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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 예담촌의 담장거리(위쪽)와 부부 회화나무. |
여기는 경남 산청군 남사 예담촌이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제1호로 지정된 마을이다. 지리산 천왕봉의 정기가 스며있고 하늘이 내린 땅에 조성된 볼수록 아름다운 옛 담장 마을이다. '산청 남사마을 옛 담장(국가등록문화재 제281호)'은 이 마을 대표 브랜드며 관광객을 감탄케 하는 볼거리다. 남사마을 토담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한국적인 너무나 한국적인 옛 멋에 흠뻑 젖어 버린다. 마을 사람들이 눈만 뜨면 쳐다보는 저 돌담길이, 그 위 담쟁이덩굴, 곳곳의 한옥들이 우리의 은근과 끈기를 길러주는 토양이란 것을 비로소 알았다. 이씨 고가(경남문화재자료 제 118호)로 먼저 걷는다. 니구산(尼丘山)이 정면으로 보인다. 노나라 공자가 태어난 추읍의 니구산에서 그 산명을 옮겨 온 것이다. 또 마을을 에돌아 흐르는 사수천도 추읍을 흐르는 사수천의 이름을 본 딴 것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이 마을이 공자의 사상을 얼마나 받들고 실천했는지 어림짐작이 간다.
토담에 둘러싸인 한옥·담쟁이 덩굴
걷고 있으면 한국적 美에 흠뻑 젖어
마을 앞 '니구산' 공자 고향 山名 본따
이씨 古家 담장길 '왕의 남자' 촬영지
부부 회화나무 아래 지나면 백년해로
숱한 인재들의 충효미담도 가득 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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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 예담촌의 사수천(남사천). |
그럼 공자는 어떤 분일까. 공자(孔子)는 기원전 551년, 노(魯)나라 창평향 추읍에서 태어났다. 공자의 아버지는 숙량흘이었다. 숙양흘의 본명은 공흘이었는데, 공씨 성을 빼고 자 숙량(叔梁)을 붙여 숙양흘로 부르게 되었다. 그는 몸집이 큰 9척의 무인으로 노나라 대부가 되었다. 그는 '반듯한 아들하나 두었으면 소원이 없겠네.' 애면글면 말하곤 했다. 첫 부인 사이에서 딸만 아홉 낳았으므로 별 수 없이 둘째 부인을 보아 아들을 하나 얻었으나 절름발이였다. 이름이 맹피였다. 탄식하며 세월을 보내던 중 어느덧 환갑이 지났다. 마음이 다급해졌다. 예순 세살 되던 해 마을 사람이 그에게 귀띔했다. '성 밖 북쪽 십리에 무녀가 살고 있다네. 그녀에게 과년한 딸 셋이 있는데 찾아가 부탁해보면 어떻겠는가.' 마음이 솔깃해 그 무녀의 집을 찾아가 저간의 사정을 말하고 딸 하나 주기를 청했다. 무녀가 세 딸을 불렀다. 스무 살 첫째 딸에게 물었다. '너 대부 어르신 아이를 낳아 줄 마음이 있느냐.' 장녀는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둘째도 도리질을 했다. 부득이 열여섯 된 셋째에게 물었다. '네 어머니, 저는 기꺼이 대부 어른신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그녀가 안징재였다. 그 후 어느 날, 열여섯 처녀 안징재와 예순셋 노인 숙양흘이 무녀 집 근처 들판에서 몸을 섞었다. 이윽고 안징재의 몸에 태기가 생기고 열 달 후 금 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았다. 공자는 이렇게 야합(野合)으로 태어났다. 안징재가 니구산에서 기도를 한 후 공자를 얻은 것이다. 날 때부터 머리 중앙이 들어간 반면 주위가 불쑥 돋아 있어 구(丘:언덕)라 이름 지었다. 공자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무녀인 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어릴 때부터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아는 신동이었다. 게다가 덕성을 갖추고 학문에 정진했다. 그 후 벼슬에 나아갔다. 공자의 기본 통치 철학은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예의를 진작시키는 것이다. 노나라 풍속은 몰라보게 변화되었다. 시장에는 협작질이 없어지고 길에서는 남녀가 나누어 걷고 어른과 아이의 서열이 생기고 대화를 예로서 하고 충효 사상이 만연했다. 이렇게 노나라는 도둑이 없어지고 백성들이 태평가를 부르게 되었다. 그건 백성들의 도덕성을 깨우쳐 예의와 기강을 바로 세웠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바로 덕치와 예치다. 그때 니구산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은 타임머신을 타고 아주 먼 곳까지 흘러갔다가 돌아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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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거리. |
나는 아련한 생각에서 깨어났다. 바람과 함께 사라진 현실이 바람과 함께 돌아왔다. 나는 어느덧 이씨 고가 입구 담장길에 서 있었다. '왕의 남자' 촬영지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조선 최초의 궁중 광대극 '왕의 남자'는 질투와 열망이 부른 피의 비극을 말하고 있다. 1천만 관객을 돌파한 왕의 남자는 한국판 비극이다. 영국판 비극,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처럼 말이다. 비할 바 없는 완성된 비극에서 영혼의 내면을 벗겨내는데 성공한 이 작품들은 불멸의 명성을 얻었다. 메쌓기한 석축 위에 찰쌓기 방식을 한 토담은 따스하고 아름다웠다.
하트 마크로 자란 부부 회화나무를 지난다. 흔히 선비 나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서로에게 볕을 더 잘 들게 하려고 구부리며 자랐고 부부가 이 나무 아래를 통과하면 금슬 좋게 백년해로 한다고 한다. 이씨 고가에 들어선다. 남사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집으로 1700년대 건축물이다. 남북으로 긴 대지에 안채를 중심으로 'ㅁ 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대청 뒷벽으로 개방된 툇마루를 단 것이 특색이다. 일반 사대부 주택 안채에 있는 부엌 위치가 사당 방향과 반대인 점과 달리 이 집은 같은 방향으로 놓여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집안은 양지바르고 기품이 넘치며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상서로운 기운이 서려 있다.
이제 최씨 고가(경남문화재자료 제117호)로 간다. 이 집은 남사마을 중앙에 자리 잡은 가장 큰 집이다. 1930년대에 지었고 사랑채 좌우에 안마당으로 통하는 중문을 2곳에 만들었는데 동쪽 중문을 통과하면 안채가 한눈에 보이고 서쪽 중문은 외양간 채와 안채가 직접 눈에 띄지 않도록 안으로 담장을 둘러놓았다. 남녀의 사용 공간을 나누어 공간의 독립성을 부여한 뛰어난 배치로 사대부가의 유교적 전통을 엿볼 수 있다. 남녀 음양이 섞여 비구름을 만들고 그것이 햇무리를 만나면 무지개가 되듯이 여긴 음양오행의 조화가 선비정신을 만드는 사서오경의 공간이 있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면 정신을 집중할 수 있고 담금질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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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효재의 향나무. |
역시 돌아 나와 사양정사(경남문화재자료 제453호)를 지나면서 650년 된 감나무 아래에 서 본다. 참 아득하다. 그 긴 세월을 살아온 그 질긴 생명력은 어떤 것일까. 조금 더 나아가니 사수천(남사천)이다. 징검다리로 건넌다. 지리산과 니구산에서 흘러온 물은 공자왈 맹자왈 왈왈 흐른다. 글 읽는 낭랑한 소리는 우리의 부모님이 가장 좋아하던 불멸의 농악이었다. 이동서당(경남문화재자료 제196호)과 3·1운동기념공원을 지나서 예담길(꽃길터널)로 들어선다. 아름답고 황홀하다. 녹색 물이 뚝 뚝 떨어질 것 같은 잎 위로 핀 꽃은 밤하늘 별처럼 찬란하다. 꽃은 별이라고 하지 않았나.
다음은 니사재(경남문화재자료 제328호)다. 니사재는 조선 전기 화적 임꺽정 난의 진압에 토포사 종사관으로 공을 세우고 대사헌·호조판서를 지낸 박호원의 재실이다. 정문 앞에는 충무공 이순신이 백의종군 중 이곳을 지났다는 행로 표석이 있다. 니사재의 유숙지는 이순신 장군이 권율 도원수부가 있는 합천으로 가던 길에 하룻밤 유숙한 곳이다. 정말 유서 깊은 곳이다. 백의 종군로를 따라 걷다가 전통놀이 공원에서 다시 징검다리를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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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일 시인·방방곡곡 트레킹 회장 |
사효재에 도착해 안내판을 읽는다. 사효재는 1706년 피접 중인 아버지를 해치려는 화적의 칼을 자신의 몸으로 막아낸 영모당 이윤현의 효심을 기리기 위해 지은 것이다. 요즈음 자식이 아버지를 살해하고 손자가 할머니를 살해하는 시대임에도 나라님은 이런 패륜에 대해서 말 한마디 없다. 솔직히 이곳은 우리의 나라님이 꼭 한번 다녀가야 할 도덕체험의 성지다. 그리고 고인이 되신 부모님에게 불효했던 자신의 과거 행적에 마음 아파하며 나는 속으로 흐느끼고 있었다. 여기 사효재에서 내면을 비추어 보면 사람이 살면서 사람 구실하기가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사무치게 느낄 수 있다.
인근에 이제 개국공신 교서비가 있다. 조선 개국에 공을 세운 이제에게 내린 태조 이성계의 개국공신교서(국보324호)가 내용이다. 이제는 이성계의 셋째 사위다. 조선 개국공신 1등으로 흥안군에 봉해지고 의흥위 절제사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답사를 마무리하면서 남학정(전망대)에 올랐다. 남사 마을은 반달형으로 그것도 한낮의 반달처럼 처연하고 아름다웠다. 이 마을이 배출한 숱한 인재들의 충효 미담이 마치 그 옛 담장 길처럼 의식에 아름다운 데칼코마니를 그린다. 이번 답사는 아름다움에 대한 강렬한 경험이었다.
글·사진 = 김 찬일 시인 방방곡곡 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문의 : 산청군 관광진흥과 (055)970-7201, 7205
☞내비 주소 : 경남 산청군 단성면 지리산대로 2897번지길 10
☞트레킹 코스 : 제1주차장 - 이씨고가 - 최씨고가 - 사양정사 - 이동서당 - 니사재 - 사효재 - 이제 개국공신 교서비.
☞인근 볼거리 : 백운계곡, 구형왕릉, 대원사 계곡, 정취암 조망, 겁외사(성철대종사 생가), 남명조식유적, 덕산사, 동의보감촌, 산청 래프팅 타운. 단속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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