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보는 대구문화 아카이브 (13) 최희선] 뚝배기 같은 여인의 멋을 가진 '달구벌 입춤'으로 전통 맥 이은 '舞人'

  • 최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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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6-28 08:00  |  수정 2021-08-23 12:49  |  발행일 2021-06-28 제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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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선이 달구벌 입춤을 추는 모습. 〈대구문화예술아카이브 제공〉
기생 춤·음악 담당 달성권번 춤선생 박지홍에게 가르침 받아
전통춤·창작무용 등 자신만의 춤세계 구축

1990년대부터 고향 대구 중심 전통춤 정리·전수 작업
국립문화재연구소에 '달구벌 입춤' 수록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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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선(1929~2010)은 평생 춤이라는 한 길만 묵묵히 걸어왔다. 권명화와 함께 달성권번의 춤 선생인 박지홍으로부터 전통춤을 배웠던 최희선은 '달구벌 입춤'으로 전통춤의 맥을 이어갔다. 동시에 창작무용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는 인생의 후반부에는 전통춤의 가치를 알리고, 이를 전승하는 데도 힘썼다.

◆전통무용부터 신무용까지 두루 섭렵

최희선은 1929년 11월18일 최벽수와 최두안의 4남매 중 둘째로 대구에서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붙잡다는 뜻의 '붙들이'였다. 호적에는 '부돌'로 이름이 올라갔고, '희선'이라는 이름은 대학에 다닐 때 춤 스승이었던 한영숙이 지어준 이름이다.

그는 아버지가 일제강점기 당시 관리여서 어렵지 않게 살았다. 최희선의 집은 대구 약전골목에 있었는데, 이곳에는 기생들의 춤, 음악 교육을 담당했던 달성권번이 있었다. 최희선은 이 근처를 오가며 음악 소리와 춤을 추는 기생들의 모습을 보며 춤에 빠지게 된다. 10대 후반 최희선은 전남 나주 출신 달성권번의 춤 선생인 박지홍을 만나 그의 문하생으로 살풀이춤, 검무, 입춤 등 전통춤을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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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선이 북춤을 추는 모습. <대구문화예술아카이브 제공>
최희선은 다양한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1945년 광복 이후 최희선은 서울에 있는 최승희의 제자 장추화가 운영하는 무용연구소에서 춤을 배웠고, 조용자에게서는 발레를 배우기도 했다. 한영숙으로부터는 전통춤도 사사했다. 즉 전통춤부터 신무용까지 다양한 춤을 배웠던 시기였다.

1950년 최희선은 6·25 전쟁으로 대구로 내려온다. 그는 이때 대구에서 박지홍에게서 다시 무용을 배운다. 당시 무용가로는 드물게 청구대학(현 영남대) 국문과를 다니면서 무용 활동을 병행했다. 최희선은 57년 대구에서 최희선무용연구소를 열고, 후학 양성을 시작했다. 같은 해 대구 문화극장(옛 국립극장)에서 제1회 최희선무용발표회를 개최하면서, 전통춤과 창작춤 활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듬해 8월에는 제1회 민족예술경연대회에 스승 박지홍과 함께 하회별신굿놀이를 복원해 무대에 올렸는데, 이 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이후 최희선은 59년 서울 원각사에서 전통춤과 창작춤을 발표하는 등 자신만의 춤 세계를 구축해나간다.

1962년 최희선 제4회 발표회 팸플릿 표지
최희선의 1962년 제4회 발표회 팸플릿 표지.
◆창작 무용 작업에 몰두

최희선은 1970년 서울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서울에서 무용연구소를 연 최희선은 후진 양성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73년 국립극장 지도위원으로 위촉되면서, 국립무용단 제12회 공연 '별의 전설'에 출연하고, 국립극장 산하 단체인 무용단·가무단·창극단에서 안무와 연출로 공연에 참여한다. 당시 주요 작품으로는 '대춘향전' '시집가는 날' '왕자호동' '배비장전' '심청' '원효대사' '흥보가' '마음 속에 이는 바람' '꿈, 꿈, 꿈' '푸른천지' '황진이' 등이 있다. 1982년 최희선은 국립무용단을 나와 청주사범대 무용과에서 강의를 맡았다. 교편을 잡았지만 춤을 향한 열정은 여전했다. 이에 84년 한길무용단을 창단해 공연 활동을 시작했다. 이때 '춤의 내력' '어느 자서전' '물꽃' '물이랑 삶이랑' 등을 발표했다. 특히 '물꽃'이라는 작품은 86년 아시아드문화예술축전에서 안무상과 연기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투박한 멋의 달구벌 입춤

1990년대부터 최희선은 고향 대구의 춤을 이어가는 데 집중한다. 88년 달구벌전통무용 연구회를 조직한 최희선은 대구를 중심으로 박지홍류 전통춤을 정리, 전수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95년에는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발행한 무보집에 '최희선 달구벌 입춤 무보'가 수록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최희선은 박지홍으로부터 배운 입춤을 계승해 '달구벌 입춤'이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올려 나갔다. 이 춤은 '달구벌 수건춤' '달구벌 허튼춤'이라고도 한다. 맨손춤을 추다 소매 안에 넣어둔 작은 수건을 빼내 춤을 추다가 소고춤으로 이어지는 형태다.

달구벌 입춤을 이어가고 있는 윤미라 경희대 무용학부 교수는 2016년 영남춤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발제문에서 "달구벌입춤은 한국 전통춤 전승에 지대한 기여를 한 교방춤 중 가장 기본무에 해당하는 춤으로 경상도 지역의 교방춤으로서 그 예술적 가치를 지닌다"고 했다. 이 춤은 추는 사람 또는 장소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변형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최희선은 2007년 9월28일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달구벌 입춤과 함께한 최희선 춤인생 60주년' 공연을 앞두고 했던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달구벌 입춤'을 가르칠 때는 딱 하나! '정직함만 가지고 추라'고 주문합니다. 동작만 만들면 뭐 합니까. 달구벌 입춤을 출 때는 '달구벌'이라는 지명이 어떻게 형성됐는가를 생각해야죠. 경기지역 춤은 아름답고 풍물이 있는데, 대구의 지명을 내걸고 추는 달구벌춤은 투박하고 뚝배기 같은 여인의 멋, 즉 내면의 강함을 통한 멋으로 희비애락을 나타냅니다. 달구벌은 푸른 언덕이라는 뜻이니, 고단한 여인의 삶 속에서도 그 정신을 잘 새겨 추는 춤이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후 최희선은 2009년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NEW YEAR DANCE FESTIVAL' 무대를 끝으로 2010년 10월12일 향년 83세로 세상을 떠났다.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공동기획 : 대구광역시

▨참고문헌=영남의 음악과 무용의 전통을 찾아서(계명대 출판부), 춤과 그들(동아시아), 영남춤학회 2016년 학술대회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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