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회 영남일보 책읽기상] 대학·일반부 최우수상…조재근 '통해야 산다'

  • 조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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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1-18 08:12  |  수정 2021-11-18 08:31  |  발행일 2021-11-18 제17면
"모든 생명은 살아남기 위해 소통…인간들 탐욕적 행위의 끝은 자명"

자고로 소통이 중요한 시대라고들 한다. 정치인이든 기업인이든 하다못해 평범한 회사원이든 어떤 조직에서 살아남아 성공하기 위해서는 남들과 소통해서 많이 아는 것이 관건이다. 그렇다면 이런 궁금증도 생긴다. 이런 현대 사회를 가리켜 '야생' 또는 '정글'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정말로 자연 세계에 사는 생물들도 우리처럼 치열하게 소통을 할까?

한때 우리 인간들이 인간 외의 생물에 대해서 상당한 무지와 오해를 보여준 적이 있었다. 근대의 철학자 데카르트는 동물을 기계라고 규정했고, 최초로 종속강문계란 생물학적 분류 체계를 도입한 카를 폰 린네는 버섯을 광물로 분류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과학이 발전하면서 동식물을 연구하는 학문이 점차 세분되었고, 그에 따라 연구 방식과 관점도 다양화되면서 자연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 넓어질 수 있었다. 가령 이 책의 저자는 행동생물학자다. 보통 자연을 연구하는 학문이라 하면 동물학 아니면 식물학을 주로 떠올리지만, 책 속에선 식물신경생물학·현장생물학·동물행동학과 같은 잘 들어오지 못한 학문 분야에 대한 이름들이 다수 등장한다. 그리고 저자는 이러한 다분야의 연구자들이 쌓은 연구 성과들을 정리해 우리에게 자연 세계에서의 소통에 대한 재밌는 이야기들을 전달해준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장 감탄했던 부분은 방대한 규모의 생물종과 그들이 나누는 소통방식이었다. 이 책에서 얘기하는 생명은 바로 우리 눈에 보이지도 않으면서 생물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를 구성하는 세포 같은 미생물에부터 시작한다. 이 세포 단위로 이뤄진 생물부터가 생존과 자손 번식을 위해 소통을 해야 하며, 앞서 말한 이 두 가지 목적이 바로 모든 생명체가 소통을 하는 기본적인 목적이라 할 수 있겠다. 포식자들은 자기 아래에 있는 생명체를 잡아먹으면서 살아남으려 하고, 반대로 그런 피식자들도 어떻게든 포식자들의 눈을 피해 가면서 자손을 남겨 종족의 생존을 보장받으려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전제 조건은 모든 행동과 기능엔 에너지가 필요하며, 그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치열한 자연 세계에서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은 곧 생존의 여부와 직결될 수 있는 중요한 문제다. 가령 동물들 간의 소통이라 하면 많은 사람이 울부짖는 소리를 떠올리지만 그러한 음성 신호는 자신의 위치를 노출시켜 위험에 처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렇기에 생명체들은 각자 자신이 가진 몸의 기능과 살아가는 환경을 이용해 다양한 소통 방식을 발전시켰고, 나아가 완전히 다른 종과도 소통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기에 이르렀다. 단적으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라면 매일매일 동물과 종의 차이를 초월한 소통을 하는 셈이다. 물론 반려동물들은 인간의 도움을 받아 야생 세계에서보다 손쉬운 방법으로 생명을 이어나갈 수 있기에 생존이란 무거운 주제에 매달리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이들 역시도 사료나 대소변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들과 소통을 이어나가고 그 과정에서 갖은 시행착오를 겪게 된다. 내 경험을 돌아보자면, 우리 집에서 '복돌이'라는 이름의 푸들을 키운 지도 어느덧 8년이 되었는데, 그 기간 동안 우리 가족과 복돌이 사이엔 어느 정도 통하는 신호가 생겨났다. 복돌이는 짖기보다는 종종 징징거리거나 매달리는 방식으로 원하는 바를 표현하는데 그에 따라 가족들은 대소변을 누고 싶은지 아니면 밥그릇에 물이 없어서 그런 건지를 분별하고 문제를 해결해준다. 결국 절박함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인간과 반려견 사이의 소통을 이해할 수 있다면 같은 관점에서 버섯과 나무 사이의 소통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느끼는 흥취는 상당 부분 생명의 소통으로 비롯된 부산물이라 볼 수 있다. 숲 저편의 나무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는 방문객을 위한 음향 효과가 아니라 짝짓기 상대를 부르는 구애의 소리거나 천적의 접근을 경고하기 위한 소리일 수도 있다. 하다못해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기조차도 특정한 곤충을 유인하거나 쫓아내기 위한 화학물질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러한 의문을 던지는 이들이 있을 수 있겠다. 자연 세계의 소통은 결국 생존을 위해 이뤄지지만, 우리 인간들은 굳이 그런 절박한 주제에 매달리지도 않고도 얼마든지 자신의 편의를 위해서 소통을 할 수 있지 않은가. 불편하게 화학물질을 내보내거나 복잡한 몸동작을 하지 않고도 음성 언어 몇 마디로 간단하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지 않은가. 나아가 시나 소설에서 쓰이는 언어처럼 고차원적인 수준의 언어로 가면 또 어떤가. 간단히 일상에서 쓰이는 단어들이 다양한 의미로 번역될 수 있고, 아예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닌 새로운 단어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즉 우리 인간들 사이의 소통은 자연 세계와 비교해 볼 때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측면이 있지 않느냐는 의문이다.

물론 어떤 측면에선 옳은 말이기도 하다. 우린 국문학 시간에 복잡한 의미를 지닌 시를 해석하는 방법을 배웠고, 학문의 세계를 탐험할 때마다 난해한 용어들이 등장해 머리를 아프게 하곤 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동식물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고차원적인 지식의 세계를 접할 수 있다는 사실이 소통을 잘할 수 있다는 의미로 연결되진 않는다. 서로의 경험이나 환경이 다를 때 소통은 얼마든지 단절될 수 있고,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우리 인간의 감각 기관은 나이가 들거나, 아니면 불의의 사고로 인해 쇠퇴할 수도 있다. 눈이 보이지 않거나 귀가 먹었다고 해서 우리가 박쥐나 고래처럼 초음파로 소통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얼마간의 불편함을 감수할 밖에 없다. 또 인간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는 말도 자주 한다. 이것이 소통이 잘하는 것일까? 오히려 이런 인간 사회의 각박함에 질린 나머지 인간의 말을 전혀 할 수 없는 동식물과 함께 있는 편이 훨씬 낫다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마치 버섯과 나무 또는 꽃과 꿀벌의 공생 관계처럼 어떤 사람들에겐 동식물과의 관계가 사람과의 관계보다 훨씬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부분은 우리 인간이 정작 가장 중요한 부분에선 자연과 전혀 소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선 도시에서 살아가는 동물과 야생에서 살아가는 동물들 간의 차이점을 설명한다. 도시엔 먹이가 풍부하고 천적으로부터 공격받을 위험이 적으니 야생에서 살 때와는 전혀 다른 생활방식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환경을 인위적으로 바꾸면 동물들도 자연히 거기에 적응하게 될 것이니 얼마든지 개발과 오염을 지속해도 된다는 의미로 해석해선 안 될 것이다. 높은 도시 빌딩에 부딪혀 죽는 새나 도로 곳곳에서 로드킬 당해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는 동물들을 보면 모든 생명이 도시 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본디 야생에 있어야 할 생명체들을 우리 스스로 가까이 불러들여 위험을 자초한 경우는 어떠한가. 지금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다름 아닌 박쥐에서 비롯된 동물성 전염병이라 하지 않은가. 자연 세계의 모든 생물들이 살아남기 위해 소통을 한다는 명제를 생각해 보자. 통하는 자만이 살 수 있다. 그런데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혼자만 자연과의 소통을 거부하려 드는 모순을 범할 때 숲은 고요해지고 말 것이다. 그리고 숲이 고요해질 때 인간의 삶도 고요해질 것이고 그 고요함은 평온함과는 거리가 먼 무서운 의미를 지닌 단어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수상소감

3.대학,일반부_최우수_조재근

"인류, 환경파괴·기후변화에 경각심 가져야"

처음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제 글이 이렇게까지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를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에 조금 얼떨떨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쩌면 제가 읽었던 책이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에 그런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환경파괴와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은 우리가 지겹게 들어온 메시지입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어떤 이들에겐 아무런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구호가 되어버렸습니다. 이제는 기후변화 자체보다 그것에 둔감해지는 사람들의 태도가 더 두려운 것일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실제 현실에서의 기후변화는 재난 영화와는 다르게 서서히 그리고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오던 동물이나 식물들이 한 종씩 사라져가고 봄과 가을이 없어지거나 전례 없는 자연재해가 빈발해도 우리는 이것을 특수한 현상이나 예외적인 일로 치부하며 넘어가고 있습니다.

저자는 책에서 환경 보호라는 구호를 대놓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연 속의 다양한 생명체들이 소통하고 살아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묘사하면서 독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단순히 숲, 강, 산이 있는 공간 정도로만 생각하는 '자연'이 얼마나 다양한 생명을 품고 활발한 상호작용이 벌이는 세계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사람들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로 달라지리라 생각됩니다.

끝으로 이런 의미 있는 책을 읽을 기회를 갖게 해준 영남일보의 관계자들과 어린 시절부터 저에게 독서의 기쁨을 가르쳐주신 부모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소감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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