초를 피우고 있던 남성들의 모습에 많이 놀랐지만 더 놀라운 점은 이들이 인민복을 입고 있었고 김일성·김정일 배지를 왼쪽 가슴에 찬 채 씨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공공장소에서 피우는 장면이었는데 주체사상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대마초를 피우는 모습은 상당히 충격적이었으나 아마도 북한에 있는 동안 가장 충격적인 모습은 북한을 떠나기 바로 전날 밤에 목격한 다른 장면이 아닐까 싶다. <계명대 언론영상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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