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뉴스] 안동댐 수몰민 이원길의 두 번째 고향이야기 '원촌일기'

  • 천윤자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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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8-08   |  발행일 2021-09-08 제12면   |  수정 2021-08-09 08:43
"이 외경스러운 곳에서 후손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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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길씨가 출간된 '원촌일기'를 보고 있다.

"귀향 세 해째, 시절 따라 풀과 꽃이 돋았다가 스러지고 낯설거나 낯익은 철새가 왔다가 가고, 연한 산그늘이 스스로 짙어져 가는 우금에 묻혀서 지냈습니다. 때때로 아무렇게나 쓴 일기가 자기도취 증상이 심할 때는 괜찮게도 보여 책으로 엮습니다만, 증상이 가라앉으면 후회할지도 모릅니다."

경북 안동댐이 건설되면서 스무살에 고향을 떠나야 했던 이원길(64) 씨가 최근 옛 고향마을 근처로 귀향해 살면서 쓴 글을 모아 '원촌일기'라는 제목으로 책을 펴냈다. 그의 두 번째 고향이야기다. 첫 번째 책은 귀향 전인 2017년 고향의 추억과 고향 사람 이야기를 엮은 '본심이'다.

이씨의 고향은 안동댐 최상류인 안동시 예안면 귀단리, '고통마을'이라고 불리던 곳이다. 당시 60여 가구가 살았지만 수몰되면서 서울로, 대구로, 안동시내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씨도 그때 고향을 떠난 후 직장을 따라 옮겨 다니며 살다가 귀향 전까지 대구에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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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길씨가 귀향 후 원촌일기를 쓴 공간인 '원대정'.


'원촌일기'는 2019년 이육사문학관이 있는 원촌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의 정자 '원대정'에 1년 동안 머물면서 쓴 일기와 그해 겨울 도산면 서부리 예끼 마을에 터전을 마련해 정착해 살면서 쓴 몇 편의 일기를 덧붙였다.

원대정은 퇴계 이황 선생의 후손인 진성이씨 주손 댁 사당이 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처하자 건물을 해체하고 옮겨 지은 정자다. 이씨는 이곳에서 자신이 '광야'라고 부르는 원촌 앞들을 내려다보고, 숫눈처럼 소복하니 마당에 내려앉는 메밀밭 같은 달빛을 즐긴다. 툇마루 위 처마 밑에 깃든 딱새 부부가 떠날까 봐 안절부절하며 동거하고, 날아드는 벌레들을 빗자루로 쓸어내며 공생한다. 도산서원 가을 향사와 정알례(正謁禮)에 참례하고,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 보조사육사 일과 생태숲에서 산나물밭 가꾸기도 하면서 만나는 일상마다 글로 담아낸다.

예끼마을은 안동댐 수몰 전 예안마을에서 살던 사람들이 뒷산으로 올라가 살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때문에 이씨의 글 가운데 수몰민이 느끼는 상실감과 그리움, 그리고 애틋한 고향 사랑이 곳곳에 묻어난다.
 

원촌들
원대정에서 내려다보이는 원촌들과 목재고택.


이운경 평론가는 서평에서 "원촌일기는 귀향 후의 일상을 기록한 글이지만 그날그날 있었던 일을 단순히 나열만 한 것이 아니라 자기성찰을 통한 윤리적 실천을 고민하고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는 글이다. 다양한 소재와 내용으로 수필에 가깝다"고 했다.

이어 " 안동의 역사와 정서를 지닌 사투리의 재생과 활용은 고향의식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안동 양반 특유의 우회적 비유와 은유, 서정성 강한 낭만적 표현, 풍자와 해학, 사투리의 활용과 농경 정서의 재생 등은 작가가 구축한 개성적 문체의 구체적 발현이다. 이 모든 요소들이 어우러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자기만의 문체를 확립한다"고 평했다.

김 살로메 소설가는 "원촌일기는 스러져가는 옛말들을 되살리고, 적확한 언어의 배치를 고민한 산문정신을 만나는 재미가 있다. 오래 삭혀 온 글맛으로 사람의 향기를 전파하고, 삶에 대한 품격을 점화하는 작가의 본심 앞에 절로 순한 마음이 된다"고 했다.

이씨는 "일을 더 할 수도 있었지만 2018년 세밑에 퇴직하고 귀향했다. 늘 품어온 귀소본능이었다"며 "육사 이원록 선생, 향산 이만도 선생, 퇴계 이황 선생을 생각하며 이 외경스러운 곳에서 후손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한다"고 했다.

글·사진= 천윤자 시민기자 kscyj83@hanmail.net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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