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영호남 상생 서화 연대기(1)…영호남 서화의 맥 서로 통달하는 중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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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1-26   |  발행일 2021-11-26 제33면   |  수정 2021-11-26 08:45
남도의 소리, 일렁거리는 불꽃을 연상시키는 서체다.
획에 능해지면 사군자로 웅비…서예는 회화의 뿌리
한글시대, 1세대 붓글씨 거장들 서양화 쪽으로 눈돌려
서화의 중심 축 호남서 영남으로…상생서화의 미래 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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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서화의 맥은 결국 영호남에 집중된 것 같다. 물론 '문자 추상'의 개척자였던 두 예술가, 예산 출신의 추사 김정희, 고암 이응로가 홍성에서 태어났으니 충청도 서화도 발언권이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전체 얼개를 보면 돌출하고 지속적이고 맥통의 색깔이 분명한 영호남 서화의 위세에 비하면 충청도 서화의 맥은 상대적으로 단발적이다.

한국 서화, 아니 영호남 서화의 본질은 뭘까. 2013년 시작된 '달빛(대구와 광주)동맹'을 통해 영호남 서화도 동지적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과연 그보다 앞선 영호남 서화 교류의 첫 단추는 뭘까? 그게 궁금해 여러 전문가를 만나고 자료를 뒤지고 전라도권의 미술관 등을 기행해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선이 모여 '형(그림)'을 만든다. 그 선을 '획'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서예는 회화(동양·서양화를 포함)의 뿌리다. 붓글씨는 흥미롭다. 글씨를 적다 보면 그림으로 젖어 든다. 5체(해서, 행서, 예서, 전서, 초서)에 능해지면 자연스럽게 획은 사군자(매난국죽)로 웅비한다. 글이 곧 그림이 돼 버린다. 이게 문인화의 요체다. 서예라고 하면 의당 붓글씨 5체와 사군자가 세트로 붙어 다닌다. 이 바닥에선 그걸 '문자향 서권기가 있고 시서화가 한 몸이 된 삼절(三絶)'이라 칭한다. 한학적 실력까지 겸비해야 된다. 그 길은 형극의 길이다.

이제 삼절형 문인화는 박물관에서 찾아야 될 것 같다. 오히려 현대미술이 더 치열성을 확보하고 있다. 언론과 갤러리의 관심도 거기로 쏠리고 있다. 그 유명하다는 석재 서병오, 석전 황욱의 옥션 거래가가 100만원도 못 넘고 있다.

지금은 '한글 전용시대', 무늬만 서예가인 사람도 부지기수이다. 수많은 공모전 등도 점차 권위를 잃는다. 서예가의 인품은 점차 문파적이고 세속화되고 있다. 다들 명예와 돈에 휘둘린다. 20세기 거장들의 고매한 인품과 치열한 작가정신은 찾아보기 힘들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시작한 현대서예는 너무 질퍽거려 진로를 잘 찾지 못하고 있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게 서양화 진영의 수묵 정신이다. 그와 맞물린 제주도 출신의 두 화가. 변시지(1926~2013)와 강요배다. 현재 대구미술관에서 이인성미술상 수상작 전시 중인 강요배는 '황색의 절규'를 말하는 듯한 변시지의 정서를 제주도스럽게 이었다. 으스스한 한의 정서를 자신만의 갈필 기법으로 적셔간다. 형식은 서양화인데 본질은 지극히 동양적이다. 그는 수묵화 같은 서양화의 신지평을 열었다. 한국미의 본령을 건드린 셈이다.

흔히 청전 이상범, 이당 김은호, 소정 변관식, 심산 노수현, 심향 박승무, 춘곡 고희동, 묵로 이용우, 정재 최우석, 무호 이한복, 의재 허백련 등을 '근대미술 10대가'로 부른다. 지난해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이 주최한 '한국근대서예명가전 23인전'. 석봉 고봉주, 원곡 김기승, 영운 김용진, 여초 김응현, 일중 김충현, 효남 박병규, 동정 박세림, 시암 배길기, 석재 서병오, 죽농 서동균, 평보 서희환, 소전 손재형, 강암 송성용, 검여 유희강, 철농 이기우, 갈물 이철경, 월정 정주상, 학남 정환섭, 동강 조수호, 남정 최정균, 어천 최중길, 소암 현중화, 석전 황욱이 선정됐다. 전라도 출신은 평보, 강암, 석전, 남정 등이고 영남 출신은 석재·죽농·동강·시암·월정·효남이다. 전라도의 송곡 안규동, 그리고 한때 근대서예 10인에 포함됐던 대구의 소헌 김만호, 그리고 촉석루와 해인총림 현판 글씨를 적은 진주 출신의 유당 정현복이 빠진 게 '옥에 티'였다.

상당수 1세대 거장들은 한국이란 조건 때문에 모두 붓글씨에서 출발, 나중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고 서양화 쪽으로 터닝했다.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로 불리는 춘곡 고희동(1886~1965), 한국 최초 누드화를 그린 김관호(1890~1959), 그리고 대구 출신의 이인성(1912~1950), 전남 신안군 출신의 김환기(1913~1974), 박수근(1914~1965), 수묵 추상의 신지평을 연 대구 출신의 산정 서세옥(1929~2020), 청송 출신의 남관(1913~1990), 전남 화순 출신의 오지호(1905~1982), 운보 김기창(1913~2001)….

한때 '서화라 하면 전라도'라 했는데 지금 그 중심축이 영남 쪽으로도 성큼 이동하면서 '영호남 상생 서화'의 새로운 미래가 도래하는 것 같다. 그 연대기 속으로 들어가 본다. W2면에 계속

글=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그래픽=최은지기자 jji1224@yeongnam.com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영호남 상생 서화 연대기(2)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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