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윤 칼럼] 봄은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

  • 이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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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0-15   |  발행일 2021-10-15 제23면   |  수정 2021-10-15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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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

검찰 힘 빼야 한다고 그렇게들 법석 떨지 않았나. 그러던 정치권이 전가의 보도를 검찰 손에 봉헌한 뒤 목을 빼 자신의 명줄을 맡겼다. 이런 못난이가 없다. '검찰의 종'이 되겠다고 스스로 기어들어 가니 비극적 자발연소(自發燃燒)다. 여야 1위 후보가 법의 심판을 받을 확률이 50%쯤 된다는 소문은 또 뭔가. 가짜뉴스, 공작이라 악다구니 쓰지만, 의심은 충분히 합리적이고 정황은 차고 넘친다. 다만 직접적인 증거가 아직 없다. 증거는 언제쯤 나올까. 증거의 존재 및 부존재가 드러나는 순간 이 의혹은 비로소 실체로 정립된다. 확률이 50%니 검찰이 그 뚜껑을 열기 전까진 반은 죽었고 반은 살아있다. '살아도 산 게 아니다'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반생반사(半生半死)의 실험용 고양이. 목하 여야 1위 후보의 처지다. 다음 대통령은 검찰이 점지하는 이상한 선거가 진행 중이다.

이재명·윤석열 후보에 대한 고소·고발 서류만 수사기관에 수십 건 쌓여있다. 매일같이 고소·고발장이 추가되고 의혹도 하나씩 보태진다. 일부 수사는 꽤 진척됐다. '소환 임박' '수사 불가피'를 예단하는 기사가 자주 눈에 띈다. "구속된 유동규가 배임이라면 윗선 수사는 불 보듯 뻔하다"(설훈 의원)는 주장은 일리 있다. 휴대폰 포렌식 이후 통화내용을 확인한 내부고발자 조성은이 "다 공개하면 의문의 여지 없다. 녹취록에 윤(尹) 있다. 한 번뿐일까"라는 어제 발언도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해명하다가 선거 끝날 판이다. "대선 후보가 선거 전에 구속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올 것"(유승민 후보)이란 예측은 단순한 엄포일까. "온갖 가족 비리와 본인 비리에 휩싸인 후보로는 본선에서 이길 수 없다"(홍준표 후보)는 걱정은 여야 모두에게 해당한다.

도덕군자를 뽑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흠결이 너무 많다. 국민으로선 참으로 난감하다. 역대급 비호감 선거다. 그래서 최선도 차선도 아니고 차악을 선택하라고? 그게 국민에게 할 소린가. "도대체 누가 감옥 가는 거냐, 대선이 끝나면 이 불안이 해소되는 거냐"(이정미 정의당 전 대표)는 우려가 시중에 넘친다.

검찰이 선택할 경우의 수는 △선거전 기소 △불기소 △선거 후 수사 등 세 가지. 기왕 이렇게 된 거 검찰이 각오하고 이 불안한 안개를 걷어라. 대한민국을 오염시킨 부조리와 음모, 특권의 짙은 암흑을 걷어내야 미래가 밝아진다. 반쯤 열린 판도라 상자를 다시 닫을 요량이라면 아서라. 자신을 향하는 자신의 칼을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충격과 혼란을 감내하고 검찰은 검을 뽑아라. 공평과 정의의 검으로 이 아수라계를 평정하라. 여야 가릴 것 없이 죄 있는 자 싹 잡아들여라. 칼집을 빠져나온 칼은 신속 정확히 목표를 향해야 한다. 시간 끌면 모두에게 상처고 국가의 불행이 된다.

정치 문제를 정치권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보따리 싸 들고 검찰로 쪼르르 달려가는 행위는 비열하다. 일단 망신 주고 상대 발을 묶으려는 의도다. 고발장 한 장이면 대통령도 대선주자도 '피의자' 만들 수 있으니 말이다. 상습화된 이단(異端)정치다. 정치의 검찰 외주화는 치욕이고 공멸의 길이다. 정치의 사법화는 민주주의의 후퇴이자 3권분립의 파자(跛者·한 쪽으로 기울어짐)다.

대구 출신 천재 시인 이장희의 유작 '봄은 고양이로다'의 그 봄. 대선 끝난 내년 봄은 그런 봄이 되었으면 좋겠다. 시인의 시선이 멈춘 고양이의 포근한 졸음이 선사하는 봄의 평안을 맛볼 수 있을까. 아니면 '슈뢰딩거 고양이'의 신세계가 펼쳐질까.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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