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뉴스]경북 고령 개경포 나루의 유래를 아시나요

  • 이외식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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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8-16   |  발행일 2021-08-18 제13면   |  수정 2021-08-17 08:26
강화도 선원사에 봉안했던 팔만대장경을 이곳 나루로 실어와 해인사로 이운
선사시대 이후 조선시대까지 영남내륙 수로 중계지 교역장
조각상
팔만대장경 이운행렬을 재현한 조각상.


억겁의 세월을 품고 도도히 흐르는 낙동강이 대니산을 맞아 잠시 숨결을 가누는 듯하더니 개경포 나루를 지나면서 이내 남동쪽으로 굽이쳐 물도리를 그리면서 시야에서 멀어진다.

맹위를 떨치던 한낮의 염천(炎天)도 저녁노을에 가려 빛을 잃자 푸른 물빛은 강바람에 실려와 개경포 기념공원으로 살포시 들어와 자리한다. 경북 고령군 개진면 개경포 기념공원은 낙동강변의 야트막한 구릉에 위치한 공원이다. 그다지 크지 않은 쉼터지만 역사가 살아 숨쉬는 테마파크로 알려진 곳으로 2001년 조성됐다.

개경포(開經浦)란 지명이 말해주듯 부처님 말씀을 담은 팔만대장경을 이곳 나루로 실어와 불교의 경전이 도착해 열리게 됐다고 불려진 이름이다. 강화도 선원사에 봉안했든 팔만대장경을 고려 말 왜구의 잦은 침노에 분실·훼손될 것을 염려해 해인사로 옮겼다고 한다.

기념비
이규보 선생의 기도발원문 '대장각판 군신기고문' 기념비.


팔만대장경의 이운(移運) 시기와 경로에 대해서는 사학계의 다분한 이견도 있지만 서해와 남해를 거쳐 낙동강 수로를 거슬로 올라와 이곳 개경포를 통해 해인사로 옮긴 사실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다는 공통된 의견이다.

개경포는 몽골의 침략으로 민족의 수난기에 조성되었던 팔만대장경의 호국불심을 해인사로 옮긴 징검다리 역할을 한 곳이다. 2016년 11월에는 지역 주민 500여명이 참가해 이운순례의 역사적 의미를 되살리고자 '팔만대장경 이운 순례길 걷기 체험행사'를 가지기도 했다. 또한 개경포 나루는 선사시대 이후 조선시대까지 영남내륙의 수로 중계지 교역장으로 내륙지역 곡식과 경북 고령지역의 특산물인 도자기와 기와, 해안도서 지역의 소금 등 해산물을 싣고와 하역하던 물산집산지의 커다란 포구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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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경포 앞 낙동강 멀리 대니산이 보이고 낙동강물이 물도리를 하고 있다.


주변 풍광도 뛰어나 1580년대는 낙강칠현(洛江七賢)이라 불리우는 송암 김면, 한강 정구 선생 등 7인이 뱃놀이로 풍류를 즐기며 시를 짓고 읊으며 소요했든 곳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크게 활약했던 김면 선생은 궁중보물을 탈취해 일본으로 반출하려던 왜적 1천600명을 이곳에서 수장시키고 보물을 되찾은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개경포 기념공원은 단순한 쉼터 공간이 아니고 역사를 향유할 수 있는 테마파크인 만큼 상징적 조형물과 미술적 가치도 함께 음미해볼 만하다. 개경포 기념비는 팔만대장경을 보관한 서고 형태를 형상화하면서 반야심경이 음각돼 있다.

고려조 문인 이규보 선생의 기도발원문 '대장각판 군신기고문' 기념비는 화강암 오석에 각자돼 있으며 팔만대장경 이운행렬을 재현한 조각상(15개)은 표정 하나 하나가 실체적으로 리얼감있게 조각돼 있다. 더불어 말끔하게 손질된 잔디밭과 이운 조운선 모형, 팔각정, 벤치, 음수대, 주막, 휴식공간이 잘 배치돼 있어 낙동강 풍광과 어우러지면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글·사진=이외식 시민기자 2whysi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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