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보는 대구문화 아카이브 (20) 이인성] 서양화를 서양화답게 그린 천재냐 일본의 시각으로 그린 출세지향자냐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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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0-11   |  발행일 2021-10-11 제20면   |  수정 2021-11-01 16:47
조선미전 휩쓰는 등 한국 근대미술의 화려한 족적...일본서도 극찬
유난히 붉은 흙색 선호...타고난 예술감각과 결합 '향토색론' 구현
세 번의 결혼과 두 자녀의 죽음, 그리고 오발탄 사망 등 삶은 비운

이인성-1

이인성(李仁星·1912~1950)은 일제강점기 대구가 낳은 천재 화가다. 조선에 양화가 도입된 이후 일본이 주최한 관전에서 일본 화가를 포함해 가장 많은 상(33점)을 받았다. 당시 가장 권위 있던 조선미술전람회(조선미전)에 첫 입선(1929년)을 한 뒤 23회까지 연속 입선(8~9회)과 특선(10~15회), 추천작가(16~19회)를 했다. 특히 14회 때(1935년)는 최고상(창덕궁상)을 수상했다. 이인성은 1932년 일본 도쿄 유학 시절 요미우리신문에 '조선의 천재, 소년 이인성군(朝鮮の天才, 少年 李仁星君)' 이란 제목으로 보도되기도 할 만큼 초기 서양화단의 대표적인 화가다.

◆이인성의 출생 및 성장

이인성은 대구 북내정 16번지(현 대구 중구 서성로 14길 51-16)에서 태어났다. 11세 때 수창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한 그는 그림 솜씨가 매우 뛰어났다. 미술 과목은 1학년 때만 8점이고, 6학년까지 줄곧 10점 만점을 받았다. 3학년 때 담임 이영희의 칭찬과 격려에 힘입어 화가의 꿈을 키운 그는 수창학교 시절 교회가 있는 곳으로 그림을 그리러 갔다가 당시 대구의 서양화가 그룹인 영과회(零科會·서동진, 박명조, 배명학, 최화수 등)의 눈에 띄어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인성은 1928년 수창학교를 졸업한 뒤 야간 대구중학원(대구중학교)을 다니다 가난으로 상급 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서동진이 운영하던 '대구미술사(大邱美術社)'에 들어가 수채화를 배웠다. 그해 10월 이인성은 종합잡지사였던 개벽사(開闢社)가 주최한 '세계 아동미술전람회'에 수채화 '촌락의 풍경'을 출품해 특선을 수상했다. 1929년 18세 때 영과회에 입회해 계성학교 정문을 그린 '그늘'로 조선미전에서 최연소 나이에 입선을 하고, 이듬해 미술그룹 향토회 창립 멤버가 된 뒤 계산성당과 초가를 그린 '겨울 어느 날'과 '풍경 제1작'이 잇따라 조선미전에 입선을 하면서 화단의 주목을 한몸에 받게 된다.

이인성
이인성 '해당화'(1944) 〈리움미술관 소장〉

◆영광과 굴곡을 함께한 일생

1931년 제10회 조선미전에서 대구우체국을 배경으로 그린 '세모가경(歲暮街景)'이 첫 특선에 뽑히면서 명성을 탄다. 그는 대구의 유지 및 고미술 수집가인 경북여고보(현 경북여고) 일본인 교장 시라가 주키치의 도움을 받아 약관의 나이에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도쿄에서 낮에는 크레용 회사 사원으로, 야간에는 태평양미술학교에서 학생으로 공부하던 이인성은 일본의 관전인 '제국미술전람회(여름 어느날)'와 '문부성전람회'를 비롯해 재야공모전인 광풍회전, 일본수채화회전 등에서 입상을 이어간다. 같은 해 '카이유'를 조선미전에 출품해 특선을 받았다.

그러나 이인성은 화가로서 화려한 발자취를 남겼으나 개인적 삶은 순탄치 않았다. 1935년 이인성은 남산병원장 딸 김옥순과 결혼한 뒤 남산병원 3층(대구부 남정 77번지·현 중구 남산동 알리안츠생명빌딩 터)에 대구 최초의 '양화연구소'를 설립하고 2년 뒤엔 현 중구 약전골목 인근으로 옮겨 예술 다방을 의미하는 '아루스(ARUS)'를 개업, 갤러리 겸 예술인 쉼터를 열었다. 그러나 아내가 결핵으로 숨지고, 첫째아들과 둘째딸도 사망한다. 그는 사별 후 2년 뒤 간호사와 재혼해 삼덕동으로 거주지 겸 작업실을 옮겨 살다 1944년 서울로 가 이듬해 이화여중 미술교사로 근무하면서 이화여대에도 출강했다. 그러나 둘째 부인도 가정불화로 가출하고 배화여전 출신 김창경과 세번째 결혼을 한다.

서울에서 후학 양성과 더불어 신문 삽화도 그리고 전시회도 했으나 1944년 조선미전 마지막 출품작인 '해당화' 이후로는 뚜렷한 작품이 보이지 않는다. 46년 조선미술가동맹이 발족하자 부위원장이 되었으나 1년 뒤에 탈퇴하고, 조선미술문화협회를 조직하고 활동하기도 하였다. 48년 국화회 회화연구소를 개설해 수채화와 유화를 지도하고, 동화백화점 화랑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49년에는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의 서양화부 심사위원으로, 서울대 미술대 설립 추진위원 등으로도 활동했지만, 30대 후반기엔 폭음 등으로 예전과 같은 활발한 예술 활동을 이어가지 못했다는 평가다.

이인성의 죽음은 황당하고 어이없지만, 한국화단으로선 대단히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그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1월3일 서울에서 한 학부모를 만나러 나갔다가 술에 취해 순찰 중이던 경찰관과 시비가 붙었다. 그 후 밤 8시경 집으로 돌아왔으나 북아현동 이인성의 집까지 찾아온 두 무장경관과 술이 덜 깬 상태에서 언쟁을 벌이다가 한 경찰관이 잘 못 쏜 총에 맞아 그 자리에서 쓰러진 뒤 다음날 숨을 거두었다고 전해진다. 그의 나이 38세였다. 그가 비명에 간 직접적인 이유는 주사(酒邪) 탓이라 할 수 있지만 이인성을 잘 아는 이들은 그의 반골 정신과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저항이 행동으로 격화되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이인성의 화풍과 미술사적 위치

이중희 미술사학자(계명대 미대 명예교수)는 이인성의 화풍에 대해 "서양화다운 서양화를 달성하려는 의지를 갖고 초기 수채물감에 의한 풍경화를 주로 묘사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유채에 의한 인물화를 완벽하게 묘사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 예로 '초여름의 빛'(1933년)→'가을 어느 날'(1934) → '경주의 산곡에서'(1935)→'과수원의 일우'(1936) → '한정'(1937)→'춤'(1938)→ '뒷마당'(1939) '애향'(1939)…'호미를 가지고'(1943)→ '해당화'(1944) 등과 같이 조선미전 출품작과 같은 역작에는 인물의 비중이 늘어난다고 밝혔다. 또 내용 면에서 한국의 풍토감을 살리기 위해서 '향토색'을 작품 속에 구현하려고 노력한 화가"라고 요약한다. 이인성 스스로도 1932년 동아일보 인터뷰 기사에서 "향토의 풋풋한 향기와 관(觀)하면서 걷게 되었다. 역시 나에게는 적토(赤土)를 밟는 것이 청순한 안정을 준다. 참으로 고마운 적토의 향기"라고 말했다.

그의 '향토색론'은 대구지역뿐 아니라 당시 한국화단에서 대두된 중요한 이슈였다. 1930년 대구에서 향토회라는 미술그룹이 창단될 때부터 구체화된 것이다. 그는 향토적인 소재를 발굴하고 원색을 사용해 곡선으로 묘사하길 즐겼다. '가을 어느 날' '경주의 산곡에서' '한정' 등에서는 유난히 붉은 흙색과 원색을 짙게 사용하고 있다.

특히 '경주의 산곡에서'는 제14회 조선미전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수상한 역작이다. 1930년대 조각가이며 가장 뛰어난 비평가였던 김복진은 이 작품을 두고 "풍격(風格)을 갖추고, 활기로 가득 차 유쾌하다"고 평했다. 김용준도 "이인성은 상상력의 풍부함, 색채의 명랑함, 그리고 구성의 웅대함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우리 화단의 귀재"라고 극찬했다. 그가 표현하려고 한 향토색은 어떤 특별한 것이 아니라 평소 생활하면서 느낀 한국 산천과 자연의 색채를 타고난 예술적 감각으로 표출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식민지 조선의 헐벗은 땅을 일본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게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 즉 향토색은 일본이 은근히 조선을 낮춰보며 조장한 지방색 또는 이국적인 색이란 것이다. 일부 미술학자는 이인성의 작품을 두고 "고흐나 고갱의 영향을 받아 관전에만 출품해 출세 지향적이었다" 또는 "하나의 양식을 체계적이고도 지속적으로 추구하지 못해 독자적인 양식이 없었다" 등의 비판을 한다.

이중희 교수는 "이인성이 고도의 주관적 표현 세계를 구축하기까지는 이르지 못한 시대적 한계에 있었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서양화를 서양화답게 그리려 한 포부를 갖고 성실하게 예술적 가치를 위해 매진한 천재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했다.
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공동기획 : 대구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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