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뉴스-시민기자 세상보기] 은행나무와 분재

  • 천윤자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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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1-04 16:07  |  수정 2022-01-25 08:54
천윤자

추억에 이끌려 고향마을 향교를 찾았다. 언덕 위 고풍스러운 옛집은 향교 앞 초등학교에 다녔던 필자에게 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운동장에서 뛰어놀다가 고개를 돌리면 쉽게 눈에 들어왔다. 미술 실기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화폭 속으로 들어오는 것도 오래된 은행나무가 우뚝 선 향교다. 어린 우리가 쉽게 근접할 수 없는 근엄한 모습으로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대성전 동쪽 담장 옆에 오래된 은행나무가 이 향교의 역사를 알려준다. 멀리서는 세 그루로 보였는데 가까이서 보니 암수 두 그루다. 학문을 닦는 곳을 이르는 '행단(杏壇)'이라는 말은 공자가 은행나무로 만든 단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고사에서 유래된다. 벌레 먹지 않는 은행잎처럼 세태가 변해도 혼탁한 세상에서 녹슬지 않는 공자의 가르침을 은행나무는 말없이 보여준다. 수억 년 동안 지구상에 터를 잡고 열매를 맺어 퍼뜨리며 살아왔기에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린다.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열심히 물을 길어 자신을 닦고 때가 되면 버릴 줄 아는 실천 때문이리라. 공자를 비롯한 성현들을 모시고 유학을 학문의 근간으로 삼았던 향교나 서원에 은행나무를 심은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사람보다 오래 살아서 지난 일들을 고스란히 보아왔을 이 나무들은 지금 모든 것을 버리고 참선에 든 수도승 같은 모습으로 의연히 서 있다.

향교에 우뚝 선 은행나무를 보니 옥상에 있는 분재 생각에 이른다. 마흔 살이 넘었어도 키는 1미터를 넘지 못한다. 거칠한 몸이 나이가 들어 보이지만 언뜻 보기에는 어린나무 같다. 거리에 줄지어 서 있는 나무가 겨우 새잎을 움 틔우고 있을 때도 따뜻한 곳에 있으니 잎의 성숙이 빠르다. 작은 키에 어울리지 않는 큰 잎을 달고 있다. 깊이가 얕고 입만 넓은 화분에서 뿌리를 제대로 내리지 못하고, 가지도 마음껏 뻗어가지 못한다. 어쩌다 뻗어 나가는 가지는 여지없이 잘리고 만다. 날짜에 맞춰 물에 담가주고 때때로 노란색 영양제도 먹여주며 정성껏 보살핀다. 몇 번의 이사를 하면서도 이삿짐 차에 짐짝처럼 실어 오지 않고 승용차에 실어 특별 대접하며 옮겨왔다.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쑥쑥 뻗어가고 있을 때도 양지바른 곳에서 몸의 성장을 속으로만 키워가며 외로운 삶을 지탱하고 있다. 모든 생명체의 1차적 가치는 생존이고 생존의 필수 조건이 번식이라지만 오랫동안 열매를 달지 못했다. 토심이 깊고, 배수가 잘되는 비옥한 땅에 심어졌더라면 맘껏 자랄 수 있을 텐데, 어쩌다 화분에 심겨 성장을 저지당하며 살고 있는지. 참 고달픈 생이다. 나무도 어디에 터전을 잡느냐에 따라 이렇듯 달라진다.

향교에서 진정한 교육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향교의 역할을 보니 향사와 유교 경전 교육 외에 인성교육과 향토사회의 문화를 향상하고 풍속을 순화하는 사회 교육을 담당한다. 요즈음의 교육이 부모의 욕심을 앞세워 아이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큰 잎을 달아준 것은 아닌지.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착한 본성을 살려 저마다의 재능을 찾아가도록 이끌어 주는 일이 교육의 첫째 목표가 아닐까. 지식 전달에만 급급해 방과 후 학원을 전전하며 잎사귀만을 키우는 어린아이들을 보며 향교와 아랫동네의 학교를 번갈아 보게 된다.
천윤자시민기자 kscyj83@hanmail.net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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